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놀아본 언니들’ 장재열 대표 : "오늘도 울지 않고 살아낸 너에게…"
‘좀 놀아본 언니들’ 장재열 대표 : "오늘도 울지 않고 살아낸 너에게…"
  • 이상은 기자
  • 승인 2016.11.08 17:46
  • 호수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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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문화기획 커뮤니티 청춘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들’ 장재열 대표

<Prologue>
우리의 청년들이 병을 앓고 있다. 뭘 하고 싶은지, 어떤 일이 적성에 맞는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려간다. “고민해봤자 답은 나오지 않아. 뭐라도 하면 답은 나오겠지”라며 무턱대고 뛰어간다. 필사적으로 앞길을 헤쳐 나가지만 그 이유와 방법을 모른다. 결국 청년들은 지치고 저마다 마음의 병이 생기곤 한다.


이러한 청년들을 위해 자칭 ‘스타 멘토’들이 그럴싸한 말로 청춘들을 일깨우는 한마디를 던지지만,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그들의 말은 그리 공감 가지 않는다. 청춘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들’ 대표 장재열(31) 씨도 여느 멘토처럼 엄친아의 축에 속한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는 2013년부터 지금까지 2만7천여건 상당의 고민 상담이 끊이지 않고 들어오고 있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지난달 3일, 그를 만나서 속내를 들어봤다.

▶ 서울대 미대 출신에 삼성의 인사담당자로 있었다.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학창시절 한 번도 1등을 해본 적 없고 집안 형편도 가난한 편이었다. 성격도 여성적인 편이라 남모를 열등감도 있었다. 그래서 공부를 독하게 했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스펙을 쌓았다. 그때는 스펙이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전이었다. 하지만 서울대라는 간판을 제외하면 취업 시장에서 내가 가진 조건들이 그리 유리하지는 않았기에 대학생활을 즐길 새도 없이 스펙 쌓기에만 몰두했다. 4학년 때는 소위 말하는 ‘서울대 스펙 왕’이 돼 있었고, 일사천리로 삼성에 합격할 수 있었다.

 

▶ 치열하게 노력한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회사에 돌연 사표를 냈다.
10대 때는 서울대에 합격하고 삼성에 입사하면 치열한 경쟁사회가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회사에서도 수없이 많은 경쟁이 이어졌다. 내 안의 열등감이라는 산을 넘으면 그 이후로는 평탄할 것이라 생각하고 온 힘을 다해 그 산을 넘었다. 하지만 또 다른 수많은 산이 날 가로막고 있었다.

 

▶ 그 산들을 마주했을 땐 기분이 어땠나.
결국 질려버렸다. 내가 마주한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난 삼성의 인사담당자였고 취준생에게 ‘행복하고 새로운 세상이 기다린다’고 말해야만 했다.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회의감이 들었다. 끝내 회사 생활을 도저히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우울증에 빠졌고 퇴사를 했다.

 

▶ 퇴사한 뒤 블로그를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자신과의 대화를 해보라는 처방을 하셨다. 그때부터 블로그를 운영하게 됐다. 상담소의 시초가 된 블로그다.


▶ 어떤 블로그였나.
블로그는 치료의 일환이었다. 원래 내 아이디로 블로그에 고민을 작성하고, 새로운 아이디로 고민에 대한 답변을 달았다. 그렇게 매일 꾸준히 작성했던 글이 노출돼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블로그를 치료로써 시작한 것이지 관심을 받고자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점점 높아져 가는 관심이 부담되기도 했다.

 

▶ 사람들이 상담 블로그로 오해했던 것 같다.
블로그에 올린 고민 상담의 내용을 보고 사람들이 메일로 고민을 보내왔다. 일주일에 두 통 정도였지만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고민을 나누며 점점 우울증이 나아졌다.

 

▶ 완치 후에도 블로그를 운영했나.
완치 후에는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고민 상담 메일이 끊이질 않았다. 나 또한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고, 우울증 환자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꼈다.


