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의와 중용 그리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대학생
사설. 정의와 중용 그리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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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4.01 16:07
  • 호수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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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동물과 같은 것은 주위환경을 감지하고 인식을 통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등동물이자 생각하는 능력을 갖춘 인간은 자신의 환경과 대상에 대한 반응을 이기적으로 교묘하게 포장한다. 즉, 인간의 행동에는 자신의 이익을 고려한 경제적 행위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포석이 존재한다. 동물들에서도 이러한 행위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인간은 역사적으로 축적된 지능을 활용하여 자신의 영향력과 이익에 대한 추구를 멈추지 않는 것이 특이하다.

생각하는 인간 행위의 결과가 주위 사람과 공동의 환경에 피해를 준다면 우리는 우선 동양적 관점에서 수신(修身)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고언에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라는 말이 있다. 즉, 인생의 도리를 알면 삶과 죽음이 같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도를 깨우치면 사고와 행위가 인(仁)에 부합하며, 인생의 진리인 선(善)과 사회의 정의(正義)를 터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사상이나 현대 서양정치에서의 정의라는 것도 훈련된 지도자와 교양있는 시민의 개인과 사회의 선인 정의을 말하는데, 이 정의로 표현되는 선은 개인과 사회의 공통부분이며 이를 통해 인간은 신이 원하던 사회를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동양사회나 서양사회 모두 정의가 존재하기를 원하는 마음은 같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동양인은 사고에 더욱 초점을, 서양인은 행위에 더욱 중점을 맞춘 정도의 차이만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고와 행위는 하나로 연결되는 것으로 따로 분리되는 것도 아니며, 이것은 모두 개인적 수양과 사회적 학습과 훈련을 통해 동시에 구현된다. 서양의 아카데미나 동양의 학당은 모두 인간에게 사회에 대한 학습을 훈련하던 장소였다.

서양이 토론을 통해 사회정의에 대해 정의해 갔다면, 동양에서는 인간의 성장과 교육 그리고 사회화 과정에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중요시 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수양이 먼저이고, 사회의 기초 생활공간인 가족에 화목이 이루어져야 사회와 천하가 태평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을 이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중용(中庸)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사고와 행위를 인에 근거하여 수양하고 행동하면 사회의 선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중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의롭고 주위에 도움이 되는 선을 이루는 인의 행위는 부족하거나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잘 수양된 개개인으로 이루어진 가정에 자연스런 평화가 이루어진다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서로 사랑하라!”는 인간 존엄에 기초가 되는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대학생은 지적 활동이 가장 왕성한 시기로 배움의 터에서 자신을 수양하며 자신과 가정과 사회의 정의를 추구하려는 숭고한 이상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배움과 정의를 이루는 과정에 바로 과유불급의 중용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본다. 마음껏 사유하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개인의 인적 수양과 과유불급의 철학은 젊은이들 가슴의 촛불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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