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영화 <족구왕>
백색볼펜. 영화 <족구왕>
  • 승인 2014.10.16 18:22
  • 호수 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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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할 수 있는 당당한 청춘을 위해

영화 <족구왕>을 봤다. 저예산 독립영화로 뮤비꼴라주에서 밖에 하지 않고, 개봉한 지 한달 반이 넘어가기 때문에 압구정까지 <족구왕>을 보러 찾게 됐다. 영화는 실로 간단하다. 예고편을 보지 않고 포스터만 봐도 알 수 있는, 군에서 제대한 복학생이 교내 족구장을 되돌리고, 족구 시합에서 우승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뻔하디 뻔한 스토리와 재미를 위해 나는 왜 압구정까지 찾았을까. 그것은 편집장을 지낸 선배이자 작년까지 단대신문에 엔딩크레딧을 연재하던 ‘영화 좋아하는 김상천’ 선배의 추천에 완벽히 속아 넘어간 것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을 해보고, 족구를 해본 사람이 봐야 재밌는 영화 아니야?” 영화를 볼 때의 느낌이었다. 실제로 내 또래의 여자들이라면 조금은 공감이 어려울 수도 있었다. 혹은 영화 볼 때 아무생각 없이 즐기는 사람이라면 그냥 ‘이게 재미 말고 뭘 준다는 거지?’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 <족구왕>은 공감하지 못할 요소를 갖춘 나에게 공감 그 이상을 주었다. 뻔하지만 누가 뭐래도 꿋꿋이 족구장 재건립 서명 운동을 하고 족구를 계속하는 주인공 만섭이의 모습은 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자신과 수준이 달라도 한참은 다른 여자에게 고백하고 웃게 만드는 만섭이의 모습은 저런 게 사랑이냐고 비웃던 나를 얼얼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아무리 수군거리고 더럽다고 비웃어도 “재밌잖아요”라고 말할 수 있는 만섭이의 모습은 아마 극장에 앉아있던 모두의 청춘을 부끄러운 청춘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단 한사람이라도 뒤에서 수군거리면 견디지 못하고 흔들리던 내 가슴을 한 대 친다. 그리고 여럿이 수군거리면 그것을 내 결정과도 직결시키던,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이 조성한 사회적 분위기에 내 미래도 잡고 흔들던 나를 다시 흔든다. 한 두 사람의 수군거림은 이렇게 모여 성적과 취업률, 돈을 중시하는 대학의 분위기를 만들었고, 우리는 그것에 순응하며 ‘좋아하는 것’과 ‘재미’를 찾아가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답답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만섭이는 다시 아랑곳하지 않고 말한다.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같다고 생각해요.”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꿈을 위해서보다는 대학이라는 목표만을 위해서 시간을 투자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된 지금, 우리는 또 다시 취업, 직업이라는 목표만을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한 번 후회했으면 충분하다. 십년 뒤 ‘발야구왕’이 개봉할 때까지 ‘진짜 정신’을 못 차리고 또다시 부끄러운 청춘을 살아갈 것인가? 극 중 항상 책을 끼고 다니며 면학분위기를 운운하며 으르렁 거리는 등장인물 고운은 과거 족구시합에서 우승해 좋아하는 남자친구에게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라고 소리 지르며 관계를 끝냈었다. 그렇게 말하는 모든 이들에게 대답해 주고 싶다. “넌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惠>

惠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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