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고 얕은 지식을 파는 지식가게의 사장

■작가 채사장(37) 설태인 기자l승인2017.05.16l수정2017.05.16 10:24l1426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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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대화가 부족한 시대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어느새 말보다 문자에 익숙한 삶을 살게 됐다. 친구와 연락할 땐 ‘카카오톡’ 앱을 켜고, 교수님께 질문할 내용이 있다면 메일 한 통을 날리면 그만이다. 자신의 소식을 알리고 싶을 땐 너도나도 SNS에 게시물을 올린다.


이처럼 대화가 줄어드는 사회에서 대화하는 일의 즐거움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가 있다.  바로 2014년 팟캐스트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하 지대넓얕)’ 진행을 시작으로 베스트셀러『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시민의 교양』
등을 펴낸 채사장(37) 작가.


정해진 답이 아니라 자유로운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사회를 꿈꾼다는 그를 지난달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은 것이 본인의 세계를 뒤흔들었다고 밝혔다.
그동안 책을 한 권도 안 읽다가 19살 때 처음으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나 방에 꽂혀있던 『죄와 벌』의 두께와 제목, 작가명이 왠지 멋있어 보였다. 읽고 나서 지금껏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문학이 그 답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당시 성적이 290명 중 280등을 밑돌았다. 성균관대 국문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나.
세상에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없다고 생각한다. 공교육은 개인의 인성이나 능력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실수를 덜 하는 학생을 선택한다. 이러한 틀에 익숙해지기 위해선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다. 국문학과 진학만이 문학을 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에 열심히 공부했을 뿐이다.

▶ 복수전공으로는 철학을 공부했다.
문학을 배우러 국문학과에 갔는데 어학이나 국어의 역사를 배우는 걸 보면서 내가 오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렵기도 하고 내가 하고자 했던 공부가 아니었다. 그때 우연히 철학 교양수업을 들었는데 ‘내가 찾던 게 이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 수업을 들으며 교실에 들어가기 전과 후가 달라졌고,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는 경험을 했다.

▶ 대학시절 1,000여권의 책을 읽었다고 들었다.
동아리나 학과 활동은 거의 안 해서 시간이 많았고, 시간표가 엉망이라 공강시간도 길었다. 그 시간에 달리 할 게 없으니 도서관에 가서 책만 읽었다. 책은 나에게 놀이 수단이었다.

▶ 요즘 대학생들은 성적이나 취업 걱정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
미래 때문에 불안을 느끼는 대학생이 많지만 이는 개인의 불안이 아닌 시대적 불안이기에 평생 데려가야 할 친구라고 생각한다. 나이를 더 먹어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만 나는 졸업 후 학사장교로 군 생활을 오래 할 계획이라 취업이 보장돼 있었고, 덕분에 수업과 독서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 학사장교로 일한 뒤에는 어떤 일을 했나.
논술교사, 교육출판, 전업 주식투자자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화장품 관련 창업에 도전한 적도 있다. 인문학을 공부하다가 사회에 나왔더니 사회는 전쟁터였다. 언젠가 지옥을 상상해본 적 있는데, 빛이 들어오지 않는 사무실 책상에 서류가 잔뜩 쌓인 곳이 나에겐 지옥이더라. 일을 해나가고 어른의 모습에 적응하는 게 힘들었지만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했다. 돈벌이가 유일한 기쁨이던 시기다.

▶ 전업 주식투자자로 일할 땐 무엇을 배웠는지 궁금하다.
내 돈이 걸린 문제라 열심히 공부했다. 우리는 어떤 문제를 못 본 척해도 지장 없이 삶을 살아갈 수 있지만 거기엔 한계가 있다. 잘 몰랐던 분야인 정치와 경제에 대해 공부하면서 세상은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스스로 어떠한 예측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닫고 나의 가치관이나 신념을 점검해보기도 했다.

