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의 가치를 온 몸으로 느끼다
‘같이’의 가치를 온 몸으로 느끼다
  • 박윤조 기자
  • 승인 2011.08.31 01:31
  • 호수 1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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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대학생 국토대장정 참가후기


부산(출정) - 김해 - 밀양 - 김천 - 상주 - 문경 - 충주 - 광주 - 하남-서울(완주)
부산에서 서울까지 577.6km 


누구보다도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싶다면
청춘이여! 대장정을 떠나라!

 
내리쬐는 태양아래,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끊임없이 걷고 또 걸었다. 걷는 게 지겨워 눈물도 났었다. 좋으나 싫으나 물집투성이의 발은 기본이고 근육통, 감기, 피부병 등 ‘대장정병’과 동고동락해야만 했다. 그렇게 20일이 지나고, 결코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서울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부산에서 577.6km를 걸어와 서울 뚝섬을 향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달려왔건만 지금 다시 출발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장정은 알게 모르게 144명의 대원들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뜨거운 청춘들과 함께했던 그 여름날을 다시 기억해본다.

 


이렇게까지 힘들 줄 몰랐던 1일차
지난 7월 1일, 부산 맥도생태공원에서 출정식을 마치고 비장한 각오로 첫 발을 뗐다. 이 날은 1일차라 ‘겨우’ 18km밖에 걷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라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 터져 나왔다. 숙영지에 들어와 마무리율동을 하고 잠시 쉬나 싶었지만 우리에겐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텐트치기와 3분 샤워. 걷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고 이미 긴장을 풀어버린 대원들이 지친 게 한 눈에 보였다. 또 샤워를 3분 안에 끝내야하고 물을 아끼기 위해 물 세 바가지로 씻어야 하는 이 비극적인 상황을 즐겨야했다. 샤워텐트장 안은 금방 아수라장이 되었고, 남의 옷을 입고 나오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스텝들의 통제에 이리저리 휩쓸려 점호준비까지 하고 나서야 비로소 잘 수 있었다. 잘 때는 마음 편히 자느냐, 그건 또 아니다. 불침번도 번갈아가면서 서고, 매일 새벽 6시에는 억지로 기상송에 맞춰 일어나 잠결에 체조를 해야 했다. 이렇게 우리들은 피할 수 없어 즐겨야만 하는 운명이 된 것이다.





걷는 것도 쉬는 것도 긴장의 연속
매일 아침 7시 반이면 출발준비를 마치고 힘차게 출발한다. 한 타임을 5km에서 6km정도 걷고 15분을 휴식지에서 쉰다. 휴식지에서 쉴 때는 양말을 벗고 땀을 식히거나 물집치료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쉬는 시간이 끝나가는 즈음에는 “출발 5분전!”을 외치며 신발끈과 여러 장비들을 점검하고 물집을 예열시키고 또 길을 나선다. 걸을 때는 “앞으로 밀착”, “대열 정비”, “바닥 주의” 등 스텝들의 구호를 따라 외치며 걷는다. 걸으면서도 항상 뒷사람을 배려하고 긴장하며 걸어야 한다. 내가 앞으로 밀착하지 않으면 뒤에서는 뛰어야 할테고 또, 나 한사람 때문에 대열이 엉망진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길 위에서 만들어지는 청춘들의 이야기
매일 30km 가까이를 무작정 걷기만 했다면 쉽게 지쳐 포기했을지 모른다. 대장정기간동안 길 위에서는 매일 매일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져갔다. 걷기는 대화를 불러일으키는 최적의 방법이다. 서로의 꿈과 비전을 나누고, 서로에 대해 좀 더 알아간다. 물론 말하는 것조차 힘든 코스를 지나갈 때는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나중에는 숨소리로도 대화를 하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또 침묵도 대화가 된다는 것을 여기서 처음 느꼈다. ‘그래 너 지금 힘들구나, 나도 좀 힘들다. 그래도 힘내서 끝까지 가자’ 라는 말이 마음 속까지 전해진다. 혹여 체력이 남아돌거나,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 새로운 이정표가 나타나는 날에는 대원들 모두 신이나 저절로 노래 메들리가 이어진다. 자신이 알고 있는 애창곡이란 애창곡은 대장정에서 다 쏟아내고 갈 정도다. 걷는 데 힘이 되는 것은 뭐든지 한다. 최신유행곡, 율동, 전체구호, ‘14기 파이팅!’ 등 악으로 깡으로 함성을 지르고 나면 정말 신기하게도 좀 더 걸을 수 있는 힘이 생겨난다. 

