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꿈꾸던 사람들

이정숙 기자l승인2017.09.19l수정2017.09.19 16:40l1431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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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의 추락을 낙화로 기억하는 일’, 한 평생 발레만을 사랑한 중년의 사내를 떠올리며 글의 첫 줄은 이렇게 적어볼까 한다.

예술을 꿈꾸던 사람들, 그들이 가슴에 품은 낭만은 잔인했다. 그들은 찬란한 꿈과 다 줘도 좋을 사랑을 했으나 남은 거라곤 생활고에 시달리는 삶뿐이었다.

슬픈 날엔 정작 비가 안 왔다. 찬바람만이 불었을 뿐. 무대 위의 그들은 여름처럼 살고 싶었으나 푸르던 잎은 오래 전에 말라 떨어졌다. 그들의 오랜 유년은 가난에 떨다 죽었다. 부고는 전해지지 않았고 장례는 생략됐다. 얼어 죽어도 모르리라. 그들도 한때는 손발이 뜨거운 소년이었다.

지난해 연극배우 김운하(40) 씨의 죽음으로 우리 사회는 잠시나마 가난한 예술인의 삶을 조명할 수 있었다. 관심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뒤늦게 예술인복지법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복지법’이라는 이름과는 동떨어진 ‘실효성’이 문제였다.

예술인복지법은 애초에 예술계 현장의 생리를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예술 활동을 통한 고정적인 수입을 입증해야 함은 물론 실질적인 수혜의 범위에는 ‘예술인의 업무상 재해에 관한 보호(예술인 복지법 제7조)’를 통해 산재보험만 포함됐기 때문이다. 산업재해보험이라 하면 산업현장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해 일정 부분 금전적 지원을 하는 것인데, 문학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컴퓨터 폭발로 인해 수입을 벌어들이지 못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은가.

예술인 복지가 바로잡히기 위해서는 결국 예술인 개인에 대한 복지로 정의가 명확해져야 한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올바른 예술인에 대한 정의에 대해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 현재 한국의 법은 준비하는 과정이 예술 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어야만 이를 예술 활동으로 인정하고 있다. 심지어 다른 작품을 준비하기 위해 가지는 휴식기에 대해서는 일체 고려하지 않고 있어 그들의 예술 활동을 ‘종사’의 개념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구조를 유지한다.

또한 많은 시민들이 그들의 예술 활동을 그저 취미 활동의 일환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 또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여타 예술선진국과는 달리 예술인을 전문적인 직업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추세이다. 이러한 시민의 인식 개선에는 예술가와 직업군에 대한 명확한 법률적 해석이 선행돼야한다. 예술가이기 이전에 시민인 그들이 ‘사람답게’ 살만한 사회는 언제쯤 올까.

마시고 뱉어야 사람이 살 텐데, 오늘도 어딘가에서 그 숨의 무게가 예술인의 목젖을 짓누르진 않았을까. 컥컥 거리다 토해놓은 숨을 보며, 한숨 또한 숨이라는 사실에 누군가는 비소(悲嘯)하고 누군가는 비소(鼻笑)를 머금는다. 헐떡이는 삶이 버거운 누군가의 삶은 종종 죽음으로 귀결된다. 그들의 추락을 낙화로 기억하는 일, 예술을 즐기는 우리가 취해야 할 마지막 예의가 아닐까.


이정숙 기자  silentle2@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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