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줌/인] 장애학생의 하루

차별이 아닌 차이, 틀림이 아닌 다름 이상은·설태인 기자l승인2016.11.22l수정2016.11.22 11:56l1419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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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일 씨가 휠체어를 타고 가온로를 올라가고 있다.

장애의 벽을 넘어, 
힘차게 한 걸음

Prologue
지난해 우리 대학 죽전캠퍼스는 ‘장애대학생 교육복지 지원 실태평가’에서 최우수를 거머쥐었다. 교수·학습 영역에서는 45.8점/48점을, 시설·설비 영역에서는 39.9점/42점을 받아 장애복지 대학의 명성을 입증했다. 

우리 대학은 ‘장애학생도우미제도’를 2003년부터 시행해오고 있다. 2016년도 2학기 기준 총 44명의 장애학생과 21명의 장애학생도우미가 등록돼있다. 그중 14명의 장애학생이 도움을 받고 있다. 학교는 장애학생도우미가 장애학생을 원활히 도울 수 있도록 맞춤형 오리엔테이션이나 간담회 등을 진행한다. 또한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는 장애학생의 적응·복지·권리증진을 위해 비품 대여, 휴게실, 장애학생 우선수강신청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 대학 장애 복지 시스템의 현 주소를 파악하기 위해 뇌병변 2급 김동현(특수교육·1) 씨와 신체 장애인 이도일(공연영화·4) 씨의 하루를 동행해봤다.


오전 9시
출근시간의 지하철은 오늘도 붐빈다. 서울 강남구에서 통학하는 동현 씨는 콩나무시루같은 열차에 몸을 싣고 이어폰을 꽂는다.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다보면 통학시간이 금방 간다는 김 씨가 학교에 도착하기 까지는 꼬박 1시간이 걸린다.

한편 오전 수업이 없는 도일 씨의 아침은 비교적 여유롭다. 마지막 학기인 탓에 사이버 강의로 시간표를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전 수업이나 약속이 있는 날에는 다른 학생보다 1시간은 일찍 일어나야 한다. “비장애인 친구들보다 준비 시간이 두 배는 걸린다”는 이 씨는 오늘도 밀린 사이버 강의를 듣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는다.

어느덧 강의실에 도착한 동현 씨는 자연스레 맨 앞줄로 향한다. 기다렸다는 듯 동현 씨를 반기는 이다한(특수교육·1) 씨. “동현이 몫까지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항상 앞자리에 앉는다”는 그는 이번 학기부터 동현 씨를 돕는 장애학생도우미가 됐다. 원래부터 절친한 동기 사이였다며 스스럼없이 장난치는 그들의 눈빛은 이내 수업이 시작되자 180도 달라진다. 일체의 딴 짓도 않는 두 사람은 각자 필기에 여념이 없다. 특히 다한 씨의 프린트 물은 빼곡하면서도 정갈한 글씨가 돋보인다. 주말마다 수업 내용을 워드파일로 정리해서 동현 씨에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한 씨는 “같이 듣는 4개 과목의 수업 내용을 정리하는 데 2시간 정도 걸린다”며 “수업시간에 졸면 나만 손해 보는 게 아니라 동현이도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답한다.

▲ 쉬는 시간에도 공부에 열중하는 다한 씨(왼쪽)와 동현 씨(오른쪽)


낮 12시
사이버 강의를 들은 도일 씨는 룸메이트 김남균(공연영화·2) 씨와 외출 준비를 한다. 현재 그는 기숙사 보조 도우미와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는 중이다. “최대한 도움을 받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은 스스로 하는 편이지만, 옷장에 옷을 걸거나 빨래를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청하게 된다”는 것이 도일 씨의 설명이다. 이어 “촬영 시즌이랑 겹쳐 도우미 활동일지를 밀려서 작성하는 모습을 볼 때면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장애학생의 복지도 중요하지만 도우미 친구에게도 많은 혜택이 돌아가면 좋겠다”고 강조한다.

1학년 시절 과대표였던 남균 씨에게 장애학생도우미 활동을 부탁했던 것이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의 시작이다. 도일 씨는 “지금은 전동휠체어를 타지만 1학년 때는 수동휠체어를 타고 다녀서 하루에 14시간 이상을 붙어있었다”고 회상한다. 남균 씨는 “한겨울에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전동휠체어가 멈춰버렸다. 휠체어의 무게만 100kg 정도 되기 때문에 미디어센터에서 기숙사까지 2시간 30분이 걸려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는 도일 씨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는다. 

