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를 통해 바라본 대학생의 삶
신조어를 통해 바라본 대학생의 삶
  • 취재팀
  • 승인 2018.04.03 12:19
  • 호수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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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채은빈 기자

 

언어의 특징 중 하나로 ‘가변성’이 있다. 시대와 상황, 지역과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변한다는 것이다. 언어는 시대상을 반영하기에, 당시의 사회적 배경이나 대중의 욕구를 반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도 새로 생겨난 사물 및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서 지어진 말인 신조어는 그러한 특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오늘날의 신조어는 과거의 신조어보다 보다 다양하며 때론 과감하기까지 하다. 때문에 이를 통해 현대 사회의 단면을 직·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본지는 젊은 층 사이에서 퍼지고 있는 신조어를 바탕으로 대학생으로서의 삶을 조명해 봤다. 앞으로 살펴볼 ‘일코노미’, ‘싫존주의’, ‘소확행’, ‘무민세대’ 등의 신조어를 통해 현 세대가 지금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고려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혼자 사는 인생, ‘일코노미’

▲ 일러스트 채은빈 기자


1인 가구와 경제를 뜻하는 영단어 ‘이코노미(Economy)’가 합성된 신조어, 일코노미. 1인 가구의 증가로 새롭게 나타난 경제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20대 1인 가구 수는 81만9천698가구로 전체가구의 약 16%를 기록했으며, 지난 2015년에는 27.2%였던 전체 1인 가구 비율이 2045년에 이르러 36.3%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1인 가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반조리 식품이나 조립식 가구와 같은 ‘얼로너(Aloner, 혼자인 삶을 즐기는 사람)’를 위한 상품의 소비가 늘어나는 등 일코노미 현상은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대학생도 예외는 아니다. 통학 문제, 기숙사 적응 문제 등으로 1인 가구 생활을 하는 대학생 수가 늘어나면서 ‘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 먹기)’, ‘혼영(혼자 영화 보기)’ 등 개인주의적인 문화가 발달하게 됐다. 현재 죽전캠퍼스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나유빈(행정·4) 씨는 “같이 사는 사람이 없어 자유롭게 살 수 있다”며 “원래 기숙사 생활을 했었는데 음식 냄새날까 봐 식사할 때도 눈치가 보였고, 늦게 귀가하는 것까지 같이 사는 사람을 신경 쓰며 행동해야 했다”며 1인 생활의 장점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혼자 사는 것의 좋은 점은 편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 같다”며 “주변을 둘러봐도 혼자 살고자 하는 사람이 많고, 최근에는 결혼도 늦게 하는 분위기여서 다들 혼자 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GRI 경기연구원 최석현 연구위원은 ‘일코노미’라는 단어가 생겨난 데 대해 “경제적 요인으로는 노동시장 유연화에 따라 ‘평생직업’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지고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는 사회가 된 것을 꼽을 수 있으며, 사회·문화적 요인으로는 혈연 중심적인 유교적 가치보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지는 등 가족에 대한 가치가 변화한 것을 들 수 있다”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

 

또 그는 “1인 가구가 증가하면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개인주의 성향으로 지나친 연고주의가 해소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사회적 네트워크가 약화돼 사회 공동체의 연대성이 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싫어합니다. 존중해주시죠, ‘싫존주의’

▲ 일러스트 고다윤 기자


‘싫음(불호)마저 + 존중하는 + -주의(-ism)’라는 뜻의 ‘싫존주의’는 불만이나 선호하지 않는 취향 등을 당당히 밝히는 행동을 존중해준다는 것이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고 다양성이 추구되는 현대 사회에서 상호존중을 전제로 나타난 싫존주의는 젊은 세대의 직설적이고 솔직한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 정체성을 당당하게 표출하고 더 나아가 타인의 정체성까지 존중하려는 취지가 담긴 신조어를 통해 변화한 청년 세대의 의식을 볼 수 있다.

