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s love? : 우리가 칠하는 사랑의 색깔
What is love? : 우리가 칠하는 사랑의 색깔
  • 금유진 · 이병찬 기자
  • 승인 2019.06.05 16:25
  • 호수 146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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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퀴어문화축제

Prologue

무섭게 발전하는 시대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인터넷이나 SNS에 의견을 개진하는가 하면 행동함으로써 사회를 바꾸기 위해 광장에 모여 목소리를 낸다. 광장이 가지는 힘은 이미 우리에게 진하게 증명된 바 있지만, 언제나 모든 만남이 축복받지는 않는 법. 광장에 설 때마다 존재 자체를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이 있다. 외출할 때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돌연변이, 정신병자 심지어는 사탄에 꾐에 넘어간 악마라는 질타를 받아 온 사람. 그 이름, 바로 퀴어(Queer)다.

퀴어란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포괄적인 단어로 레즈비언(lesbian)과 게이(Gay), 바이 섹슈얼(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인터섹스(Intersex), 무성애자(Asexual) 등을 두루 일컫는 말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자체가 도전이라는 건 어떤 기분일까. 사회적 편견 아래 움츠리고 있던 이들이 환한 미소를 드러내고 세상과 마주했던 지난 1일. 본지는 퀴어가 느끼는 세상과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을 담아내기 위해 서울시청 광장에서 개최된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 다녀왔다.

빨강: 퀴어의 ‘삶’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성소수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여론이 주를 이룬다. 때문에 그들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정책은 상당히 부족하고 이들의 인권은 언제나 사각지대에 놓이기 일쑤다. 이렇게 불평등한 상황을 탈피하고 성소수자의 권리를 찾고자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지난 2000년 9월 8일 대학로에서 첫걸음을 내디뎠고, 올해 20살 성년이 됐다. 50여명으로 시작했던 20년 전의 축제가 마침내 올해 7만여 명으로 몸집을 불려 역대 최대 규모를 이루기까지 그들의 평등을 향한 도전은 계속됐다.

노랑과 초록: ‘햇빛’ 가득한 날씨와 함께하는 ‘자연’ 속 축제 현장

시청역 5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펼쳐진 혼잡한 광경이 기자를 반겼다. 이날 서울시청 광장 일대는 ‘서울퀴어문화축제’, ‘퀴어문화반대집회’, ‘박근혜 탄핵 무효집회’ 등으로 십수만명의 인파가 북적였고, 각 단체의 함성과 크게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는 제소리를 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축제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귀를 찌르는 호루라기 소리와 위협적인 내용의 현수막, 길게 벽을 세우고 있는 경찰들은 괜스레 긴장감을 조성했다.

하지만 입구를 지나 축제 현장에 들어서자 화려한 옷차림과 머리색을 한 사람들과 외국인, 심지어는 법복을 입은 스님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들의 환한 미소와 독특한 모습이 금세 흥미로움을 더했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과도한 노출이나 자극적인 물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놀라웠다.

 

무지갯빛 깃발과 사람들의 향연 속에서 광장을 빼곡히 메운 80여 개의 부스는 국내인권단체와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 구글코리아 등의 기업과 정의당, 녹색당 같은 정당 등으로 채워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 건 조계종과 기독교 같은 종교계의 참여였다. 3년 전부터 축제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고금 스님은 “부처님도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지 말한다”며 “스님도 소수자 특성이 있기에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연대한다”며 뜻을 전했다.

또한 한국 최초의 성소수자 교회에서 새신자팀을 담당하고 있는 지미(34) 씨는 “같은 기독교 안에서 신앙도 포기할 수 없고 성 정체성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죄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며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순간에도 바로 옆 얇은 펜스를 사이에 두고 ‘동성애는 죄악’이라는 팻말을 든 또 다른 기독교 신자의 날 선 호루라기 소리는 축제의 흥겨운 음악과 함께 시청광장을 채워갔다.

파랑: ‘화합’을 향한 염원, 평등을 향한 도전

오후 2시가 되자 축제 본행사의 막이 올랐다. 자신을 ‘양성애자’로 소개한 칼럼니스트 은하선 씨와 퀴어 콘텐츠 크리에이터 이열 씨의 사회로 출발한 본무대는 렡츠렡츠, 붉은나비합창단 등의 공연을 차례로 선보였다. 사람들은 무지개색 팔찌와 두건 깃발 등을 몸에 두른 채 광장을 메우며 흥겨움을 함께했다.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찬 공간 속에서도 질서정연하고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은 진정 축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어느덧 오후 4시, 퀴어 퍼레이드가 시작되며 축제는 절정을 이뤘다. 참여자들은 서울광장을 출발해 소공동과 을지로입구역, 종각역을 지나 광화문을 거쳐 다시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4.5km에 이르는 거리를 흥겨운 음악에 맞춰 행진했다. 퍼레이드로 함께 발을 맞춘 성소수자와 시민들은 한목소리로 '평등'을 외쳤다.

