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줌/인> 2016 민중총궐기대회

하나로 모인 100만 민심, 뜨겁게 불타오르다 김아람 기자l승인2016.11.15l수정2017.03.21 18:39l1418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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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100만개의 촛불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타올랐다. 2000년대 들어 가장 많은 인원이 집결했고, 촛불집회로는 역대 최대 규모였다. 바로 지난 12일 열린 ‘2016 민중총궐기대회’ 현장이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국민은 잔뜩 달궈진 민심을 용광로처럼 분출하면서도 성숙한 시민의식을 잃지 않았다. 세대와 지역, 이념을 모두 초월했던 역사의 한순간을 생생히 전달해보려 한다.

주말의 혜화역은 언제나 북적인다지만, 유별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인파다. 마로니에공원으로 나가는 2번 출구는 이미 마비 상태. 무슨 일일까? 바로 오후 2시에 예정된 ‘2016 청년총궐기 분노의 행진’ 때문이다. 가까스로 나온 마로니에공원 일대는 50여개의 대학 깃발과 4천여명의 학생으로 가득 차 행렬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중 닭 가면을 쓴 학생의 몸에 오방색 끈을 묶는 퍼포먼스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절로 웃음이 나오는, 학생다운 재기발랄함이 엿보이는 퍼포먼스다.

수많은 대학 깃발 사이로 ‘단국대학교 총학생회’, ‘단국대학교 시국대책위원회’ 깃발과 우리 대학 학생 200여명이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재빨리 달려가 대열에 합류한다. 대열 앞쪽에 서 있던 최정락(사학·2) 씨는 “박근혜 정부에 유감이다. 한시라도 빨리 하야해야 국민도 편하고, 박 대통령도 편할 것”이라고 말하며 웃어 보인다.

죽전캠퍼스 강성진(경영·4) 총학생회장은 “현재 역사의 한 축에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바로 설 수 있는 올바른 행동을 하고 있기에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 스스로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본격적인 행진에 앞서 청년총궐기 추진위원회 관계자가 “권력을 사유화하고 우리의 삶을 파탄 낸 그들만의 정부를 거부한다. 저들이 망쳐놓은 정의를, 우리의 삶과 미래를 되돌리기 위해 촛불을 들고 행진할 것”이라고 밝히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진다.

오후 2시 30분 즈음, 혜화역-이화사거리-종로5가-종각-을지로입구-서울광장으로의 행진이 시작된다. 학생들은 행진하는 동안 울려 퍼지는 ‘다시 만난 세계’, ‘뱅뱅뱅 (BANG BANG BANG)’, ‘촛불하나’ 등의 가요, ‘하야가’ 등의 패러디송을 떼창한다. 거리 전체가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열기로 가득 찬다.

인도에서 행진을 지켜보는 시민들은 손을 흔들거나 “파이팅!”이라고 외치며 학생들에게 힘을 싣는다. 흐뭇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보던 곽동훈(남·40) 씨는 “20년 전만 해도 학생들의 시위가 흔했는데, 요즘은 그러기 어려운 환경이다. 학업과 취업으로 바쁠 텐데 동참해줘서 고맙고 뿌듯할 따름이다”라고 말한다. 한 할머니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 학생들”이라고 말하며 기자의 손을 꽉 잡아준다. 오랜 시간 바깥에 있어 차가웠던 손과 맘이 일순간에 따뜻해진다.

행진대열 맨 앞 트럭에선 학생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진다. 우렁찬 목소리로, 혹은 떨리는 목소리로 전하는 나라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들에 현장의 모든 학생이 뜨거운 함성과 박수로 화답한다. “퇴진하라 박근혜”, “새누리도 공범이다”, “우리가 주인이다”, “민주국가 쟁취하자” 등의 구호를 한 목소리로 외치며 한 발 한 발, 서울광장에 가까워진다.

오후 4시, 서울광장, 태평로, 을지로 등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박근혜 퇴진! 민중총궐기대회’가 시작된다. 참가자들은 최순실 게이트 외에도 백남기 농민 사망, 사드 배치, 세월호 참사, 쌀값 폭락, 국정교과서 강행 등을 두고 현 정부를 비판하며 박 대통령 퇴진에 목소리를 높인다.

