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왕형님'이 떴다.
인터넷의 '왕형님'이 떴다.
  • 최형균
  • 승인 2013.09.22 22:05
  • 호수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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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인사이드 김유식 대표이사
■ DC인사이드 김유식 대표이사
“유저들과 소통하는 것 자체가 즐겁죠
앞으로도 계속 이어졌으면 합니다”

커뮤니티의 원형이 되는 게시판은
오래 지속될 것이며
DC인사이드도 그럴 겁니다

▷▶디시인사이드(DCinside)란?
월 평균 방문자만 PC기준 500만 명이 넘는 국내 최대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다. 1999년 10월 김유식 대표에 의해 설립됐다. 초기에는 디지털 카메라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였지만, 지금은 1540개의 다양한 분야를 토론하는 갤러리를 보유한 거대사이트로 성장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인터넷 비주류 문화의 원조로 평가받는다.

▲ 인터넷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
아버지가 신문사에서 일을 하시면서 컴퓨터 사용법을 필요로 하셨다. 그런데 중년의 나이에 혼자 학원에 다니기 민망해하셨다. 그래서 컴퓨터 학원에 다니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를 배우면서 또래보다 컴퓨터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10년 동안은 게임하고 프로그래밍만 주구장창 했다. 그러다가 유머글을 쓰고 싶어서 PC통신에 입문하게 됐다.
▲ 하이텔에서 메인보드를 판매한 걸로 알고 있다.
군대에서 제대하고 난 뒤 용산에 가보니 시중가 17만원인 메인보드를 딜러에게는 14만원에 팔더라. “이걸로 돈 좀 벌 수 있겠구나” 싶어서 슬리퍼 질질 끌며 귀에 볼펜 꽂고 계산서 들고 다니면서 딜러인척 하고 물품을 싸게 샀다. 그리고 하이텔에 15만 5천원에 메인보드를 팔면서 대박이 났다. 하지만 점점 경쟁상대가 생겨서 차별화 전략의 하나로 여성 이름으로 판매를 했다. 여성 게시물은 조회수가 배가 넘어서 판매에 도움이 많이 됐다. 자극적인 문구로 ‘가격파괴’라는 단어도 썼는데, 일본에 다녀오니 백화점 마다 전부 쓰고 있더라. 상표등록을 해 둘 걸 그랬다(웃음).
▲ 인터넷이 이 정도까지 발전할 줄 예상했나?
일본에 유학을 간 뒤에도 하이텔을 통해 물건판매를 계속했다. 해외에서 하이텔로 들어가는 직접적인 경로가 없어 해외전화료로 청구돼 돈이 무진장 깨졌다. 그러다 ‘아주대학교’ 사이트를 경유해서 가는 편법을 쓰면 일반 전화비만 청구되는 것을 알았다. 이후 PC통신이 좀 더 발전하면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이트에 글을 쓰고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당시엔 PC통신의 확대라는 좁은 개념으로만 생각했다. 인터넷을 진지하게 생각한 건 영국으로 유학 갔을 때다.
▲ 대공분실에서 취조를 당한 뒤 영국으로 도피한 걸로 안다.
당시 강릉 무장공비 사건이 터졌는데, 정부 발표에 의문을 품은 글을 쓰다가 대공분실에 잡혀갔다. 수사결과 무혐의로 결론이 났지만, 보안수사대가 자꾸 전화를 해서 한국을 떠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미국으로 가려고 했지만, 구금기록을 적는 항목이 있어서 “어, 안되겠네?”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영국이다.
▲ 영국에서 따로 사업구상을 했나?
영국에선 카지노에 빠져 살았다. 카지노에 빠져 살면서 “카지노가 유망한 산업”이라는 생각을 했다. 카지노는 기본적으로 노동집약 산업이라 고용 창출 효과가 엄청나다. 게다가 주변 숙박·음식 업계와 관광문화까지 확산시켜 준다.
그리고 ‘2차 세계 대전’ 연구에 몰두했다. 원래부터 밀리터리에 관심이 많기도 했고, 영국은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진귀한 자료가 많기에 너무 행복했다(웃음). 밀리터리 동호회 활동도 열심히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PC통신을 보니 ‘한메일’이니 ‘인터넷’이니 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더라. 더 늦어지면 뒤쳐질 거라 생각해서 급히 귀국하였다.
▲ 귀국 후 어떤 일을 했나?
90년대 중반부터 노트북 동호회를 시작했다. 노트북 사용기를 올렸는데, 남들이 “지난 제품의 사용기를 올려봤자 아무도 안 본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재밌어서 계속 올렸다. 그러다 하이텔 담당자가 PC통신에 쓰던 걸 웹사이트에 올리면 1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재미로 시작했던 일인데 돈까지 준다 하니 냉큼 수락했다. 그런데 노트북만 다루자니 허전하고 없어 보여서 디지털카메라 사용기도 올리기 시작했다. 디지털카메라는 사진이란 결과물이 나오고 비교적 사용방법이 복잡해 이용자들이 정보공유를 위해 사이트에 몰리면서 커뮤니티 활성화에 엄청 도움이 됐다. 그 당시 하이텔에 ‘김유식의 디지털카메라 인사이드’코너를 개설했는데 이것이 디시(디지털카메라의 준말)인사이드의 모태다. ▲ 수많은 갤러리로 분화가 된 이유는?
2000년 2월쯤에 후배가 “형, 저랑 같이 강남에 가요”라고 하더라. 강남에 ‘바이벤처’라고 유사 벤처 캐피탈에 갔는데 뜬금없이 사장과 임원진 앞에서 사업설명을 해보라고 제안을 받았다. 간단히 사업설명을 마치니 사장님이 “조 이사야, 이 녀석한테 5억 줘서 보내라”고 했다(웃음). 그 뒤 하이텔에서 추가로 자금지원 받고, 사이트 이용자들이 많아지면서 사이트 추가개설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갤러리를 늘리게 됐다.
