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파사현정’, 그리고 ‘진리’와 ‘정의’
[백묵처방] ‘파사현정’, 그리고 ‘진리’와 ‘정의’
  • 허재영(교육대학원·교육) 교수
  • 승인 2012.11.27 13:36
  • 호수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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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대학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가 ‘파사현정(破邪顯正)’이었다. ‘그릇된 것을 깨뜨리고 바름을 드러내라’는 뜻의 이 성어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모순과 그것을 깨뜨려야 한다는 지식인들의 소망을 담고 있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함께 들어 있는 한 해이기에 이 성어는 많은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얻어내기도 한 듯했다.

그런데 연초의 상황과 연말의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정말 ‘파사현정’이 이루어진 것일까? 아직 큰 선거가 남아 있으니 파사현정의 결말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쉽게 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해가 저물고 또 새로운 해가 시작될 시점이면, 언론사마다 습관적으로 게재하는 기사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올해 유행했던 말이나 인상 깊었던 사건을 되짚고, 또 새해맞이 특집 기사를 내는 일이다. 올해의 사자성어도 그런 맥락에서 출발한 유행성 표현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파사현정’의 실현 정도를 물어보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자, 또 물어볼 대상도 없는 모호한 표현처럼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책 읽는 사람으로서 올해뿐만 아니라 죽을 때까지, 아니 그 정도는 아니어도 책을 놓을 때까지는 고민하고 또 추구해야 할 정신이 있음을 안다. 그 단어는 다름 아닌 ‘진리’와 ‘정의’이다.

우리 단국대학교는 ‘진리 봉사’를 교시로 삼는 학교이다. 그만큼 ‘진리’는 우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대학 구성원들은 진리의 이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달리 말해 진리를 포기한다면 지성인이 될 수 없으며, 지성인이 아닌 대학생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일까? 축자적인 해석을 한다면 ‘참된 이치’를 의미한다.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참’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누구나 쉽게 ‘참’을 이야기하지만,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참됨’을 얻어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적어도 ‘참’이 ‘거짓’ 또는 ‘허위’와 대립되는 개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불성실하거나 협잡을 하거나 비도덕적인 행위를 비난할 수 있다.

여기서 또 하나 생각해 볼 문제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사실 ‘진리’와 ‘정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왜냐하면 ‘진리’ 그 자체는 ‘바름’을 전제로 한 것이며, ‘바름’은 ‘정의’라는 말과 상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구체적인 상황에 부딪히면 ‘정의’가 무엇인지 모호해질 때가 많다. 그렇기에 플라톤 이후 대부분의 학자들은 ‘정의’에 대해 논술해 왔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고대 로마의 법학자인 울피아누스가 “정의는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 돌리고자 하는 항구적인 의지”라고 한 정의는 지금까지도 불변의 진리처럼 보인다.

이제 큰 선거가 지나면 또 한 해가 저물고 다시 새해가 시작될 것이다. 정문일침의 올해 단어보다 ‘진리’와 ‘정의’의 문제가 내게는 더 소중한 숙제처럼 생각된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이 숙제를 잘 풀어낼 수 있다면, 아니 누구나 이 문제가 본질적이고 중대한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한다면, 내 주위 아니 우리 사회의 아픔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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