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오도답파여행 21. 해운대의 밤바다와 슬픔
新오도답파여행 21. 해운대의 밤바다와 슬픔
  • 김재관(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 승인 2012.03.06 21:02
  • 호수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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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에서 떠오른 조선의 슬픔
▲ 광안대교와 해운대의 마천루.

‘동래온천’에서 ‘동래해운대탐량단(東萊海雲臺探凉團)’ 일행과 합류했지만, 이광수는 그들의 여정에 동행하지 않는다. ‘탐량단’이 부산 시내와 오륙도(五六島)를 관광하는 동안 이광수는 숙소인 봉래관(蓬萊館)에서 ‘아베 미츠이에(阿部充家, 호는 無佛)’를 만난다.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의 사장이었던 그는 「오도답파여행」의 후원자 중 한 명이었다. 『無情』의 연재가 끝나기도 전에 「오도답파여행」을 제안했던 나카무라 겐타로(中村健太郞)가 실질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었다면, ‘아베 미츠이에’와 경성일보의 고문이었던 ‘토쿠토미 소호(德富蘇峰)’는 후견인을 자처하고 있었다.

「오도답파여행」의 연재를 위해 6월 26일 남대문역을 떠나 한 달 남짓 네 개 도(충남, 전북, 전남, 경남)를 지나오는 동안 그는 매우 지쳐 있었다. ‘아베’는 허약해진 이광수를 동래온천으로 불러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염천의 날씨에 여행을 하면서 이질(痢疾)로 입원까지 했던 이광수에게 온천욕은 심신의 묵은 때를 벗는 곳이었다. ‘아베’는 목포(木浦)에서 두 주 동안 병석에 누워있었던 그를 기억하며 휴식과 보양을 권했다. 마침 부산(釜山)에 온 ‘토쿠토미 소호’도 경성일보에 연재된 ‘다도해’ 기사를 칭찬하며 그를 격려했다. 게다가 며칠 뒤 경성일보 부산지국에서 ‘나카무라 겐타로’로부터 전송된 여비까지 받게 된다. 이광수는 이곳에서 자신을 후원하는 이들로부터 지친 심신을 위로받고, 새로운 기분을 느끼려 한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목격했던 조선의 현실은 그를 슬프게 한다.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떠오르는 식민지 조선의 슬픈 인상은 온천에서 느낀 청한(靑閒)한 감정마저 사치로 여기게 한다. ‘탐량단’의 시끌벅적한 연회 분위기와 달리 구슬피 우는 벌레 소리에서도 그는 조선인의 비루(鄙陋)한 삶을 떠올린다. 깊게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괴로워하는 그에게 온천욕은 치유제였다. 그는 친구의 권유로 자동차를 타고 해운대(海雲臺)를 향해 출발하면서도 동래온천(東萊溫川) 일대를 둘러 볼 정도로 이곳이 편했나 보다. 한여름의 여정에 지친 그에게 동래온천은 안위(安慰)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동백섬에서 시작되는 고운 모래 해변이 유명한 해운대가 처음부터 해수욕장으로 주목받았던 것은 아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인 해운대 인파는 여름의 절정을 알리는 지표가 되었지만, 부산에서 해수욕장이 생긴 곳은 ‘송도(松島)’였다. 1913년 일본자본에 의해 유원지 겸 해수욕장으로 개발된 ‘송도해수욕장’이 만들어지면서 해수욕이란 새로운 문화가 대중에게 알려졌다. 그렇지만 일본인들의 주요 거주지였던 왜관(倭館, 광복동 일대)에서 가까운 송도에 비하여 해운대는 교통이 불편했다.

이광수 일행이 해운대를 찾았던 1917년 여름, 해운대로 가는 대중교통 수단은 없었다. 동래온천에서 자동차를 불러서 해운대에 온 이광수 일행은 바다로 뛰어 들며 어린 시절의 행동으로 돌아간다. 그렇지만, 해운대에서 해수욕을 하며 즐거워하던 그는 달빛을 받으며 밤바다를 가로지르는 작은 배를 보고 다시 슬픔에 빠진다. 밤바다에 떠 있는 일엽주(一葉舟)를 자신의 처지와 동일화하고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다. 동래온천에서 잊으려 애썼지만, 해운대의 밤바다에서 조선의 현실을 다시 떠올리며 그의 슬픔은 깊어진다.          
      
 ‘농사를 짓지 못해 굶어 죽고, 쓰러져 가는 초가집에 병들어 누운 조선인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광수는 어두운 밤바다에 떠있는 작은 배가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일제행정기관의 선전과 달리 여행에서 목격한 조선의 현실은 암울했다. 「오도답파여행」을 통해 문명화의 사명을 각인하면서도 무기력함을 동시에 경험해야 했던 그의 처지는 푸른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배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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