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숙소 편
5. 숙소 편
  • 길지혜(언론홍보·05) 동우
  • 승인 2011.04.12 14:48
  • 호수 12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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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고 잘 곳은 많다

 

5. 숙소 편

  여행에서 숙소의 유형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개개인의 예산과 선호에 따라 초호화 호텔을 비롯해, 모텔, 리조트, 콘도, 유스호스텔, 민박, 캠핑, 크루즈, 노숙까지 선택의 폭은 다양하다. 예산이 넉넉하다고 화려하고 편리한 호텔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북극에 가선 이글루 체험을, 일본에선 전통여관인 료칸에서 온천을, 괌이나 하와이 같은 휴양지에선 잘 갖춰진 리조트를, 유럽에선 자기몸집만한 배낭을 메고 하나둘 입장하는 청년들의 아지트인 유스호스텔을, 안동이나 전주에선 전통가옥을 경험해보는 등 각국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을 추천한다. 물론 이에 동의했다 하더라도 선택의 문제는 끝없이 남게 마련인데, 그때부터 나머지는 모두 하늘에 맡겨버리자.


  내게도 잊을 수 없는 여행지 숙소가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남부 니스로 향하던 야간열차 쿠셋(Couchette). 밤의 끄트머리에서 동틀 녘까지 8시간 동안 누워있던 작은 간이침대를 잊지 못한다. 낯선 창밖의 풍경과 덜컹거리는 기차의 정교한 리듬이 밤잠을 설치게 했다. 당시 여행지마다 엽서를 써서 집으로 보내놓곤 했는데, 그때 침대에 누워 쓴 편지는 젊은 베르테르의 사랑처럼 절절하고, 琴兒 피천득의 <인연>과 견줄만한 감수성을 담은 것으로 기억한다. 손바닥만 한 엽서에 담아 낸 것은 프랑스 우체국 소인이 아닌 그때의 풍경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선 참 괜찮은 인연을 남겼다. 할슈타트에서 만난 민박집 아주머니는 삶에 있어 ‘욕심’이란 단어를 떼어놓은 듯 보였다. 숙박업이 손님을 들여 돈을 버는 일일진대, 이방인을 자기 사람처럼 대할 수 있는 것은 사람에 대한 경계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 곳 사람들의 환경적 요인이라 느껴졌다. 비엔나(Vienna)에선 세계 지휘자 거장 주빈메타(Zubin Mehta)를 알게 해 준 한국인 민박 주인과의 인연이 뜻 깊다. 그 시절 오페라, 발레, 뮤지컬과 같은 예술분야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완벽한 발레공연을 보고난 후, 문화적 충격에 빠졌었다. 마음속으로 ‘너무 모르지만 말자.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훌륭한 행위를 조금씩만 챙기며 살자’고 다짐했던 것 같다. 그 민박집과 인연이 없었다면, 아마 예술을 맛본 후 희열을 아직도 못 느꼈을지도 모른다. 


  홀로 떠났던 미국 라스베가스 스트립 거리에서는 ‘자본의 정점’에 서서 즐비한 호텔을 마주했다. 전 세계 규모면에서 10대 호텔로 손꼽히는 호텔 가운데 7개가 여기에 있으니 가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라스베가스 호텔은 ‘호텔투어’만으로도 몇날 며칠을 보낼 만큼 볼거리가 다양하기 때문에 평생 꼭 한번쯤은 머물러 보았으면 한다. 24시간 운영되는 카지노에서부터 최고급 뷔페와 공연, 놀이기구, 세계적 국제회의장 등 상상 그 이상의 움직임들이 라스베가스에서 펼쳐진다. 사막 한가운데의 신기루처럼 라스베가스에 머무는 동안 꿈을 꾸는 듯 몽롱하기도 했다. 그 환상적인 위용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 둘러보는 것은 모두 무료니 겁낼 것 없다. 특히 손님유치를 위해 경매 프로모션을 다양하게 진행해서 아주 저렴한 가격에 최고급 호텔 서비스를 맛볼 기회도 왕왕 있다.


  ‘잠자리’에 관해서 단지 좋았던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파리와 모기가 들끓었던 중국 길림성의 작은 주택가는, 두만강의 시원하고 거친 물소리가 없었으면 그저 ‘오지(奧地)’로 기억됐을 거다. 꽤 괜찮다는 정보를 듣고 찾아갔던 영국의 유스호스텔에선 예상치 못한 여행자들의 코골이에 잠을 설쳐야했다. 10여명이 한데 엉켜서 자는 호스텔의 경우, 다양한 여행정보를 주고받는 장점 대신 타인의 잠버릇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프랑스 니스에선 가방을 도둑맞고 빈털터리로 ‘노숙’을 했던 적도 있는데, 남아 있는 짐을 부여잡고 새벽 찬 공기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때도 있었다.    


  이렇듯 내게 여행의 기억에서 숙소는 5할이 넘는다. 특히 그곳에서 만났던 인연, 숙소 주변의 관광지 등에 따라 여행 일정이 다르게 디자인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여행자들이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숙소를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얼마 전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새신부의 경험담을 통해 ‘좋은 숙소’의 기준이 추가되기도 했다. 스페인에서 가장 좋은 호텔은 비싼 호텔이 아닌, 첫날밤이 성공한 그곳이라는 것. 그 친구는 내년에도, ‘그곳’에 가기로 했단다. 둘만의 추억이 남아 있는 그곳에 말이다.


  세계적인 타이어회사 미쉐린 사가 매년 봄 발간하는 식당 및 여행가이드 시리즈인 ‘미쉐린 가이드’는 1900년 창간 이후 5661개의 호텔과 4137개의 레스토랑 등 총 1만개의 업소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고 있다. 흔히 별 하나의 의미는 해당 분야에서 ‘아주 맛있는 음식을 제공 한다’는 의미고, 별 두 개는 ‘먼 거리라도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곳’, 별 세 개는 ‘그곳을 찾아가기 위해 여행을 준비해도 아깝지 않은 곳’이란 의미가 있다. 이들 중 받기 어렵다는 ‘미슐랭 스타’ 세 개를 받은 곳은 22곳 밖에 없다고 하는데, 아마도 새 신부의 별 세 개짜리 호텔은 ‘그곳’일거다. 이래서 여행이란 것이 정답이 없다. 또 그냥 떠나는 수밖엔.   
 

미스트레블(Misstravel.co.kr)

길지혜(언론홍보·05) 동우
길지혜(언론홍보·05) 동우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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