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함과 불편함 사이의 경계
편함과 불편함 사이의 경계
  • 유경진·손나은 기자
  • 승인 2019.03.20 20:37
  • 호수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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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장 무인화
▲ 음료 제조 중인 로봇 카페의 로봇
▲ 음료 제조 중인 로봇 카페의 로봇

 

Prologue
지금 세계는 무인화 열풍에 휩싸여 있다. 2017년 중국의 시장조사기관 아이리서치는 향후 2년 안에 무인유통시장 규모가 650억 위안(한화 약 11조1천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중국은 정부 주도의 ‘스마트 시티 건설전략’으로 전국적 무인화를 시도 중이며, 미국은 무인 레스토랑, 무인 배달 등 상당 부분의 매장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시켜 실용화했다.

한국 또한 예외는 아니다. 올해 초 국내 패스트푸드 업계는 전국 점포의 60%에 키오스크를 설치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옷가게, 카페, 네일 가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무인 매장이 운영 중이다. 국내에선 이미 무인 매장만으로도 대부분의 생활이 가능하다.

무인화는 편의성이 뛰어나며 점주는 인건비를 절감, 소비자는 시간을 아낄 수 있어 경제적이지만 취업 한파와 디지털 소외 등 현실적인 문제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이에 기자가 직접 다양한 무인 매장을 체험해보며 장단점을 파악하고, 그 절충안을 고려해봤다.

▲ 청바지 가게의 키오스크
▲ 청바지 가게의 키오스크

 

# 무인 매장 체험기
기자는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최소 요건인 ‘의식주’부터 여가생활까지 모두 무인 가게를 이용해 해결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체험을 시작하기 위해 로봇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메뉴를 고르니 인력을 쓰지 않아 타 매장보다 저렴한 가격이 눈에 띈다. 로봇은 마치 사람만큼 능숙하게 원두를 내리고 얼음을 받으며 음료를 제조했다. 아이와 함께 로봇카페를 방문한 고민정(40) 씨는 “제조 과정을 보는 재미가 있고 가격도 합리적이다”며 소감을 드러냈다.

이후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했다. 키오스크로 주문하니 메뉴 정보가 시각적으로 표현돼 처음 보는 메뉴도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이 단번에 이해됐다. 하지만 기자 뒤에 다른 사람이 주문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경우에는 기계를 오래 붙잡고 있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 또한 존재했다.

다음으로 옷을 구경하기 위해 청바지 무인 매장인 ‘LAB 101’을 들렀다. 매장 안쪽으로 가기 위해선 신용카드로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 입구가 카드를 인식하면 문이 열린다. 사람 한 명 없는 매장은 의류로 가득하다. 심지어 탈의실도 마련돼 있다. 점원이 없어 상당한 가격대의 의류임에도 구매에 대한 부담 없이 구경이 가능했다.

무인 매장은 확실히 편리했다. 기계는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그러나 이는 일부만이 누릴 수 있는 편리함이었다. 실제로 무인 매장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노인들이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광경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발표한 ‘2017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70대 이상의 정보화 수준은 25.1%로 현저히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무인 매장에 소외되고 있는 이들은 이 열풍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 무인화가 이뤄진 식당
▲ 무인화가 이뤄진 식당

 

#무인매장, 왜 확산될까
매장을 무인화하게 되면 관리가 편리하고 일처리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키오스크는 바쁜 점심시간에 종업원을 일일이 찾아가는 대신 메뉴 선택부터 주문까지 모든 과정을 자신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편리한 시스템이다. 기계가 처리하니 실수가 발생하지 않고 서비스 속도가 향상된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키오스크를 이용하던 김소정(28·가명) 씨는 “주문 문제로 직원과 싸울 일도 없고 내가 원하는 정보가 기계 안에 다 들어있어 편리하다”며 무인 시스템에 대해 긍정적인 소감을 드러냈다.