매일 아침 7시 반이면 출발준비를 마치고 힘차게 출발한다. 한 타임을 5km에서 6km정도 걷고 15분을 휴식지에서 쉰다. 휴식지에서 쉴 때는 양말을 벗고 땀을 식히거나 물집치료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쉬는 시간이 끝나가는 즈음에는 “출발 5분전!”을 외치며 신발끈과 여러 장비들을 점검하고 물집을 예열시키고 또 길을 나선다. 걸을 때는 “앞으로 밀착”, “대열 정비”, “바닥 주의” 등 스텝들의 구호를 따라 외치며 걷는다. 걸으면서도 항상 뒷사람을 배려하고 긴장하며 걸어야 한다. 내가 앞으로 밀착하지 않으면 뒤에서는 뛰어야 할테고 또, 나 한사람 때문에 대열이 엉망진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30km 가까이를 무작정 걷기만 했다면 쉽게 지쳐 포기했을지 모른다. 대장정기간동안 길 위에서는 매일 매일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져갔다. 걷기는 대화를 불러일으키는 최적의 방법이다. 서로의 꿈과 비전을 나누고, 서로에 대해 좀 더 알아간다. 물론 말하는 것조차 힘든 코스를 지나갈 때는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나중에는 숨소리로도 대화를 하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또 침묵도 대화가 된다는 것을 여기서 처음 느꼈다. ‘그래 너 지금 힘들구나, 나도 좀 힘들다. 그래도 힘내서 끝까지 가자’ 라는 말이 마음 속까지 전해진다. 혹여 체력이 남아돌거나,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 새로운 이정표가 나타나는 날에는 대원들 모두 신이나 저절로 노래 메들리가 이어진다. 자신이 알고 있는 애창곡이란 애창곡은 대장정에서 다 쏟아내고 갈 정도다. 걷는 데 힘이 되는 것은 뭐든지 한다. 최신유행곡, 율동, 전체구호, ‘14기 파이팅!’ 등 악으로 깡으로 함성을 지르고 나면 정말 신기하게도 좀 더 걸을 수 있는 힘이 생겨난다. 



물집과의 사투, 대장정인으로 거듭나다
둘째 날 창원을 지나니 발에 물집이 8개가 나있었다. 발바닥을 뒤덮는 물집에, 걸을 때마다 물집을 꾹 꾹 눌러야만 하는 그 아픔은 정말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하지만 역시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중식지, 숙영지의 의료텐트는 끊임없는 환자들로 진을 이루었다. 처음엔 ‘내가 왜 이렇게까지 아파하면서 걸어야 하나’ 답을 찾으려 혼자 끙끙 앓았다. 하지만 휴식지에서의 달콤한 휴식, 숙영지 도착해 느끼는 짜릿함에 중독 되어버려 어느새 그 해답을 찾는 일은 저 멀리 잊혀졌다.
4일차쯤 지났을까, 창녕을 지나와 100km를 넘게 걷고 나니 모두들 물집을 바늘로 찔러 터뜨리고 소독하는 물집치료가 수준급이 되었다. 처음엔 눈물을 찔끔 흘리며 했던 이 일도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웃으면서 할 수 있게 됐다. 몇 일 뒤 물집이 굳은살로 변해 더욱 단단해진 발을 보고 진정한 대장정인으로 거듭났다며 대원들에게 이리저리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함
5일차 고령에서는 안타까운 이별을 맞이했다. 의사의 귀가조치가 내려져 2명의 대원이 어쩔 수 없이 집에 돌아가야만 한 것이다. 한 여자대원은 발 전체가 물집으로 뒤덮여 도저히 걸을 수가 없는 상태였고, 한 남자대원은 일사병으로 더운 날씨에 걸을 때마다 40도에 가까운 열 때문에 걷는 것이 기적적인 상황이었다. 그 두 명 모두 완주를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나머지 142명이 누구보다 잘 알기에 보내는 사람, 가는 사람 모두 눈물을 흘려야 했다. 완주라는 같은 목표와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크게 마음으로 다가왔다.

