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씨앗나누기] 9. 여행 기념품 편
[여행씨앗나누기] 9. 여행 기념품 편
  • 길지혜(언론홍보·05졸) 동우
  • 승인 2011.05.25 08:50
  • 호수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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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유리병에 담아온 그곳의 공기처럼

 

▲일본 쿄토 은각사. 너무도 붉어, 은각사 전체를 붉은 빛으로 물들일 만큼 아름다운 단풍나무.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어서 잎을 가져올 생각도 못했다.


  기념품(수비니어, Souvenir)은 프랑스어 ‘추억이 되는 것’ 이란 뜻에서 유래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글자 모양만큼이나 어원이 참 예쁘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의 시어처럼 이름을 불러주기 전엔 몸짓에 지나지 않았는데, 작은 물건에 추억을 담아내니 여행의 꽃이 된다.


  내 생애 첫 기념품은 아버지가 사다주신 일제 전동 연필깎이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은색 기차 모양의 연필깎이도 부러움을 살 시절, 자동으로 나무와 흑심을 갈아내는 그것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우리나라 밖의 세상이 존재하는지도 모른 채, 아버지가 잠시 집을 비우면 무언가 뜻밖의 기쁨이 생긴다는 것은 알았던듯하다. 그때 기념품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이후 넓은 세상을 여행하고 모아둔 기념품도 각양각색이다. 열쇠고리, 티셔츠, 연필 등 일반적인 것에서부터 유리공예로 유명한 베네치아의 화려한 유리가면, 밥은 걸러도 차는 거르지 않는다는 중국의 차(茶), 낙농업이 발달해 달콤한 스위스의 밀크초콜릿, 파리(Paris)하면 떠오르는 에펠탑 모형, 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 와인오프너(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가게 전체에 일렬로 서있는 것을 실제로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복과 부를 가져다준다는 일본 마네키네코(고양이 인형), 세계 최고의 양모생산국 호주의 양모이불 등 국가와 도시의 특색이 담긴 기념품까지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고, 여행지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기념품 분야에서도 세계로 뻗어가는 중국 공산품의 위력은 가히 가공할만해서, 가끔은 유럽, 호주, 미국을 다녀오고도 Made in China가 찍힌 기념품을 건네는 손이 멋쩍기도 하다. 그래도 그 정성에 비할쏘냐. 여행지에서 누군가를 생각한 기념품 선물은 제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너와 나는 특별한 관계’를 입증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을 담은 ‘정표’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행지에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이 기념품 가게에 들르는 것인데 이는 다름 아닌 풍경엽서 때문이다. 칸칸이 꽂힌 엽서엔 그 지역의 진풍경이 모두 담겨있다. 그것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말이다. 그래서 설령 그곳에 갔을 때 똑같은 모습이 아니라도, 눈으로 마음으로 상상할 수 있다. ‘햇살이 조금 더 드리우면, 노을과 석양이 붉게 타오르면, 깜깜한 밤하늘에 조명이 켜지면 더욱 빛나겠구나!’ 라고. 그래서 필자에게 기념품가게는 여행의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혹자는 기념품으로 화려한 명품을 선호한다. 면세를 통해 할인받을 수 있고, 받는 이의 마음도 물건 값만큼 커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가격과 값어치는 엄연히 다르다. 때로는 큰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기념품을 건네는 것이 평생의 잊을 수 없는 선물이 될 수 있다.


  마음을 툭 털어놓은 바다에서 전화로 들려주는 파도소리, 투명한 유리병에 담아온 제주도의 푸른 공기, 붉게 물든 단풍 잎사귀에 적은 그리움의 시, 곱게 갈린 니스 해변의 조약돌, 친구와 같은 이름을 한 상점 간판 사진, 해변 모래알에 알알이 적어둔 벗의 이름, 반지르르한 기념비 앞에서 동생의 합격을 기원하는 속삭임, 레코드 가게에서 어렵사리 구한 그가 좋아하는 팝가수의 첫 번째 앨범 같은 것 말이다. 이것들은 시쳇말로 ‘레알’ 행복을 가져다준다. 장인의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수놓은 명품 못지않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스페셜 에디션이기 때문이다.  


  평생 자신의 불완전성에 집중했으면서도 작품 수준에 대한 자부심은 잃지 않았다는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도 밤새워 조각 작품을 완성하고 집 밖으로 나오다가, 햇빛을 머금은 나뭇잎을 보고 심하게 좌절했다는 일화가 있다. 제 아무리 노력해도 자연의 그 황홀한 창작물을 능가할 수 없단 사실을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이제 여행자라면 한번쯤 고민했을 법한 기념품 품목에 선입견을 버려보자. 값비싼 물건 보다 더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는 것들이 지천이다. 여행의 강렬한 즐거움 중의 하나가 자연을 보고 느끼는 것인데, 자연에 마음을 담아 선물한다면 받는 이 또한 여행의 즐거움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 가끔은 명품 쇼핑에만 치중해, 진짜 쏠쏠한 여행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여행자에게도 한번쯤은 명품대신 자연을 담은 스페셜 에디션을 선물 해보기를 권해주고 싶다. 아마 미켈란젤로가 반한 나뭇잎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길지혜(언론홍보·05졸) 동우
미스트레블(Misstrav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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