수업이 끝나고, 동현 씨는 부리나케 교수에게 달려가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 쉬는 시간에도 동현 씨가 수업 자료를 되짚으며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되물으면, 다한 씨는 최선을 다해 설명해준다. “필기하는 게 제일 어렵다. 직접 듣고 적어야 기억에 남는데 적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며 고충을 토로하는 그는 시험기간엔 도서관에서 쪽잠을 자며 공부할 정도로 열의가 대단하다. 

“다한이 형 없이 혼자 듣는 수업에선 두 배의 집중력이 필요하지만, 글로벌영어를 들을 땐 졸음을 참기 힘들다”며 멋쩍게 웃는 동현 씨의 꿈은 특수교사다. “중학교 시절 만난 특수교사를 본받고 싶었다”는 그는 “장애학생들이 밖으로 나가는 게 위험해서 자주 하지 못하는 현장체험학습까지 학교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특수학교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며 당차게 설명한다.

오후 2시 
교양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 도일 씨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지금은 공연영화학부에 재학 중이지만 그의 꿈은 야구선수였다. 처음에는 야구선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포기하지 못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결국 앉아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글쓰기 과외를 받았고, 영화 시나리오를 써보면 좋을 것 같다는 조언에 여기까지 왔다”고 얘기하는 그의 표정은 덤덤하다.

계단식 강의실에 도착했지만 도일 씨는 자연스레 맨 뒤 가장자리로 향한다. 그는 “공간의 특성 상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다. 잘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자리라 불편하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며 씁쓸하게 설명한다. 학부에 입학한 뒤 ‘감독이 돼서 영화를 찍어야지’라는 포부로 가득 찼던 그였지만,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동 시간이 오래 걸리는 그를 촬영 스태프로 불러주는 경우가 적었기 때문이다. “1학년 때는 카메라맨도 해보고 싶었지만 지레 겁을 먹어 촬영을 멀리한 것이 후회된다”는 도일 씨는 “이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것도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라며 수업에 집중한다.

공강 시간을 여유로이 보내는 동현 씨지만, 이틀 뒤로 다가온 특수교육학과 소모임 ‘꿈틀학회’에서 주관하는 수업시연대회를 준비하러 가는 탓에 이날만큼은 발걸음이 빨라진다. 요즘에는 부쩍 할일이 많아졌다며 “공강 시간에 당구장이나 코인노래방에 가던 시절이 그립다”는 그는 “대학교에 오기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싶었지만 막상 그러지 못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전한다. 

▲ 도일 씨가 촬영현장에서 시나리오를 읽고 있다.

오후 5시
수업이 끝난 뒤 도일 씨는 편집학회에 늦지 않기 위해 부리나케 움직인다. 올해 초부터 편집학회를 도맡아 이끌고 있는 그는 편집에 대한 기본 실무를 가르쳐주는 선배 노릇을 톡톡히 한다. △연출 △촬영 △사운드 △편집으로 나뉘는 전공 분야에서 도일 씨는 편집 분야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매일 취업 정보 사이트에 들어가도 ‘장애인 지원가능’이라고 쓰인 업무는 영업이나 주방보조 뿐. 그는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을 규정지어 놓은 것 같아 아쉽다”며 “실력만 갖춘다면 장애인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것”이라는 당찬 포부를 밝힌다.

동현 씨 역시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저녁 ‘장애인 인권개정 동아리’와 ‘교육봉사 동아리’의 회의에 참석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1년에 4번씩 장애 아동들과 함께하는 소풍을 준비하는 교육봉사 활동에 열심이다. 그는 지난 가을에 다녀온 소풍에서 한 장애아동이 “오늘 선생님 덕분에 재밌었고 행복했어요”라고 말한 것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며 밝게 웃는다. 

도일 씨의 치열한 하루는 부족한 공부를 보충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학생증을 찍어도 열리지 않는 도서관 게이트에 가로막히자 익숙한 듯 경비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는 시험을 보러 가던 중 상경관에서 사범관으로 넘어가는 중간에 경사로가 없어서 이동이 불가능했던 기억을 덤덤하게 전한다. 또 “건물마다 장애인 화장실이 마련돼 있지 않아 화장실에 가려면 미디어센터나 혜당관, 체육관까지 가야 한다. 휠체어를 타는 학생들이 입학해서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하루빨리 개선됐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내비친다.

Epilogue
“학교를 다니면서도 나쁜 시선에 불편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입 모아 얘기하는 두 사람. 취재 전 ‘장애인이 학교를 다니려면 당연히 힘든 점이 있을 테니 그 부분을 취재해보자’며 계획을 세운 두 기자에게 비수를 꽂는다. ‘분명 힘든 점이 있을거야’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큰 차별이고 착각이었다. 물론 힘든 점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앞날이 희망으로 가득하길 바라본다.


이상은·설태인 기자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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