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불완전한 것들
[백색볼펜] 불완전한 것들
  • 김상천 기자
  • 승인 2012.03.29 00:38
  • 호수 1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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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것들이 모이면 아주 따뜻하다

◇ 나는 불완전한 것들을 좋아한다. 불완전한 것들은 자꾸 마음에 걸린다. 뭔가 하나 빠진 것 같은, 어딘지 삐딱해 보이는,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것들. 드르륵 서랍을 열고, 그런 것들을 하나씩 넣어 놓는다. 옷걸이에 걸어둔다. 그래서 수집하듯 담아둔 불완전한 것들이 내방에 가득하다. 욕조에서 심장에 스테이크 칼을 꼽고 죽은 엘리엇 스미스를 들으면 나는 마음이 편해진다. 자기 전에 윤성희를 읽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못 견디게 지칠 땐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또 본다. 술 먹다 죽으려고 라스베가스로 떠난 알콜중독자와 덩그러니 외로운 창녀의 사랑 얘기를 보며, 또 위로받는다.

 

◇ 가끔 뭔가를 파괴하고픈 욕망을 참을 수 없을 때가 있다. 나야말로, 불완전한 인간이다. 아주 열심히 아껴온 것들, 모든 노력과 열정을 바치던 것들이 다 무의미하고 꼴 보기 싫게 느껴질 때가 반드시 온다. 그럴 때면 어두운 방안에 틀어박혀 며칠 몇날 하루 종일 영화를 보며 지낸다. 너무 많은 말을 한 것 같고, 사람 만나기가 싫어지면 그렇게 웅크리고 있는 게 좋다. 그럴 때 밖에 나오면 누군가를 상처 입히게 된다. 상처는 돌아와 결국 내 몫이 된다.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상처는 끔찍하다.

 

◇ 불완전한 것들은 서로 모여 있으려는 습성이 있다. 상처를 입고 나면 상처 입은 사람을 알아본다. 외로움은 기가 막히게 외로움을 알아챈다. 외로운 개가 주인의 눈물을 핥듯이, 불완전한 것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싶어 한다. 만약 웃음과 웃음 사이의 쓸쓸한 눈빛을 알아챈다면, 당신도 불완전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당신도 모여야 한다. 왜냐면 불완전한 것들이 모이면 아주 따뜻하기 때문이다. 이해를 바라지 않는데도 이해해주고,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위해 체온을 나눠준다. 말해줄 때까지 묻지 않는 방식으로 대화가 오간다. 그러니 어쩌면 불완전한 것들이 모이는 문제에 선택의 여지는 없을지도 모른다.

 

◇ 어떻게 생각하면 모든 게 어차피 다 불완전한 것들이다. 세상은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불완전한 약속에 불과하다. 수학과 철학과 문학은 결코 꿈을 이룰 수 없다. 숫자는 약속일뿐이고, 언어는 한계 안의 동어반복일 뿐이다. 철학은 헛소리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란 모이는 것뿐이다. 모여서 그냥… 둘러앉아 밥이나 먹자는 것이다. 서로의 잔을 채워줄 기회가 생기면 더 좋고. 그러면 불완전한 나는 불완전한 당신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당신도 나의 불완전함을 안아줄 것이다. 우리는 모여서 기대 살아갈 수밖에 없다. 따뜻하게 서로.   <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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