 




‘이 맛’에 대장정 한다
이번 여름은 이상하게도 비가 참 많이 내렸다. 6일차부터 9일간 비가 오락가락 내렸다. 비가 오면 물집이 부르트고 찢어지는 것은 물론 발까지 퉁퉁 부어 신발에 발을 구겨 넣어야 했다. 마르지 않는 빨래와 우비냄새를 맡는 것은 고역이다. 그래도 “그래! 바로 이 맛 이야” 하고, 대장정을 즐기게 되는 여러 소중한 것들이 있다.
걷지 않으면 몰랐을 아름다운 강산, 하늘, 꽃향기. 덥지도 비가 오지도 않는 걷기 좋은 날씨. 더운 날 바람이 솔솔 부는 것. 지옥 같은 오르막길을 넘어간 후 발로 느껴지는 평평한 땅. 조장의 애창곡인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 노랫소리. “좀만 힘내세요. 거의 다 왔어요.” 자꾸만 믿게 되는 스텝의 거짓말. 마니또가 써 준 힘내라는 내용의 쪽지. 중식지에서의 달콤한 오침. 휴식지에서의 시원한 음료수, 정말 더울 때면 등장하는 아이스크림. 숙영지에 도착해 신나게 다 같이 추는 마무리율동. 음료수, 초코바 하나라도 여러 조원들과 나눠먹는 정. 내가 힘들어 할 때 내밀어주는 누군가의 손. 누군가 지쳐있을 때 건네는 말 한마디 “힘내, 파이팅, 수고했어.” 
평소 같았으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일이 여기서는 모두 걷는데 원동력이 된다. 이렇게 대장정 기간에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다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고통은 순간, 순간은 추억, 추억은 평생
15일차쯤 충주에 도착, 오락가락 하던 비가 그치고 다시 햇빛이 비춘다. 무더운 날씨가 괴롭혀도 웃음만은 잃지 않는다. 마지막 한 주의 기억은 정말 웃은 기억밖에 없다. 이제 다들 대장정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부모님과의 만남, 선배와의 만남, 장기자랑, 마니또공개 등 이제 서서히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서로 서로에게 아쉽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쪽지만이 쌓여 가고 있다. 그렇게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완주식 전날, 경기도 하남시에 도착했다. 밤에 촛불을 켜고 모든 대원과 스텝들이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얘기를 나눈다. 눈물을 몰래 훔치는 대원들도 많았다. 완주라는 기쁨과 아쉬움,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이 순간이 언제 다시 올까. 전국각지, 해외에서까지 온 멋진 143명의 대원들을 이제 또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또다른 대장정은 시작됐다
대망의 완주식 날, 서울에 오면 마음이 후련할 줄 알았다. 처음엔 지긋지긋한 초록색 논밭 대신에 회색빛 도시가 얼른 보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서울에 다다르니 곁에 있는 대원들을 쳐다보느라 서울의 높은 빌딩은 눈에도 보이지 않았다. 완주하는 그 순간까지 옆에서 서로 손을 잡아주고 함께 땀과 눈물을 흘렸다. 힘겨운 순간을 함께해온 대원들 사이는 그 어떤 우정보다도 더 진하고 그 어떤 사랑보다도 애틋하다. 완주했을 때의 기쁨보다도 곁에 있는 대원들과의 이별이 아쉬운 마음이 더 컸다.
이렇게 대장정은 절대 ‘혼자’서는 완주 할 수 없는 것이다. 항상 옆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던 그 손. “힘들면 가방 빼서 내게 줘”라며 뻗은 손. 그 손을 건네주는 누군가가 없었다면 완주는 커녕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힘들었을 터다. 아마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혼자서는 결코 갈 수 없는 길이며, 내 주변을 살펴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야 삶도 무사히 완주할 수 있지 않을까. 흔히 사람의 줄임말은 삶이라고 한다. 이제 ‘삶’의 대장정은 다시 시작됐기에 그 완주지점을 향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걸어 나가야겠다. “출발 5분전!”

박윤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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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ynjo03@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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