아르바이트를 빼고 현장에 나왔다는 김(여·24) 씨는 “가슴이 답답하다. 도무지 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며 “그렇게 자괴감이 든다면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강하게 말한다. 아르바이트 사장님이 현장에 나오는 걸 허락해줬냐고 묻자 “그럼요! 본인 몫까지 잘 다녀오라고 격려까지 해주시던 걸요? 사장님, 저 열심히 구호 외치고 있습니다”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1시간여의 행사가 끝난 뒤 집회의 하이라이트인 ‘박근혜 퇴진! 청와대 포위 국민대행진’이 이어진다. 참가자들은 종로, 을지로, 의주로 등 다섯 갈래로 나눠 청와대 진입로인 내자동 로터리로 향하는데, 특히 서울광장에서 경복궁으로 나 있는 직선 구간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인다. 인파에 휩쓸려 간다는 표현이 적절할까. 육체는 의식의 통제를 벗어난 지 오래, 설상가상으로 풀려버린 신발 끈 덕에 넘어질 위기를 몇 번씩 겪으며 사람들을 따라 흘러간다. ‘이러다 정말 깔려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드디어 광화문광장에 닿는다.

광화문광장에 어둠이 내려앉자 100만여명의 참가자들은 제각기 손에 든 촛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이어 이승환, 김제동, 조PD, 크라잉넛 등 연예인들이 간이무대에 올라 ‘박근혜 하야 촉구 콘서트’를 진행하니, 언뜻 시위가 아닌 축제의 현장에 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와 함께 자리에 앉아 공연을 관람하던 박(여·47) 씨는 “정말 평화롭다. 100만 인파가 모여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라며 감탄한다. 옆에 있던 아이가 “여기 사람 엄청 많구~ 재밌어요!”라며 개구지게 웃는다. 어린아이를 데리고도 걱정 없이 나올 수 있는 시위라, 이 얼마나 바람직한가. 방송인 김제동의 “정치는 삼류, 국민은 일류”라는 말이 계속해서 귓가에 맴돈다.

남녀노소, 지역 구분 없는 수많은 사람이 모였다. 서울행 고속버스와 기차표가 모두 동나는 진풍경이 목격되기도 했다. 친구들과 함께 광주에서 왔다는 기가연(여·17) 씨는 “박근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려고 먼 길을 왔다. 그동안 시위문화를 잘 몰랐는데, 알게 해줘서 고맙다”며 “친구들과 끝까지 나아갈 것”이라고 당차게 말한다. 한 손엔 지팡이를, 한 손엔 촛불을 들고 시위에 참여한 김(남·82) 씨는 “이 늙은이가 할 수 있는 게 뭐 있겄어. 사지 멀쩡허게 나올 수 있을 때 많이 나와서 데모혀야지”라며 허허 웃는다. 이어 “기자라구? 기자들이 잘 혀야 해. 다치지 않게 조심혀”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에 힘차게 “네!”라는 대답을 하니, 무엇인지 모를 벅찬 감정이 가슴에 한가득 고인다.

시위가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박근혜 탄핵”을 외치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지지만, “평화시위 유지합시다. 뒤로 가세요” 등 경찰과의 충돌을 막기 위한 목소리 역시 곳곳에서 들려온다. 이는 폭력 사태가 벌어졌던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때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쇠파이프도, 차벽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도 없다. 오히려 “경찰들 괴롭히지 마라”, “우리 아들들이다”라고 외치며 경찰들을 보호한다. 경찰들도 강경대응을 하지 않고, 쓰일 일 없는 살수차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다. 최지훈(남·33) 씨는 “대한민국의 국민인 것이 자랑스럽다. 비폭력 평화시위만이 우리의 의견을 효과적이면서도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 속초로 여행 간 가족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속초에서 제일 유명한 튀김집에 다녀왔는데 사장님이 만세삼창하면 서비스로 튀김 더 준다고 하시는 거야. 그래서 ‘우리 딸이 지금 광화문에 있어요~’했더니 ‘어이구, 그럼 그냥 드립니다!’ 하면서 두 개나 더 챙겨주시더라. 기특한 우리 딸, 조심히 들어와!” 2016년 11월 12일, 시위에 참여했든 참여하지 못했든 온 국민은 한마음이었다. 확실한 것은 국민과 싸워 이긴 권력은 없고, 후손들에게 좋은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국민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란 사실이다. 대한민국이 100만 촛불로 환히 밝혀진 이날이 훗날 역사책에 어떻게 기록될지 기대되는 이유다.


김아람 기자  lovingU_aram@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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