▲ 갤러리가 많아지면서 관리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갤러리가 1540개 정도 된다. 관리하는데 힘들긴 하다(웃음). 관리자 여럿이 분담해 가면서 로테이션으로 카테고리 별로 관리를 한다. 갤러리를 개설할 때는 시기가 무척 중요하다. 또한 한 갤러리에 이용자가 많아지면 글을 올려도 몇 초 만에 최신글이 1페이지에서 사라지니, 어느 정도 분화를 시키는게 커뮤니티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다만 미리 잘라주면 멍석만 깐 격이 되고, 너무 늦게 하면 열기가 시들해져서 글리젠(글이 올라오는 것)이 줄어들어 이용자들이 몰리지 않는다. 참 어렵다(웃음).
▲ 디시인사이드 이용자들과 소통을 자주 하시는 것 같다.
게시판을 운영할 때 소통은 필수다. 회사 직원은 80명뿐 이지만 실제 이용자들은 200만이 넘기에 현장감 있는 피드백을 얻을 수 있다. ‘롱테일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사이트 개선을 위해서만 소통을 하는 것은 아니다. 유저들과 이야기 하며 때때로 만나서 노는 것도 매우 재밌다.
개인적으론 ‘주식 갤러리(주갤)’를 좋아한다. 주식장이 끝나고 주식 얘기하면 혼나는 분위기가 아이러니 하긴 하지만 말이다(웃음). 갤러리에서 이야기하다 실제로 친해진 케이스도 있다. ‘JYP’ 정욱 사장을 알게 됐는데, 가끔 만나서 술도 마시고 논다.(웃음)
▲ 인기 갤러리가 어디인가?
과거엔 ‘엽기’라는 키워드가 뜨면서 엽기갤러리가 떴다. 그러다가 사건사고가 많은 ‘막장 갤러리’가 뒤를 이어받았다. 뒤이어 ‘코미디 갤러리’, ‘스타크래프트 갤러리(이하 스갤)’, ‘야구 갤러리(이하 야갤)’가 디시의 수도(중심지)가 됐다. 예전엔 ‘스갤’이 디시 전 갤러리를 압도하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야갤’이 가장 크다. 입대 한 뒤 전역한 ‘스갤’이용자들이 “디시 망했네”라는 말도 하지만 다른 갤러리로 인원들이 이동해서 그런 거지, 전체 디시 이용자는 줄지 않았다. 10년 동안 ‘디시 망했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웃음).
▲ 일간베스트(이하 일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일베는 디시에서 지워진 게시물을 나르던 사이트에서 비롯됐다. 사실 일베의 생성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일베 이전까지는 토종 한국사이트가 100위권 안에 드는 경우가 드물었다. 더불어 인터넷 상에서 좌·우의 의견이 균형 있게 다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건전한 토론문화가 형성될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다만 너무 막나가는 측면이 없잖아 있다. ‘전라도’를 비하하고 ‘5·18 희생자’들을 희화화 하는 것은 결코 용서될 수 없는 사안이다. 사회엔 ‘상식’이란 틀이 있는데 이를 벗어나는 행위인 것이다. 사실 디시가 일베의 아버지라지만 디시는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전직 대통령 희화화나 정치적으로 편중된 게시물을 삭제한다. 이런 규제가 없었으면 일베가 생길 이유도 없었을 것이고, 디시가 일베의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일베 이용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얘기하는데 법과 상식에 어긋나는 행위를 정당화 할 순 없다고 여긴다. 너무 급속도로 확장해서 운영자와 이용자 간에 합의, 예를 들면 “이정도 게시물은 삭제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다. 다만 가끔 디시가 잘못 한 것을 일베가 대신 맞아주는 경우가 많아서 ‘무적의 방패구나’ 싶기도 하다(웃음).
▲ 디시인사이드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나?
모든 현안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지속성을 유지하길 바란다. 커뮤니티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게시판이다. 게시판이라는 원형에 패션이 붙으면 트위터, 페이스북 등으로 분화가 되는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 인터넷 트렌드는 2년 주기로, 현재 위 SNS 사이트들의 실 사용자들은 급감하는 추세다. 반면에 게시판 위주의 사이트들은 기본적 기능에 충실하기에 오래 지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디시가 만들어진지 15년이 지났지만, 기본 기능에 양념을 추가할 순 있어도 큰 틀을 바꿀 생각은 없다. 이번에 보이스리플(음성으로 댓글을 달 수 있는 기능) 기능을 추가한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 벤처1세대로서 창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대학 강연을 가면 “일단 부딪혀 봐라, 준비가 덜 됐어도 해봐라”고 말해준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일단 시작하게 되면 그만큼 배우는 것도 많다. 사과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사과가 떨어지길 기다린다고 비웃을게 아니라 그러한 노력이라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욱이 20대나 30대 때는 자본이 많지 않아서 망해도 금방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나이가 들면 해보고 싶어도 자식·아내 걱정과 가진 것이 많아져서 도전이 불가능하게 되니 젊을 때 도전을 해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사람을 많이 만나는게 중요하다. 뜻밖의 인연은 큰 행운을 몰고 올 때가 있다. 운은 절대 혼자서만 오지 않는다. 운은 항상 사람과 같이 찾아오게 돼있다. 하지만 불운도 인연과 같이 찾아온다. 근데 불운 무섭다고 구석에 틀어박혀 사는 건 너무 재미없지 않을까?

최형균 기자 capcomx6@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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