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파서 꿈 캔다! 희망의 씨앗 뿌리는 파밍보이즈

“도전해라. 부딪쳐라. 경험하라. 청춘의 특권이다.” 장승완 기자l승인2017.08.29l수정2017.09.19 16:12l1429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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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끝없는 스펙 경쟁과 극심한 취업난, 재정적인 어려움까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이때 누구나 한 번쯤은 내뱉게 되는 말, “아, 다 때려치우고 농사나 지을까?” 

여기, 정말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농사를 짓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다. 청년들이 농사 지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난 2013년 9월부터 2년간 12개국 35개 농장에서 농사일을 배우러 다닌 세 청년, ‘파밍보이즈’. 청년들이 당당한 사회를 꿈꾼다는 파밍보이즈의 맏형 유지황 씨를 지난달 27일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농사를 배우러 떠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4살 때 떠난 해외 배낭여행 도중 시장에 들렀는데 어디서 아이들 소리가 나더라. 소리를 따라가 보니 차 밑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목격하고 정말 많이 울었고,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이후 기아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면서 ‘생활하고 배우는 것’, 즉 식주학(食住學)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국내에는 청년 농부를 위한 기반 시설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고, 이는 자연스럽게 세계의 청년 농부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 파밍보이즈의 다른 멤버인 김하석(28), 권두현(28) 씨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대학 후배인 하석이는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낀다며 뜻을 같이했다. 두현이는 어학원을 운영하는 지인이 소개해줬다. 뉴질랜드로 농사를 지으러 가고 싶어 하는 애가 있는데 한번 만나보라고 하더라. 그때 진짜 딱 한번 만나고 같이 떠나게 됐다. 지금 생각해도 기막힌 인연이다.

▶ 2년 동안 정말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다. 여행 경로가 궁금하다.
처음에는 호주로 떠났다. 그곳에서 여러 잡일을 하며 여행경비를 벌었다. 이후 인도네시아, 베트남, 라오스, 태국, 인도, 네팔, 한국, 유럽의 순서로 돌아다녔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는 비행 청소년들을 농부로 키우는 학교나 스님이 운영하는 공동체 등 현지에서 이뤄지는 캠페인이나 프로그램에 많이 참여했다.

▶ 유럽으로 가기 전 한국에 들른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네팔에서 대판 싸웠다. 우리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직접 영상을 찍었는데 여행 도중 한국의 영화사에서 연락이 왔다. 일거수일투족이 영화를 위한 일이 돼버리니 예민해졌고 다 때려치우자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결국 영화사에서 우리를 다시 불러 모았고 돌아온 지 두 달 만에 유럽으로 본격적인 ‘우핑(Woofing)’을 떠났다.

▶ 우핑이란 단어가 생소한 학생들이 많을 것 같은데.
우핑은 농장에서 일을 배우며 농부가 가진 철학과 가치, 농업기술을 배우는 일이다. 물론 노동을 하기에 숙식도 해결된다. 특히 우핑은 세계적인 네트워크가 잘 형성돼있어서 한번 네트워크에 들어가면 다음 농장을 찾아가기 수월하다.

▶ 농장 일을 하며 기억에 남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나.
벨기에의 ‘도메인 드 그룩스’라는 농장 주인아주머니가 우리에게 ‘pay back’이라는 말을 했다. 자연으로부터 얻어 썼으면 다시 돌려주라는 뜻이다. 우리를 품어주는 자연을 이용할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현대인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말이었다.

▶ 반면 떠올리기 싫은 최악의 사건도 있을 것 같다.
호주의 한 국립공원으로 다이빙을 하러 간 적이 있는데, 40~50m 높이에서 떨어지는 게 정말 두려웠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바위에 부딪힐 거라는 걱정만 안 한다면 참 신나는 일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안 될 이유만 떠오른다면 과감하게 지워버리고 될 가능성만 생각하자는 교훈을 얻었다.

▶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을 텐데 여행을 끝까지 마치게 해준 원동력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옆에 있던 놈들이다. 싸우기도 하고 의지하기도 하며 앞으로 나아갔던 것 같다. 내가 시작한 일이기에 끝까지 책임지고 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 만약 미래의 자녀가 무작정 여행을 떠난다 하면 허락할 것인가.
물론이다. 오히려 더 일찍 보내줄 의향도 있다. 직접 돈을 벌며 여행하는 것의 이점은 나라는 사람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정확히 알아야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고 위기가 와도 의연히 대처할 수 있다.

▶ 여행하기 전후 본인이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사람이 살면서 맺는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법이 무엇인지 배웠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느낀 불편함이나 문제점을 정치적인 방법을 통해 정책에 반영시키는 일상정치의 중요성을 깨닫기도 했다.

▶ 일상정치의 중요성에 관해 설명해달라.
유럽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그들이 일상생활을 하며 느낀 문제를 불평불만에 그치지 않고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낸다. 한국 학생들은 그 점이 부족한 것 같다. 특히 대학생들은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들이므로 배우거나 물어보는 것을 부끄러워해선 안 되고, 사회의 부조리나 문제에 대해 당당하게 목소리 낼 의무와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그동안 배운 농업기술을 활용해보려 했으나 한국에선 내 농장은커녕 집도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농업을 꿈꾸는 청년들을 위한 이동식 주택 사업을 시작했다. 전국 40여 명의 학생이 큰 관심을 보인 ‘COBUGI’라는 사업이다.

▶ COBUGI라는 이름에 담긴 뜻이 있나.
협동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단어 ‘Cooperation’과 거북이를 합쳐 ‘등껍질 같은 집을 지고 옮겨 다닌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래야 농장에서 쫓겨나도 집을 들고 도망갈 것이 아닌가.

▶ 책도 출간한다고 들었는데,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농업뿐 아니라 여행하면서 느낀 정치, 사회문제까지 담고 있는 책이다. 우리가 만든 영화를 보고 우시는 어르신이 많았다. 영화를 기반으로 책을 썼으니 모든 연령에게 감동과 공감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 책이 세대 간 갈등이 심한 한국에서 세대 간의 접점을 찾고 사회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 [공/통/질/문] 본인을 표현하는 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초록색이 되고 싶은 노란색이다. 노란색은 톡톡 튀고 철없는 느낌이고 초록색은 성숙하며 대자연이 떠오르는 느낌이다. 어쩌면 좀 성숙해지고 싶은 나의 이상을 담은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노란색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 마지막으로,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뭘 하고 싶은지,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겠지만 딱 하나만 기억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특성에 맞는 일을 하라. 나는 여행을 다니며 직접 흘린 땀으로 정직한 노동의 대가를 얻는 1차 산업 직종이 나에게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특성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과 사색, 그리고 많은 경험인 것 같다. 머뭇거리지 말고 일단 움직여라. 그리고 생각해라.

Epilogue
기자는 전 세계의 기아난을 해결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적이 있다. 대학에 입학하면 학문의 바다를 헤엄치며 기아난을 해결할 열쇠를 찾고 싶었다. 그러나 유 씨와의 만남은 어느새 경쟁의 바다에서 토익과 학점을 쫓는 나를 발견하게 된, 아니 인정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는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본인의 이상을 실현하고 있었다. 스스로의 모습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꿈이 밥 먹여 주느냐고.’ 그렇지만 이제 기자는 말하고 싶다. ‘당신이 밥 먹여 줄 거냐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에게 이 글이 정답을 찾도록 돕는 열쇠가 됐으면 좋겠다. 나와 그의 만남이 그랬듯이.


장승완 기자  babtista@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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