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폭력
데이트 폭력
  • 박다희 기자
  • 승인 2016.04.05 17:51
  • 호수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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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시선 2 : ‘사랑’으로 감쌀 수 없는 폭력과 비이성
▲ 출처: MBC PD수첩, 데이트 폭력 '괴물이 된 남자들'

● [View-1] 피해 여성

“#$@&…”, “퍽…” 뒤에서 들려오는 알아들을 수 없는 욕설에 고개를 돌리던 찰나, 뒤통수를 갈기는 엄청난 힘에 눈앞이 하얘진다. 멀리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렇게 피해 다녔는데 결국 마주치고 말았다. 기억에서 통째로 지워버리고 싶은 헤어진 남자친구. “야 이 X아, 잘 지냈냐?”, 끔찍한 목소리에 얼얼한 뒤통수를 더듬어볼 틈도 없이 발걸음을 바삐 움직인다. 몇 걸음 떼지 못하고 거칠게 잡힌 손목. 벌써 발갛게 자국이 생겼다.

그와 헤어짐을 결심하기 이전부터 폭력은 시작되고 있었다. 처음엔 연락이 안 되면 끊임없이 전화를 걸거나, 데이트 중 휴대전화 메신저 목록을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그런 것이 데이트 폭력이라는 주변의 말에도 그를 다그치기보단 이해하려 했다. ‘여태 외로워서 그런 거겠지, 그동안 챙겨줄 사람이 없어서 그랬던 거야.’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의 집착은 심해졌고, 더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들이 ‘안전 이별’ 해야 한다던 말을 새겨들어야 했다. 일주일 전 어렵게 이별을 고하던 순간 “죽어버리겠다”며 차도로 뛰어들었던 남자다. 손목을 한참 죄던 그가 어딘가로 나를 끌고 간다. 머릿속에 적색경보가 울린다. 주머니 밖으로 반짝이는 저건 뭐지? 칼 아닌가? 나 좀 도와주세요!

 

● [View-2] 가해 남성

너무나 예쁜 그녀는 어두운 내 삶의 한 줄기 빛이었다. 그녀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음악, 지금 있는 장소, 만나는 사람까지…. 처음엔 그냥 연락을 자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 따라 그녀가 이상하다. 답장이 자꾸 늦다. 대체 누굴 만나고 있는 거지? 그녀가 떠나버리면 어떡하지? 불안하다.

그러던 중 그녀가 화장실에 가면서 두고 간 휴대전화가 눈에 띄었다. 친구들이 보낸 메시지엔 ‘안전 이별해라’, ‘보복 조심해’ 등의 말이 있었다. 그녀가 나를 두려워하고 있구나. 그때부터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졌다. 더 철저하게 사랑했고, 철저하게 감시했다. 너도 나만큼 나를 사랑해줘, 떠나지 마!

그로부터 며칠 후 그녀가 이별을 통보했다. 화가 났고, 주체할 수 없었다. 두고두고 후회하게 해줘야지. 단 한 순간도 나를 잊지 못하게 할 거다. 차도로 뛰어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다. 내 옆에만 있어야 하는 그녀가  곁에 없다.

내가 정말 죽으면 나를 영원히 기억해 줄까. 그녀 앞에서 죽는다면 어떨까. 병원에서 나와 칼 한 자루를 챙겨 그녀의 학교로 향했다. 저 멀리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가 보인다. 이것 봐, 내가 널 목숨 바쳐 사랑한다는 걸 보여줄게. 영원히 헤어지지 말자.

*실제 사례를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 [Report] 안전 이별

‘안전 이별’이란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이는 ‘데이트 폭력이나 범죄가 발생하지 않고 무탈하게 연인과 헤어지는 것’이라는 뜻의 신조어다. 인터넷상에서 우스갯소리로 안전 이별법이 떠도는데, 여기엔 △갑자기 통보식으로 이별을 고하지 말 것 △돈을 빌려달라고 조르며 헤어질 것 △가족이 중병에 걸려 간호해야 한다는 핑계를 댈 것 등이 있다. 

요즘 데이트 폭력으로 발생하는 범죄가 심상치 않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0~2014년) 애인 관계에 의한 강간·강제추행, 살인미수 등 5개 범죄 피해자의 수가 총 3만6천362명에 달했다. 매년 평균 7천272건의 범죄가 발생하는 것이다. 지난 2월부터 3월까지 ‘데이트 폭력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한 결과 가해자가 868명이나 검거됐다.

데이트 폭력의 원인으로는 첫째, 어린 시절의 불우한 성장 환경이 있다. 가정에서 폭력을 당했거나 목격한 경우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연인에 대한 소유욕이나 집착이다. 특히 이러한 집착이 행동으로 나타난다면 데이트 폭력의 전조로 의심해야 한다. 이 외에도 왜곡된 남성성과 여성성 등이 있다.

일각에서는 데이트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한국판 ‘클레어법’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클레어법이란 지난 2009년 일어난 애인 간 살인 사건을 계기로 영국에 도입된 법으로, 폭력 위험에 둘러싸인 사람들에게 상대의 폭력 전과를 공개하는 것이다.

사랑을 속삭이던 상대가 이성 잃은 야수가 돼 버리는 일은 끔찍하다. 애인의 폭력으로 불안에 떨며 감춰진 그(녀)의 과거 기록을 확인하는 날이 정말 올까. 종말은 비이성의 시대다.

박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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