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마라톤
[백색볼펜] 마라톤
  • 조수진 기자
  • 승인 2013.06.08 04:00
  • 호수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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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대로 맡기는 순간이 온다

◇정말 흐르는 대로 거침없이 달리고 왔다. 지난 25일 상암 월드컵 공원 평화 광장에서 열린 ‘NIKE SHE RUNS SEOUL 7K’에 다녀왔다. 한강 코스와 노을 공원 코스 각 각 5천 명씩 만 명의 여성 참가자를 추첨으로 뽑았다. 솔직히 신청하면 다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필자의 주변 사람들은 다 떨어졌다. 3만 원의 참가비까지 있어서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마라톤 완주하고 기록도 무난하면 자소서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는 룸메이트의 꼬임에 넘어가 나서게 된 마라톤. 이동하는 중만 해도 후회스러웠는데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이스페인팅으로 호랑이와 치타로 분해 있는 참가자부터 소풍 온 것 마냥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참가자들까지. 넘치는 생동감에 필자까지 날아다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이키 전속 트레이너 ‘제니’란 사람의 구령에 맞춰 만 명이 함께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남자라고는 스텝이나 몇 몇 참가자들의 남자친구가 다였던 지라 정말 여고의 체육시간처럼 거리낌 없는 동작에 다들 웃겼는지 서로 피식 웃으며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트레이너가 외친 “헉..헉..여러분..헉..아, 힘드네요. 준비 되셨죠? NIKE SHE RUNS SEOUL 7K 파이팅 외치고 시작합시다!”란 멘트에 따라 “NIKE SHE RUNS SEOUL 7K 파이팅!”을 외치며 마라톤 시작의 카운트를 알렸다. “3, 2, 1, 우와!”라는 함성과 함께 시작된 마라톤은 정말 치열했다.

◇여고가 내신 성적 받기 힘들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그만큼 여자들 중 독한 악바리들이 많다는 얘기인데, 이건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참’이다. 7km 완주가 목표였던 필자였지만 공부로 치자면 고시 공부를 하는 사람들처럼 이 악물고 달리는 참가자들의 모습에 저절로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심지어 엄마와 동년배인 듯한 몇몇 분들까지 파릇파릇 20대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뛰는 모습이 아니, 그 열정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필자가 5km에 다다를 때였을까 ‘정말 이러다가 죽겠다’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힘들어서도, 숨이 차서도 아니었다. 무서운 속도로 치고 나오는 만 명의 참가자들의 모습에 ‘넘어지면 죽는다’는 생각이 번뜩 스쳤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7km의 거리를 54분 6초 만에 완주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정도면 만족 이상의 성과다. 동네방네 자랑했음은 물론이요,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뛰었던 마라톤에 후회가 남지 않았다. 그저 흐르는 대로 달렸을 뿐인데,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이해가 안됐었다. 마라톤만 생각해도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청주에서 서울까지 올라와서 참가했다던 송다혜(23)씨, 마라톤 후 애프터 파티에 몸을 맡기고 싶다던 지현아(25)씨 모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이 ‘독특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물에 갇혀 사는 우리 모두에게 흐르는 대로 자신을 맡기는 ‘독특한’ 순간이 찾아온다. 결과는? 결과를 떠나서 후회가 남지 않았던 것 같다. 만 명과 함께 거침없이 달린 순간이 여름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느껴지는 건 지금 필자에게 최고의 해답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秀>

조수진 기자
조수진 기자

 ejaqh2@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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