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마에는 표적이 있나요?
당신의 이마에는 표적이 있나요?
  • 송정림 작가
  • 승인 2019.06.05 16:25
  • 호수 14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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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에밀 싱클레어는 크로머를 만나서 악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악동 크로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과수원에서 사과를 훔쳤다고 거짓말을 한다. 크로머는 그 거짓말을 꼬투리로 삼아 협박한다. 크로머의 끝없는 협박에 시달리던 그때, 싱클레어의 학교로 전학 온 부유한 미망인의 아들인 막스 데미안의 도움으로 크로머의 협박에서 놓여난다. 그 후 데미안과 싱클레어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

 

종교와 철학, 인생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데미안은 싱클레어 옆자리에 앉게 되고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싱클레어의 유년시절은 그렇게 막을 내리고 상급학교 김나지움에 진학하기 위해 집을 떠나게 된다. 1년쯤 지나자 그는 점점 타락해간다. 어두운 세계로 뛰어든 싱클레어는 그 세계에서 아주 근사한 녀석으로 통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그는 외로웠고 사랑에 대한 격렬한 동경과 가망 없는 그리움에 가득 차 있었다. 그에게는 아주 중요한 한 가지가 결핍되어 있었던 것이다. - 진실한 친구.


싱클레어의 집 대문에 새겨진 새의 문장을 들여다보던 데미안이 꿈에 등장한다. 그는 싱클레어에게 그 문장을 삼키라고 한다. 그것을 삼키자 새가 살아나서 싱클레어의 배를 채우고 그 새가 뱃속을 쪼아대는 것처럼 느낀다. 두려운 잠에서 깨어난 싱클레어는 그림을 그려 데미안의 옛 주소로 부친다.

 

데미안의 회답은 놀라운 방법으로 전달된다. 강의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책갈피 사이에 종이쪽지가 한 장 꽂혀있는 것을 발견한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때,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견신례 수업 시간에 했던 말이 떠오른다.

- 사람이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헤세
▲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헤세

싱클레어는 전장에 나가 부상을 당하는데 싱클레어를 찾아온 데미안은 말한다. “자네는 언젠가 나를 다시 필요로 하겠지. 그때 자네가 나를 부른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쉽게 말을 타고 가든지 기차를 타고 갈 수는 없을 거야. 그럴 땐 자기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럼 내가 자네 마음에 있을 거야.” 다음 날, 싱클레어는 거울 속에서 그동안 동경해온, 친구이자 지도자인 데미안과 똑같은 자신의 모습을 본다. 껍질을 깨는 아픔을 겪고 난 싱클레어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마에 새겨진 표적. 데미안이 싱클레어가 자신의 친구가 되리라는 것을 알아보게 했던 그 표적. 과연 우리에게는 어떤 표적이 새겨져 있을까.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은 호흡조절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물고기의 평형기관, 즉 부레를 가지고 있다고. 그러니 당신은 껍질을 깨고 날아간다고 해도 밑바닥으로 끝없이 굴러떨어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렇게, 자신의 내부를 수시로 방문해보고 마음의 가는 방향을 조정하고 호흡을 조절해볼 수 있는 사람, 물고기의 평형기관인 부레를 내부에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표적이 새겨지지 않을까. ‘이 사람은 마음에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추락을 막을 수 있습니다’라는 표적이.


달콤한 악의 세계를 동경하는 욕망, 나를 감싸고 있는 알 안에서 안주하려는 안일함, 그 욕망과 안일함을 한 번이라도 정면으로 대면한 적 있는지. 혼자 알을 깨는 고통을 겪은 자만이 자신에 대한 인생의 해명을 할 수 있다고, 그리고 날개가 꺾이는 일 없이 날아오를 수 있다고, 청춘, 그 푸르고도 긴 터널을 우리와 똑같이 힘겹게 건너간 싱클레어가 전해준다.

송정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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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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