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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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해구
  • 승인 2003.09.25 00:20
  • 호수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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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학·경상학부·경제학전공>

약 일년 전부터 정년퇴임에 대비하여 마음의 준비를 가다듬고 왔었는데 막상 정년퇴임을 하고 나와 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마음이 허전한 것이 사실이다. 아마 정년퇴임 전 재직 시에 하려고 마음먹었던 일들을 다 이루지 못하고 나와서 더욱 그런지 모르겠다. 세월은 참으로 빠르게 흐르고 지난 세월들이 더 없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러나 한편 이 부족한 사람이 그대로 큰 탈 없이 정년을 마치고 나올 수 있었던 것에 대하여 참으로 감사함을 느낀다. 먼저 학교 당교에 대하여 감사하고 여러 교수님들과 학생들에게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또한 최근 들어 경제사정이 악화되고 고용사정이 여의치 않아 취업을 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제자들을 볼 때는 참으로 마음이 무겁고 답답함을 느낀다.
지금 이 사회가 해결해야 될 가장 시급한 과제는 실업문제 특히 청년실업문제라고 생각한다. 통계에 의하면 7월말 현재 20대 실업률은 6.9%로 전체 실업률 평균 3.4%의 두 배를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또한 20대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6.2%로 40대(78.6%), 50대(69.8%)보다 크게 낮다고 한다. 이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부를 마친 젊은이가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고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연결될 수 있다. 청년층이 갖은 좌절감이 이 사회의 이념적 양극화와 사회 불안의 한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나는 40여 년 전 4.19때의 사정과 분위기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 정지 사회적인 부정 비리가 심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젊은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었던 것도 큰 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어려워 앞날에 대하여 암담하게 느꼈던 것이 그 당시 청년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그 후 경제개발을 적극 추진하여 전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고속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고용도 크게 증가하여 한때는 완전고용수준에 이를 만큼 고용사정이 호전되었었다. 그러나 1080년대 말 탈 냉전이후 1990년대에 들어 전 세계가 세계화·정보화의 열풍에 휩싸이면서 세계각국경제의 국제경쟁이 치열해졌고 이에 따라 노동시장에는 다시 긴장감과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이 세계도처의 모든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자본과 노동인력이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쉽게 국경을 이동하는 개방경제하에서 고용의 안정성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경제는 계속 성장해 가고 있으나 고용증가가 그만큼 뒤따라 주지 못하고 고용시장 내에서도 청년실업의 편중심화 등 고용주조가 악화되고 있다. 이렇게 왜곡되어 지는 노동시장을 시장원리에만 맡겨 둘 수는 없다고 본다. 마땅히 정부의 배려가 요구되는 것이다. 정부는 청년실업문제에 대한 대책을 내 놔야 할 것이다. 청년들에게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있도록 확실한 비전을 제시해 줌으로써 그들의 불안감을 제거해 주고 오늘의 고통분담을 기꺼이 수용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할 것이다.

한편 학생들도 이런 전환기적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는 현명한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먼저 인내하며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기의 재능과 여건을 고려하여 자기가 개척해 나가야 할 목표를 잘 성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잘못되어 시행착오를 겪는 경우를 많이 본다. 취업이 다소 늦더라도 조급해 하지 말고 신중하게 목표를 정해야 한다. 경제학에서도 이런 상태를 실업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고 job search 이론은 주장하고 있다. 보다 자기에게 적합한 직업을 택하여 출발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또한 이와 함께 부단히 노력하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목표가 정해졌으면 그 다음에는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온다는 확신을 갖고 준비해야 한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오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그 기회가 오느냐 안 오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회를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있는 것이다. 준비하고 노력한 사람은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잡을 수 있지만 준비가 안 된 사람은 기회를 놓쳐 버리게 된다. 평소의 꾸준한 노력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이 시간을 잘 활용하는 문제인 것 같다. 시간은 바로 그 사람의 생명이다. 시간은 지나면 그만큼 생명이 단축되기 때문에 다시 오지 않는다. 이것은 뭐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고 이런 진부한 말을 왜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중용한 지혜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시간을 절약하고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비결이 있는 것 같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다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무슨 일이든 여유롭게 시간을 잡아서 하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시간을 잘 몰아서 활용하는 지혜를 빨리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되었을 때는 우선 그 일을 착수해 놓고 그 때 그 때 짧은 시간들을 활용해 연속적으로 그 일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지혜로운 것 같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 이런 몇 가지 점에서 너무나 안타까운 실패를 했다고 여겨진다. 너무나 아까운 시간들이 많이 흘러갔다. 그러나 한 가지 희망을 가져보는 것은 정년퇴임이 아주 은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retire’라는 단어의 의미는 타이어를 갈아 끼운다는 뜻이다. 긴 여정을 달려 타이어가 이제 많이 마모가 됐기 때문에 새 타이어로 갈아 끼우고 다시 달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다시 새 출발해서 후회 없는 남은 여정을 잘 마무리해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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