 

▲ 팟캐스트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그러다가 시작한 게 팟캐스트 ‘지대넓얕’이다. 계기가 무엇인지.
2011년 동료들과 제주도에 여행을 갔는데 큰 사고가 났다. 열심히 살던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고 ‘나도 그냥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미래를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재밌는 걸 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누군가를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게 유일한 재미였기에 2014년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 당시 다운로드 수 1,249개에서 시작했으나 지난 3월 기준 1,60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다. 인기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사회에서는 실용적이지 않은 것에 관해선 얘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업무 관련 얘기만 하면서 평생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내가 누구인지, 잘 살 수 있는지에 대해 대화하고픈 욕구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팟캐스트 지대넓얕이 그런 욕구를 조금이나마 해소해줬기 때문에 좋아하시는 것 같다.

▶ 팟캐스트 관련 온·오프라인 모임이 굉장히 활성화돼 있는데,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
재미로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지대넓얕이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분도 계시지만 실제로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건 대단한 일보다는 재미라고 생각한다. 또 팟캐스트를 처음 접하는 분 중 왜 답을 내놓지 않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다양한 주제의 넓고 얕은 지식을 편하고 재미있게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 팟캐스트와 같은 이름의 책도 펴냈다. 책을 낸 이유가 궁금하다.
가까운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있었다. 친구들과 모이면 정치, 경제, 철학 등 여러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합의된 개념이 없는 게 아쉬웠다. 매번 개념의 의미만 조율하다가 대화가 끝났기 때문이다. 여러 개념을 정확하게 정리해주는 책이 있다면 친구들과 같이 보고 그 너머의 얘기를 할 수 있겠다는 바람에서 책을 썼다. 다행히 원고를 보낸 출판사 열 곳 중 세 곳에서 책을 내자고 연락이 왔다.

▶ 책을 읽어봤는데 단문으로 쓰여 이해하기 쉽더라. 강연하는 모습을 보면 말솜씨도 좋은데 특별히 연습을 했나.
어렸을 때 시를 썼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쓰다 보니 예전에는 하나의 문장을 잘 꾸며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문장에서 불필요한 단어를 제거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에서 정말 필요한 단어만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간결하게 글을 쓰고 말하는 데 도움이 됐다. 좋은 문장과 말은 간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자기만의 문체를 가진다고 해도 하나의 책이 되면 독자의 것이 되기 때문에 가장 필수적인 어휘만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 요즘처럼 먹고 살기에 바쁜 세상에서 ‘지적 대화’는 사치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지적대화가 삶의 유일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대화할 때 내 얘기가 맞는지 틀리는지에만 집중하며 겁을 내거나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얘기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질문하고 내 생각을 답하는 게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고유한 만족감을 준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대화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 [공/통/질/문] 본인을 표현하는 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검은색. 채사장은 그림자처럼 허구적인 존재다. 이 캐릭터를 좋아해 주시는 것은 채사장에 자신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채사장은 공부만 한 것도 아니고, 돈을 벌려고 애쓰기도 하는 등 현실과 이상의 갈등을 적절히 조율하는 것처럼 보여서 그림자 같다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지금까지 읽은 기사는 다 잊어버리고 좀 놀았으면 좋겠다. 젊고 건강한, 돈이 없어도 부끄럽지 않은 아름다운 시기를 살고 있으니 어른처럼 행동하려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기업 입사가 인생의 목적일 수도 있지만 타인의 욕망을 쫓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살고 싶고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놀아도 된다. 놀면서 배운 것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pilogue
나에게 가장 불편하게 느껴지는 책을 읽으라는 그의 말을 듣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동안 잘 모른다거나 어렵다는 이유로 관심 분야가 아닌 책들을 멀리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과제를 하느라 밤을 샌 기억은 숱하지만 나의 세계를 뒤흔드는 책 한 권을 읽은 기억은 없다는 사실에 씁쓸해졌다.


나는 미래의 나에게 20대 시절이 행복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그가 남긴 말이 자꾸 귀에 맴돈다. 죽기 직전 침대에 누웠을 때 떠오르는 것은 젊을 적 사랑했던 사람에게 전하지 못한 따뜻한 말 한마디지, 성적이나 연봉이 아니라는 말이.

 


설태인 기자  tinos36@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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