주황: 축제를 통해 ‘치유’ 받는 사람들

▲ 시민과 퀴어가 어우러진 퀴어 퍼레이드 행렬
▲ 시민과 퀴어가 어우러진 퀴어 퍼레이드 행렬

 

흐뭇한 표정으로 축제를 즐기던 레즈비언 김 아무개(26) 씨는 “이번에 처음으로 애인과 함께 퀴어 축제에 참여했다”며 “현장에서 자신과 같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체만으로 힘이 된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몇 발자국 지나지 않아 만난 프랑스 교환학생 마틸드(21) 씨 역시 “퀴어 인권의 중요성을 알리고 응원하고자, 함께 교환학생을 온 퀴어 친구들과 이번 축제에 참여하게 됐다”며 “광장 안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편안하고 따뜻하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프랑스와 달리 퀴어 관련 행사가 열리는 현장에서 동시에 반대 집회가 열리는 모습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성소수자 부모 모임이라는 글자가 크게 프린팅된 티셔츠를 입고 밝은 얼굴로 축제를 즐기던 활동명 겨울 빛(58) 씨는 23살 트렌스젠더 아들을 둔 엄마다. 올해가 두 번째 축제 참여라는 그는 “시간이 갈수록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것을 실감한다”며 “자녀들에게 우리가 차별하지 않고 너희를 지지한다는 뜻을 전해줄 수 있어 축제에 참여하는 것 자체만으로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 같다”고 축제 개최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환한 미소로 답변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퀴어 축제의 진정한 의미가 모두 전달되는 듯했다.

보라: ‘정신’, 육체나 물질에 대립되는 영혼이나 마음

▲ 퀴어축제 반대 퍼레이드 행렬
▲ 퀴어축제 반대 퍼레이드 행렬

 

커다란 북소리를 따라 이끌리듯 도착한 서울시청 광장 맞은편 대한문광장에서는 약 5만명의 사람이 퀴어 축제와 차별금지법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이날 ‘동성애 퀴어 축제 반대 국민대회’에 참가한 이고은(22) 씨는 “동성애는 안 좋은 병을 퍼뜨리고 정상적인 가정의 형성을 막는다”며 반대 의사를 표했다. 또한 “퀴어축제의 경우는 자극적인 표현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해가 된다”며 “표현의 방식을 바꿨으면 좋겠다”고 퀴어 축제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반대 집회 개최에 대한 이유에 관해 묻자 관계자는 “동성애를 인권 문제로 둔갑시키는 것은 서양처럼 동성애자를 박해한 역사가 없는 우리나라와 무관한 이야기”라며 “서구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다수국민을 역차별하는 과잉 입법이므로 이를 막기 위해 집회를 열었다”고 답했다. 끝으로 “LGBT들을 혐오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우리는 오히려 그들을 사랑하며 탈동성애를 통해 정상적인 이성애자로 돌아오길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랑이라는 명사에 대한 상반된 시선. 누군가의 사랑과 그 누군가를 사랑해서 그의 사랑을 반대한다는 이야기. 엇갈린 사랑에 대한 시각이 깊은 여운을 남기는 광장이었다.

Epilogue

무지개: 이해가 아닌 인정으로 어우러진 다채로운 빛깔

축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무렵, 인산인해를 이루던 시청 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앳된 목소리의 울부짖음을 들었다. “나는 노브라고 동성애자지만 당당하다.” 순간 머리가 멍해지며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고 눈앞에는 눈물을 머금고 벅차하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곧 그 소녀가 외친 내용과는 상관없이 큰 깨달음이 뇌리를 스치며 존경심이 밀려왔다. “나는 다수가 반대하는 일에 있어 사람들 앞에서 용감하게 큰 목소리를 낸 적이 있던가.”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가 퀴어 축제를 통해 알아야 할 것은 단순히 퀴어 자체에 대한 찬반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것을.

때로는 특별한 존재의 등장이 다수의 질서를 위협한다는 생각에 두렵고 반감이 들 때가 있지만 우리는 안다. 그들이 바라는 건 파괴가 아닌 상생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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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9-06-12 18:55:45
퀴어축제 궁금했었는데 유익한 기사네요~ 색깔별로 기사 전개한것도 인상적이에요 취재하느라 고생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