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쁜 소비는 없다
세상에 나쁜 소비는 없다
  • 안서진
  • 승인 2019.05.15 22:57
  • 호수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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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다. 오늘 점심은 뭐 먹을지, 다음 학기에 휴학을 할지 말지 등 크고 작은 선택들로 이뤄져 있다. 시간, 돈, 능력 등 주어진 자원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하나의 선택은 나머지 기회들에 대한 포기를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것을 선택함으로써 포기되는 것들이 가지는 가치를 기회비용(機會費用)이라 한다. 우리는 이 기회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러나 항상 이런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쳐 소비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깊은 고민 없이 혹은 나의 부주의로 지출한 소비 행동을 가리키는 신조어가 있다. 바로 멍청비용이다. ‘멍청하다’와 ‘비용’의 합성어인 이 신조어는 본인의 부주의로 인해 멍청하게 낭비한 비용을 뜻한다. 이를테면 헬스장을 등록했지만 한 번도 가지 않아 날려버린 헬스장비, 늦잠을 자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며 발생한 교통비 등이 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쓰지 않았을 ‘홧김비용’도 있다. 말 그대로 홧김에 돈 썼다는 소비 행태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00비용’은 왜 유행하게 됐을까. 본지 3면에서는 대학생들의 소비 트렌드를 살펴보고 돈과 관련해 어떤 고민을 가졌는지 취재했다. 많은 학생이 멍청비용과 홧김비용으로 자신들의 고민을 토로했다. 큰돈을 낭비한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은 자신들의 계획 없는 소비를 자책했고 증발해버린 돈 뒤에 찾아오는 허탈감을 이야기했다.

취재원이던 한 경제 전문가에 따르면 이는 불투명한 미래 대신 현재의 만족을 추구하는 2030세대에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소비 패턴 중 하나라고 답했다. 여기에는 답답하고 불확실한 미래보단 차라리 현재에 투자하겠다는 생각이 담겨있다. 여유 없이 팍팍한 현실을 버티고 있는 자신에게 보상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홧김비용이 과연 나쁘기만 한 것일까. 기자는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실제로 한 리서치 기업의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홧김비용을 지출하는 이유에 대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혹은 ‘자신을 위한 소소한 선물’이라고 답했고 절반 이상의 소비자들은 이에 대해 나쁘지만은 않다고 답했다. 비록 비계획적 소비긴 하지만 망쳐진 지금의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소비라고 본 것이다.

물론 합리적이고 계획된 소비는 필요하다. 현재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위해 저축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조언도 당연히 맞는 말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시각이고, 현재를 사는 것은 미래의 내가 아니다. 계획 없는 소비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행복을 기회비용으로 선택해 미루지 말라는 것이다. 스스로를 위해 지출한 이 홧김비용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다면 그만큼의 가치로도 충분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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