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첫 소절만으로 당신을 무장해제시키는 노래들
(4) 첫 소절만으로 당신을 무장해제시키는 노래들
  • 금유진
  • 승인 2019.05.08 17:44
  • 호수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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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음악을 들을 때 온전히 감상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분석하려고 하는 직업병이 있지 않냐고. 사실 생각해보면 이런저런 상념이 끼어들어 음악의 순수한 감상을 방해받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오히려 그런 와중에도 가수의 목소리가 너무 강렬해서, 혹은 가사가 내 얘기 같아서 다른 생각이나 느낌 제쳐두고 듣는 즉시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노래들이 있기 마련이다.
▲  원맨 밴드 ‘오존’의 모습
▲ 원맨 밴드 ‘오존’의 모습

 

사비나앤드론즈 ‘Stay’(2010)

이리저리 부유하는 우리 감정처럼 공명하는 건반의 소리가 한음한음 가라앉았다가 이내 다시 떠오른다. 그 사이로 차분한 첼로의 찰현이 구슬프게 운다. 그 위로 들어본 적 없는 가장 여린 그러나 가장 깊은 보컬이 심장을 뚝 떨어뜨린다. 가사보다 멜로디가 먼저였던 노래인 만큼 의미를 하나하나 따라잡기 힘든 발음의 영어 가사가 흘러가지만 중요하지 않다. 가사 첫 구절의 임팩트와 후에 이어지는 인상만으로 듣는 이를 그야말로 ‘머물게 하는’(‘Stay’) 이 노래는, 2017년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팝 음반’, ‘올해의 팝 노래’ 부문 후보에 오른 적 있는 사비나앤드론즈의 데뷔 EP 수록곡이다. 따스함과 서늘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음색이 ‘Stay’만의 깊은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데 부족함 없는 노래다.

우효 ‘아마도 우린’(2015)

얕게 고르는 숨을 지나 담담한 서글픔을 머금은 목소리의 첫 가사 “아마도”가 들리고 나면 한 템포 늦게 신디사이저의 처연한 화성이 진입한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하던가. 여기까지만 들어도 우리는 제목과 같은 ‘아마도 우린’이라는 가사 뒤로 결코 밝고 희망적인 이야기가 흐르지 않으리란 것을 직감한다. ‘아마도 우린’은 서로가 끝을 예감하고 있었지만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전하는 화자의 가슴 아픈 떨림과 코러스, 그리고 거기에 담긴 진심을 끝내 뒤로 삼키는 후렴으로 구성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슬픔을 전하는 노래다. 지난 귀여운 기억과 오늘의 솔직한 감정을 재치 있는 언어와 아름다운 멜로디로 전달해 청춘의 대변자로 불리는 싱어송라이터 우효의 노래이기에 그 시작이 더욱 먹먹하고 잘 와닿는다.

브로콜리너마저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2016)

유난히 맑고 영롱한 건반 소리가 띵동이며 멜로디를 먼저 짚어낸다. 8마디 후 옅은 드럼과 베이스가 연달아 신호를 주고받으며 착하디착한 윤덕원의 목소리가 “잊어야 할 일은 잊으라.”며 위로를 건넨다. 사랑의 이별인지, 다른 어떤 아픔인지 구체적인 사연이나 목적 없는 위안이지만 듣는 이는 저마다의 아픔을 떠올리며 첫 구절 만에 이를 자신의 노래로 받아들인다. 브로콜리너마저의 이름을 알린 계피의 목소리는 막상 일찌감치 퇴장하고 없지만, 서정적인 멜로디와 섬세한 가사는 언제나 그대로인 그들이다. 브로콜리너마저는 2집 <졸업>(2010)에서처럼 록킹한 사운드와 미학에도 강점이 있음을 과시하면서도, 여전히 정직한 여운과 일순간을 사로잡는 문장의 매력으로 그들의 언어에 가만히 귀 기울이게 한다.

오존 ‘Thoms Piano’(2018)

지글거리는 인트로의 이펙트, 서서히 공간감을 넓혀 가는 사운드와 비트가 자리를 마련하니 오혁(혁오), 조휴일(검정치마), 카더가든 같은 이름을 조금씩 연상시키는 아련하고 몽환적인 보컬이 한 음절, 음절 가사를 툭툭 내려놓는다. 우울한 꿈결을 걷는 오존의 감성으로 내뱉는 첫 가사에는 떠나버린 너의 흔적을 뒤늦게 둘러보는 화자의 공허한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오존은 신세하의 오랜 친구이자 음악적 동반자로서 ‘신세하 앤 더 타운’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고, 다양한 한국 인디 뮤지션 선배들의 모던록과 세련된 지금의 R&B 무드를 체득해 그만의 스타일을 갖춘 원맨밴드다.

9 ‘방공호’(2018)

노골적으로 슬픔을 껴안는 9의 이 발라드곡은 역설적으로 슬픔과 두려움을 떨쳐낸다. 코드 반주의 신호가 무섭게 나지막하게 “들어와요. 어서 들어와요.” 애타게 부르는 화자의 청유는, 차갑고 슬픈 겨울 속에서 내 작은 세상에 다른 누구도, 무엇도 들이지 않고 오직 당신만을 보호하겠다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다.

필자 정병욱

 

대중음악평론가.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 사람.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하며, 웹진 <음악취향Y>, <재즈피플>, <아주경제> 신문, <경향신문>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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