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아직 ‘따뜻한 곳’
학교는 아직 ‘따뜻한 곳’
  • 박준범 동우
  • 승인 2010.05.18 12:22
  • 호수 12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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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볼 때 우리는 전체를 섬기고 신성하게 생각해야 해. 인공적으로 떼어 놓은 허용된 반쪽이 아니라 전체를 말이야.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동시에 악마에 대한 예배도 해야 해.”
-데미안-

   마케팅의 기본은 ‘물건을 파는 것’이다. 물건을 판다는 것은, 누군가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일이며, 그것은 곧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다. 그래서 마케팅과 홍보를 하는 사람들은 타인과의 만남에 ‘특별한 목적’을 띄게 되고, 법의 테두리 내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스킬도 갖추게 된다.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움직여, 회사를 위해 얼마만큼의 돈을 벌어들였느냐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어서 쉽게 머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합리적 개념을 ‘마음’이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거다.

   예를 들어보자. 회사 홍보를 위해 매 주 두 건 이상의 보도자료를 기계적으로 쓰고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기사화 시켜 줄 것을 부탁한다. 기자들은 ‘밥이나 사면서 이런 부탁을 하라’며 농담을 건네지만, 만남의 특별한 목적을 생각하면 그런 농담이 가벼이 들리지 않게 된다. 나한테, 또는 회사에 뭔가 바라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섣불리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남들보다 졸업을 늦게 한 건, 즉 오랜 시간 학교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아마 이런 ‘목적적 관계’에 대한 막연한 반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받아야 할 고지서를 계속 해서 미루다가, 뒤늦게 이자까지 쳐서 받으려니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

   무게에 이기지 못해 한동안 고민을 했다. ‘열심히는 하는데, 퍼포먼스(performance)가 낮은 직원’이라는, 회사의 냉정한 평가가 억울하게 느껴졌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인정해주고, 노력하는 모습만으로도 따뜻하게 평가해주는 곳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따뜻한 곳’은 학교 밖에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적으로 떼어 놓은 허용된 반쪽, 비록 결과가 좋지 않아도 도전했다는 열정만을 높이 사 주는 곳은 이 세상에 학교 밖에 없다. 조직을 위해 타인에게 상처를 줘야 하고, 적당한 거짓말을 해야 하며, 때로는 목적을 갖고 이용해야 한다.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세상의 반쪽이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요구했던 것은 ‘어둠의 세계’에 빠지라는 것이 아니라, ‘편협한 반쪽만의 세계에서 벗어나라’는 것이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충만한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성장통이며, 그 성장통을 이겨 내야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 주, 나에게 중요한 업무가 하나 있다. 거래처에서 요구한 견적을 반 이상 깎아야 하는 업무다. ‘그동안 내가 너에게 지랄했던 것처럼, 너도 그들에게 지랄을 해서 반드시 깎도록 하여라’는 직장상사의 명령도 있었다.


   알을 깨야겠다. 그래야 밥 벌어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박준범(한국기술투자·커뮤니케이션본부) 동우

박준범 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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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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