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당할 수 없다, 파멸할지언정!
패배당할 수 없다, 파멸할지언정!
  • 송정림 작가
  • 승인 2019.03.13 18:59
  • 호수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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➁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인간은 얼마나 견딜 수 있으며, 얼마나 강할 수 있을까. 몸의 인내와 정신의 의지를 담은 <노인과 바다>는 1953년 헤밍웨이가 만년의 나이에 쓴 작품으로, 2백 번이나 고쳐 썼다는 일화가 있다.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한, 늙고 초라한 어부다. 마을에서는 그를 늙은이라고 비웃지만, 노인에게서 고기잡이를 배운 소년만큼은 노인을 따른다. 노인은 언제나 꿈속에서 아프리카 해안에 나타나는 사자를 만난다.

 

 

바다에 나간 노인은 거대한 물고기가 자신의 낚싯바늘을 물었음을 느끼고 낚싯줄을 잡아당기지만, 너무나도 크고 힘이 센 물고기를 이길 수 없었다. 노인은 사흘 밤낮을 그 큰 물고기와 함께 온 바다를 끌려다니며 소년을 그리워했지만, 소년은 곁에 없었기에 오직 혼자만 싸워야 할 뿐이었다. 그는 물고기가 그가 있는 곳으로 유연히 헤엄쳐왔을 때 물고기에 작살을 내리꽂는다. 사흘간의 긴 투쟁이 끝나고 작살에 맞은 마알린이 죽었을 때, 노인은 거대한 물고기를 배에 묶고 생각한다. 물고기가 나를 데리고 가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물고기를 데리고 가는 것일까.

영화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
▲영화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

대어를 끌고 가는 동안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든 마코상어의 습격을 받는다. 물고기의 껍질과 살이 찢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노인은 상어를 향해 작살을 내리친다. 그 상어가 물고기의 살과 작살, 밧줄도 모두 가져가 버렸다. 그러나 노인은 생각한다.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나진 않았어. 인간은 파괴되어 죽을 수는 있지만 패배할 수는 없어.” 또 두 마리의 상어가 물고기에 달려들었고, 노인은 사투 끝에 상어들을 해치웠지만, 물고기를 얼마나 많이 베어갔는지 배가 좀 가벼워진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갈고리와 노 두 개, 그리고 키와 짧은 몽둥이 하나였다. 그 상어들까지 목숨을 걸고 물리쳤지만 물고기는 절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반 동강이 된 물고기에게 노인은 말한다. 물고기였던 것아, 미안하다고.

 

 

어둠이 오고 불빛 하나 없는 바다에서 ‘싸움은 끝났어’라고 생각하지만, 또다시 상어들이 떼를 지어 몰려온다. 노인은 느낌과 귀로만 짐작하며 몽둥이를 내리쳤지만, 무엇인가가 몽둥이를 잡아채는 것을 느꼈고 몽둥이는 사라져버린다. 노인은 키를 방향타에서 뽑아 그것으로 때렸지만, 상어들이 살점들을 다 뜯어먹고 가버렸다. 이제 노인은 그 어떤 것에도 무관심한 채 배를 조종하는 데만 열중한다. 항구로 돌아와 돛대를 내리고 돛을 말아 어깨에 메고 오르막을 걷는 노인은 잠시 멈춰 서서 돌아본다. 배에 묶여있는 물고기의 거대한 꼬리가 솟아올라 있다. 그리고, 물고기의 헐벗은 흰 등뼈의 선을 본다. 끝이 뾰족한 입이 달린 거대한 검은 머리, 그 사이의 모든 헐벗음을 본 노인은 오두막집에 도착해 엎드려 잠이 든다. 다음 날 아침 소년이 오두막으로 와서 노인의 손을 보고 울기 시작한다. 어부들은 노인이 잡았었지만, 이제는 살점 하나 없는 고기를 보고 있었고, 소년은 커피를 사는 동안에도 계속 운다. 관광객들은, 머리와 꼬리만 남은 거대한 물고기를 구경하고 노인은 또다시 꿈속에서 아프리카의 사자 꿈을 꾼다.

 


산다는 일은 어쩌면 앙상한 뼈만 남은 고기를 이끌고 해안으로 돌아오는 그런 것 아닐까? 노인은 작살이나 밧줄 하나 없는 상황에서 상어 떼와 싸우며 혼잣말을 했다. 인간은 파멸 당할지언정 패배당할 수는 없다고. 죽을 때까지 그들과 싸워보겠다는 희망을 버린다는 것은 죄악이라고. 노인이 오늘도 사자 꿈을 꾸는 것처럼, 내일도 어김없이 작살과 밧줄을 들고 바다로 나가는 것처럼, 우리도 생의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야 한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기에, 그리고 파멸 당할지언정 결코 패배당할 수는 없기 때문에.

 

송정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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