▶ 그래서 청춘 상담소를 열게 됐나.
맞다. 기존의 블로그에 고민을 올리던 나는 ‘장재열’이었지만, 답변을 달던 나는 장재열이 아닌 제3자였다. 그렇기에 새로운 아이디로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블로그를 접고 대중 콘텐츠로 네이버 포스팅 연재를 시작했다.

 

▶ 그때 시작한 이름이 ‘좀 놀아본 언니’다.
블로그를 접한 사람들은 모두 나를 ‘30대 정도의 미대를 나온 센 언니’라고 생각했다. 이를 반영해 좀 놀아본 언니로 지은 것이다.

 

▶ ‘언니’와 ‘언니들’의 차이점이 있나.
사람의 고민은 한없이 다양하고 나는 한 명의 평범한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하지 못하는 고민이 반드시 있다. 사람들의 고민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여러 관점을 담을 수 있도록 분야가 겹치지 않게 언니들을 구성했다. 중요한 점은 나와 상담한 사람들로 구성했다는 점이다. 이는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너도 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언니들’이 시작됐다.

 

▶ 나름대로 세운 상담의 원칙이 있다고 들었다.
조언은 주되 마지막 결정은 스스로 내릴 수 있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결정은 너의 몫”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 온전히 상대방이 되어 진심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에너지를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 그게 나의 재능"

▶ 상담내용은 주로 어떤 내용이 많은가.
연애 고민이 40% 정도 차지한다. 진로 고민도 비슷한 비율이다. 10대에는 진로, 20대 초반에는 전공에 관한 고민, 중후반 정도에는 취업 고민이 가장 많다. 입사 1~2년 차 정도에는 ‘미생’ 같은 문제, 3~4년 차에는 퇴사와 이직에 관한 고민이 다수이다. 이 외에도 성폭행 피해자나 미혼모들의 사연도 많다.

 

▶ 비슷한 내용을 상담하면 지루할 때도 있지 않나.
그 어떤 고민도 비슷하거나 똑같다고 할 수 없다. 고민을 비슷하다고 느끼는가, 아닌가는 상담가의 능력이다. 그 사람이 몇 살인지, 어떤 학벌을 갖고 있는지, 혼인 여부, 자녀 유무, 이성친구 유무, 원래 성격이 어땠는지에 따라 같은 주제의 고민도 수없이 다양하게 나뉜다. 그만큼 사람들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 이렇게 많은 고민을 접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일상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을 곳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게 느껴진다. 누구나 고민을 쉽게 말할 수 있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고민을 나누며 소통할 수 있는 큰 문화를 만드는 문화기획은 언니들의 또 다른 목표다.

 

▶ 본인의 고민은 어떻게 해결하나.
놀아본 언니들 멤버와 고민을 나눈다. SNS에도 솔직하게 ‘오늘은 제가 고민이 있다’며 글을 올리기도 한다. 그 고민을 보신 분들이 자신만의 노하우를 털어놓는다. 서로의 고민을 공유하는 셈이다.

 

▶ [공/통/질/문] 본인을 표현하는 색깔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색깔로 규정하기보다 프리즘이 맞는 것 같다. 무지개가 프리즘을 통해 만들어지지 않나. 자기가 어떤 빛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만나 저마다의 색깔을 내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생은 여행과 똑같다. 여행하다 길을 잃으면 지도를 보고, 행인한테 물어보기도 하며 길을 찾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인생의 길을 찾을 때는 길을 못 찾으면 자학을 많이 한다. 지도는 내가 가는 길과 완벽하게 맞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럴 때는 자신과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사람에게 “길 좀 여쭤보겠습니다”라고 물어보길 바란다. 고민을 흠이나 하자라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으면 좋겠다.

 

<Epilogue>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자신의 고민으로 운을 뗀 그.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사가 고민을 가지고 있다니 약간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결국 한 명의 사람일 뿐이다. 지금의 그는 지친 청춘을 위로하고 응원하지만, 그도 분명 지친 청춘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 “천천히 걸어도 목적지가 있다면 분명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았다. 우리의 청춘들은 상담을 통해 고민이 해결되기를 바라기 보단 그저 자신의 고민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한 고민이 있다면 지금 한 번 털어보는 것이 어떨까.

이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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