무인화 현상은 기업의 빅데이터 수집에도 도움을 준다. ‘O2O(온라인 투 오프라인) 빅데이터’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주로 온라인 고객들의 정보만을 수집할 수 있었던 기업에게 키오스크를 통해 오프라인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도 정보를 축적할 수 있도록 한다. 그 결과 기업이 각 소비자에게 맞는 마케팅 전략을 펼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를 통해 기업은 네트워크 인공지능 광고의 알고리즘과 같은 소비자 구매 패턴을 더욱 섬세히 구성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무인 기계의 도입으로 인해 비대면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종업원의 감정 노동이 발생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키오스크가 설치된 음식점을 운영하는 송효서(53) 씨는 “일일이 잔돈 계산을 안 해도 되고 실수가 발생했을 때 가게의 책임이 적어지다 보니 손님과 갈등을 빚을 일이 많이 없어 편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무인 기계의 도입은 인건비 절약에 크게 기여한다. 키오스크의 평균 임대비용은 시급으로 환산하면 한 대당 400~500원에 불과하다. 매년 최저임금이 오르는 상황에서 인건비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점주의 입장에서 무인기기의 등장은 반가운 일인 것이 당연하다.

#무인 매장의 문제점
이처럼 다양한 장점을 가진 무인 매장이지만, 그럼에도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종업원 없는 매장의 허술한 신원 확인도 문제가 된다. 최근에는 지문대조와 홍채인식 등으로 극복해가는 추세이기는 하나, 무인 편의점과 같은 곳은 상주하는 직원이 없어 신원 도용의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디지털 소외 현상은 현재 기술로 극복할 수 없는 문제다.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은 상대적으로 디지털 주문 방식에 취약하다. 리서치 전문기업 엠브레인에 따르면 20대의 무인결제 시스템의 심리적 만족도는 56.4%를 보인 반면 30대는 45.6%, 50대는 37.6%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만족도가 낮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사회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증가했지만 정작 그 노인이 살아가야 하는 사회의 배려는 부족한 것이다.

또한 무인 매장은 장애인 접근성이 낮다는 문제가 있다. 현재 매장에 보급된 대부분의 기계는 휠체어와 키오스크의 높이가 맞지 않다. 그 사용방식이 비장애인에게 맞춰져 있다. 뿐만 아니라 청각 변환 기능이 탑재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의 이용도 불가능하다.

한편 무인 매장의 도입은 고용 한파의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기계가 인간의 업무를 대신하면서 일자리를 감소시킨다. 실제로 현재 운용되는 키오스크 한 대는 직원 2~3명의 몫을 해내고 있으며, 무인화가 확산되면서 단순노동뿐 아니라 전문 직업까지 기술로 대체 가능한 시대가 오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심화되면 오히려 기계화로 인한 인간소외가 발생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일어난다.

▲ 무인으로 운영되는 수제 아이스크림 가게
▲ 무인으로 운영되는 수제 아이스크림 가게

 

# 고용 없는 성장, 뛰어넘어야 할 한계점
무인화의 흐름은 이미 막을 수 없는 현상이다. 우리는 현재 문제점을 보완할 방안을 고려해 대비할 필요가 있다.

노동을 꺼리는 시대에 안정된 노동력을 제공하는 무인화 현상은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로 인해 밀려나는 인력이 생겨 고용 문제가 발생한다. 발전을 위한 무인화의 확산은 막을 수 없으니 사회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이에 대해 미국의 무인 식료품 매장인 ‘아마존 고’의 경우 계산 인력을 기계로 대체하고 요리, 진열 등 전문 분야에 대한 인력은 사람으로 유지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인력 시장이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조명할 것을 추측하게 한다. 소비자는 오프라인에서 직접 전문가를 만나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므로 앞으로 예술·과학·철학 등의 학문적이고 전문적인 정보를 지닌 인력이 노동 시장에 필수적일 것이다.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디지털 발전에 초점을 맞출 필요 또한 자명하다. 우선적으로 노인과 장애인의 불편사항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발전이 중요하다. 사용자들의 민원을 기계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다 보면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를 실현할 수 있다. 비대면 소통인 키오스크에 대해 심리적 장벽을 낮추고 사용의 부담감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서 사회적 소수자인 노인과 장애인이 비관적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Epilogue
기자는 무인 매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기계의 발전에 편리해 하는 사람부터, 처음 사용하는 기계에 이질감을 느끼는 이들까지 다양한 사람이 무인 매장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양측 모두 주변에서 무인화가 생각보다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점은 같았다. 무인화는 이미 하나의 흐름이다. 뚜렷한 단점이 있음에도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이 현상은 어떤 방식이든 그에 대한 극복이 반드시 이뤄져야 함을 시사한다. 소외와 차별 없는 무인 매장을 완성하기 위해, 우리는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체험과 경험의 목소리를 기술의 발전에 반영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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