한 선배 시인의 흔적을 찾아
한 선배 시인의 흔적을 찾아
  • 장현철 동우
  • 승인 2010.05.11 19:42
  • 호수 12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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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인을 발견한것은 우연이었다. 얼마전 한 선배집에 갔다가 버릇처럼 책꽂이를 뒤지다가 (사)한국문인협회 영양지부가 펴낸 영양문학(2006년 제22집)이 눈에 띄었다. 무심코 집어든 책속에 요절한 한 시인의 추모 특집이 실려 있었다.

   이름은 권웅(본명 권웅달). 그는 시인이자 번역가였다. 1933년 경북 영양 창바우라는 산촌에서 출생하여 1960년 단국대 국문과를 입학했으며 1977년 1월 44세를 일기로 축축한 붓을 던지었다는 간단한 이력이 눈길을 잡았다. 대학 입학 시점을 보면 ‘껍데기는 가라’의 신동엽 시인 등과도 상당한 교분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학생’ ‘소년한국’ ‘소설계’ 등 잡지사와 ‘홍익출판사’ ‘고려출판사’ ‘청자각’ 등의 기자, 부장, 주간, 대표 자리를 전전하며 두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영양문인회는 권 시인에 대해 <조지훈 시인 등에 이어 또 한분의 시인이 우리앞에 밝혀지다!>라는 부제를 달았다.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고향인 영양지역 문인들에 의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그는 아마도 오랫동안 병고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책자에 실린 흑백사진은 웃고 있지만, 말 그대로 서늘한 웃음이다. 곱슬머리에 깡마른 체구가 생전의 품격 있는 몸 가짐을 짐작하게 한다. 번역서를 낼 정도로 영문학에도 조예가 깊었고 ‘여학생’ ‘소년한국’과 같이 당시 명성이 높았던 잡지사 간부를 지낸 것을 감안하면, 잡지 출판 편집자로도 능력을 인정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작 눈길이 가는 것은 그의 시였다. 문학에 문외한인 필자가 봐도 시는 절절했다. 절제와 각고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의 깊이와 울림이 있었다. 대표작격인 <내 깊은 속엣말>은 아마도 말년의 작품인듯 ‘여보, 오늘 내가 당신과 술을 마시고/ 헤어지면 영 다시 못 만난다해도/ 내 깊은 속엣말을 다하랴/ 잔이나 비웁시다’와 같이 죽음에 대한 깊은 인식과 치열한 내면의 아픔이 베어 있었다. 그는 ‘이 봄꽂은 더욱 곱게 피더라는 그런 얘기나 하고/ 백번을 다시 살아/ 당신과 잔 나눈 들/ 사모쳐/ 내 깊은 속엣말을 다하랴’며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완곡하게 표현했다.

   산골 출신의 몸까지 약한 시인이 60년대 서울을 살아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가난한 잡지사 기자는 가슴에 맺힌 것이 많았다. ‘길을 가다 문득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름도 까맣게 잊고 살았던 아주 옛날의 그 사람을/.../ 벼랑에 발 붙이고 매운 바람 마시며/ 나무도 한 겨울을 난다지만/ 그래 죽지만 말자/ 또 만나지겠지/ 주소도 묻지 않고 헤어졌습니다’(해후). 극심한 전쟁 이후 살아 있는 것이 죄스럽고 부끄러운 듯, 그는 수줍은 사람처럼 앞줄 보다 뒷줄에 서길 좋아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가난과 아픔 속에서 놀라울 정도로 정제되고 차분한 시어로 60년대의 서울과 인간을 얘기하고 있다. 책자에 실린 다른 시들도 결코 가볍게 볼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혼돈스런 세상에 대해 질문하고 묻고, 따지며 삭히는 치열함이 가득했다.

   단국대는 신동엽 시인과 같이 어느 곳보다 뛰어난 문인들을 다수 배출한 전통을 갖고 있다.  전통에 걸맞게 고작 두권의 시집만 남기고 일찌감치 세상을 떠난 한 선배 시인의 흔적을 모교가 다시 찾아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거를 후대에 재평가하여 다시 살려내는 것이 전통의 미학이 아닐까.


장현철(농어촌사회복지회 이사) 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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