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탁하면 물고기가 허덕인다
물이 탁하면 물고기가 허덕인다
  • 권용우(명예교수 ‧ 법학)
  • 승인 2011.11.2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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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탁하면 물고기가 허덕인다


                                     권     용     우
                                              <명예교수 ‧ 법학>

 


   “물이 탁하면 물고기가 허덕이고, 정치(政治)가 어지러우면 백성들이 흐트러진다”는 말이 있다. 중국 전한(前漢)의 정치가 淮南子(BC. 179 ~ 122)의 말이다.
   이 말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면서, 현재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판을 떠올리게 된다. ‘민의(民意)의 전당(殿堂)’이라 불리우는 국회의사당은 ‘폭력의 전당(戰堂)’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를 막기 위해 일부 야당 국회의원 보좌관들이 외교통상통일위원회를 점거 ‧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런 일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8년 12월에는 한 ‧ 미 FTA 비준안 상정 문제로 여야가 대립하면서 어느 야당 당직자가 국회 외통위 회의장 문을 망치로 부수기도 했고, 2009년 3월에는 국회 로텐더홀에서 야당 당직자가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목을 조르기도 했다. 그러던 국회가 2011년 11월 8일부터는 외통위 회의실 앞에서 야당 의원 보좌관들이 한 ‧ 미 FTA 비준안 처리를 막기 위해 여당 의원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고 한다.

   法治破壞의 本堂으로 바뀐 國會議事堂!

  남경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이 “주인이 들어가려는데 강도가 막느냐”고 했지만, 들어줄 기미가 없었다고 한다. 이를 지켜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보좌진이 정책보조가 아니라 전투부대로 바뀌었다”고 했다.
   국회를 이처럼 ‘폭력의 전당(戰堂)’으로 만든 것이 의원 보좌진만인가. 2009년 12월로 기억된다. 민주노동당 대표 K 의원과 당직자들이 국회 운영위원장실에 쳐들어가 한나라당 ‧ 민주당 ‧ 선진과 창조의 모임 등 3당 원내대표들의 ‘예산안과 감세법안처리 합의문’의 서명을 저지했다. 또, 그 다음 날에는 법사위원장실을 점거하고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 등의 처리를 무산시켰다. 민주노동당의 행패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 날 오전 쇠로 된 원통형 경계라인 봉(棒)을 들고 국회의장실로 쳐들어가려다 제지 당하고는 사무총장실의 탁자 위에 올라가 발로 쾅쾅 구르면서 욕설을 퍼부었고, 이를 제지하는 경위(警衛)의 넥타이를 잡아당기는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이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보좌관들이 무엇을 배웠겠는가. 그 의원에 그 보좌관이 아닌가.

    ‘한 ‧ 미 FTA’가 언제적에 시작했던 것인가?

    국회의사당이 의원들의 흙발에 짓밟히고, 보좌관들의 폭력에 뭉개지는 동안에 한 ‧ 미 FTA 비준안에는 먼지만 쌓여간다. 2007년 6월 30일 한 ‧ 미 양국이 합의문에 공식 서명한 FTA 비준안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한 ‧ 미 FTA는 노무현 정권에서 시작해서 이명박 정권에 넘겨지면서, 추가협상과 재협상의 숨가뿐 고비를 넘기고 여기까지 왔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헷갈리는 것은 오직 국민들이다. 그 국민들이 참으로 답답하다.
    한 ‧ 미 FTA는 제1야당인 민주당이 여당시절(열린우리당)에 추진했던 국책과제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2007년 한 ‧ 미 FTA 협상을 성공시킨 정권의 한 축으로서 성공을 자축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여야의 입장이 바뀌었다고 이제와서 한나라당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민주당이 과연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정당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한심스러운 것은, 노무현 정권 당시 한 ‧ 미 FTA 추진에 앞장섰던 이들이 이제는 ‘반(反)FTA’의 선두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에 통일부장관을 지내면서 ‘FTA 적극 옹호론자’였던 민주당의 J 의원은 한 ‧ 미 FTA 실무책임자인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향해 “대한민국 국익을 대표하는지 미국의 파견관인지, 옷만 바꿔 입은 이완용인지 모르겠다. 식민지 관료가 아니라면 이걸 국회에 비준해달라고 어떻게 내미느냐”고 외쳐댔다. 그는, 또 “한 ‧ 미 FTA는 낮선 식민지이고, 국회가 이를 비준하는 것은 을사늑약을 추인하는 것과 같다”고도 했다. J 의원은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6년 2월 어느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는 개방형 통상국가를 지향하는 만큼 미국과의 FTA가 불가피하다”고 역설했다고 한다. 그 당시 J 의원은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장의 자리에 있었다. 이런 J 의원이 이제와서 어떻게 한 ‧ 미 FTA 협상 실무책임자에게 ‘옷만 바꿔 입은 이완용인지 모르겠다’ ‘국회가 한 ‧ 미 FTA를 비준하는 것이 을사늑약을 추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뒤바뀐 자기의 입장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또, J 의원은 지난 19일 밤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한 ‧ 미 FTA 비준반대 집회에서 “촛불이 5만개가 되면 한나라당은 놀라서 FTA 비준안 강행처리를 못할 것”이라며, “국회를 에워싸달라”고 했다고 한다.
    민주당의 대표인 S 의원은 또 어떤가. 그는 경기지사 때 ‘통상(通商) 지사’를 자처하였으며, 2006년 12월 27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대학생 아카데미에서 “한 ‧ 미 FTA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국가 생존전략”이라면서, “사회 지도층이 적극 나서서 2007년 3월까지 FTA를 체결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이제와서는 민주당 내 협상파 의원 45명의 서명작업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니, 필자의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 ‧ 미 FTA 비준안의 처리를 가로막고 있는 이가 어디 J, S 의원뿐인가. 노무현 정권 당시 FTA의 주무장관인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다른 J 의원도 우리를 헷갈리게 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불과 5년 전에 자신들이 했던 말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같이 '투자자 ‧ 국가소송제도'(ISD)를 독소조항이라고 문제 삼으면서 한 ‧ 미 FTA 비준안 처리를 반대하고 있다.
    ISD 독소조항 논란은,  FTA 타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ISD는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투자자 보호제도로 정착된 것”이라며, 반박자료를 내기도 했던 것이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문제되고 있다.
    민주당이 ISD 조항을 문제 삼아 한 ‧ 미 FTA를 반대하는 데 대하여, 송영길 인천시장(민주당 소속)은 “집권여당 시절 FTA를 추진했던 민주당이 ‘그 때는 (독소조항인 줄) 몰랐다’고 하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5일 국회를 방문해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를 만나 “국회가 한 ‧ 미 FTA 비준 동의를 하면서 한 ‧ 미 양국 정부가 ISD 조항에 대해 재협상을 하도록 권유하면 협정 발효 후 3개월내에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이 뿐이 아니다. 지난 17일에는 국제통상분야 등 각계 지식인 300명이 한 자리에 모여 ‘한 ‧ 미 FTA 비준 촉구 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선언문에서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로서, 세계 최대 시장에 경쟁국보다 유리하게 접근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면서, “국회는 무의미한 다툼을 중단하고 국민의 삶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비준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도의 민족지도자 네루(Nehru, J. : 1889 ~ 1964)는 “정치(政治)란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했다.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최근에 있었던 ‘300인 지식인 선언’에 귀기우리면서, 이제 보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여야 합의로 한 ‧ 미 FTA 비준안을 처리했으면 한다. 이것이 어찌 필자만의 바램이겠는가?
   

권용우(명예교수 ‧ 법학)
권용우(명예교수 ‧ 법학)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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