 

올해 신입생으로 입학한 정혜원(성악·1) 씨는 “싫존주의라는 말의 뜻을 오늘 처음 알게 됐다”며 “싫어하는 것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세대가 됐다는 느낌을 준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 의미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허윤경(경영·3) 씨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가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는 말인 것 같다. 자신의 개성을 보이고 취향을 존중받을 수 있도록 사용된다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하는 한편 “하지만 단지 싫다는 이유로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비난하는 형태로 해당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며 우려하기도 했다.

 

#큰 건 바라지도 않아요, ‘소확행’

▲ 일러스트 채은빈 기자


소확행은 작다는 의미의 한자어 ‘소(小)’, 확실하다는 뜻의 ‘확(確)’, 행복을 뜻하는 ‘행(幸)’이 합성된 말이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쓰이기 시작해 유행하게 된 말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된 옷을 볼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바쁜 일상에서 느끼는 ‘작지만 확실한 즐거움’을 뜻한다.

 

내 집 마련, 취업, 결혼 등 크지만 성취 여부가 불확실한 행복을 좇기보다 일상 속 작지만 성취하기 쉬운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은 놓치기 쉬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이는 3포, 5포 세대를 넘어 어느덧 7포 세대가 돼버린 젊은 세대의 축소된 행복관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어 마냥 관조할 수만은 없는 현실이다.

 

이에 전성준(경영·3) 씨는 “행복에 크고 작은 차이를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작은 행복을 추구하며 즐기고 사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행복을 재단하지 않고 자유롭게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 수 있는 세대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미 없음의 의미, ‘무민세대’

▲ 일러스트 고다윤 기자


‘없다’는 뜻의 한자어 ‘무(無)’와 ‘의미’라는 뜻의 영단어 ‘민(Mean)’에 ‘세대’가 합성된 이른바 ‘무민세대’는 ‘무의미한 것에서 의미를 찾는 세대’라는 의미를 가진 신조어다. 이러한 용어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남보다 앞서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고, 매번 의미 있는 것만을 쫓아야 한다는 현대인의 압박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욕구로 인해 생겨났다.

 

이렇듯 무의미한 것에 눈을 돌려 무자극, 무맥락, 무위휴식을 갈구하는 무민세대의 등장은 현대를 살아가는 20, 30대의 피로감이 극에 달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찬주(커뮤니케이션·2) 씨는 “의미 없는 행동에서 가치를 찾고자 하는 세대가 된 것도 과한 자기계발의 결과 중 하나인 것 같다”며 “젊은 층들이 과열되는 경쟁 속에서 스스로를 개발하고자 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게 된 것에 그들의 잘못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아무리 높은 스펙을 쌓아도 취업이 어려운 현실이다. 무민세대가 탄생하게 된 것은 젊은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이다”고 지적했다.

 

또한 윤지희(국어국문·4) 씨는 “웬만한 사람들은 전부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기본적인 스펙을 비슷하게 쌓는 상황 속에서 취업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무민세대는 그 반동으로 나온 결과가 아닐까 싶다”며 “사회가 무민세대와 같은 사람들을 포용하고 노력한 만큼의 정당한 결과를 보상받을 수 있도록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젊은 세대는 끝없이 경쟁하며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다. 연애나 결혼,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제는 인간관계와 꿈까지 포기해야 하는 ‘7포 세대’가 돼가고 있는 청춘들. 그럼에도 이들은 나름의 길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계속해나간다. 위와 같은 신조어는 그 결과물의 일부로 현대를 살아가는 20, 30대의 새로운 사회·문화적 행동 경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홀로 지내는 생활을 즐기고, 타인의 의견에 간섭하지 않는 대신 자신의 의견을 굳게 고집하며, 행복의 범위를 좁히고 복잡한 현실을 피해 머리를 비우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분명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 존재하므로 주관적인 시선으로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신조어들이 나타내는 경향을 현대의 젊은이들이 직접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선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지금 세대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그들이 직접 선택한 길인지, 아니면 직접 선택했다고 믿도록 강요당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사회와 개인, 모두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김민제·손나은 기자
일러스트 채은빈·고다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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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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