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불 그 후 5개월… 끝나지 않은 악몽
강원도 산불 그 후 5개월… 끝나지 않은 악몽
  • 유경진·강혜주 기자
  • 승인 2019.09.17 09:21
  • 호수 14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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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산불, 그 후

 

한전 앞 불에 탄 트럭
한전 앞 불에 탄 트럭

 

 

Prologue
지난 4월 4일, 강원도 일대에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당시 발생했던 산불로 인해 소방청은 대응 수준 최고 단계인 3단계를 발령시켰고 전국 각지에서 소방차 872대가 집결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명확한 산불 피해 규명을 위해 조사가 길어지는 동안 이재민의 속은 잿더미처럼 타들어 갔다. 산불의 악몽으로부터 5개월이 지난 현재의 강원도는 어떤 모습일까. 이에 본지는 피해 복구 현장과 이재민들의 근황을 알아보기 위해 강원도 속초에 다녀왔다.

 

#초대형 산불, 그날의 기억
당시 산불 현장에 있었던 군인 이상진(21) 씨는 “밤에 갑자기 부대 내에 비상이 걸려 정신없이 대피했다”고 전하며 “산이 불에 타서 한밤중인데도 낮처럼 환하고 탄내가 심했다”며 그날의 상황을 떠올렸다. 또한 산불 발생 이후 한달 반 동안 잔해 처리에만 몰두하고 대민 지원도 자주 나갔던 경험을 떠올리며 피해가 심각했음을 알렸다.


지난 5월 정부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4일 동안 밤새 3천251명의 소방공무원과 군 병력, 산림청 진화대원, 의용 소방대원, 공무원, 경찰 등 총 1만명의 인력이 동원돼 화재 진압과 방화선을 구축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화재 발생 소식이 공론화되며 심각한 사안이 널리 알려지자 화재 발생 24시간 내에 전국에서 872대의 소방차와 110여대의 헬기 등을 동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불을 진압했다고 끝이 아니었다. 가스 폭발 등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 10일간 밤낮으로 주의 깊은 감시가 필요했다. 화재 현장 가장 가까이에서 사력을 다한 이들의 노고 덕에 더 큰 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다.


이번 산불로 속초·고성에 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약 453만7천500평의 산림이 파괴됐다. 또한 강원도 도민 약 1천300여명은 이재민 신세가 됐다. 게다가 속초·고성뿐만 아니라, 인제와 강릉·동해 지역에서도 동시 발생한 산불로 화재 진압에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 산불로 인한 강원도의 총 피해액은 1천 291억원으로 집계됐으며, 이 중 사유시설의 피해액은 303억원이다. 이에 정부는 해당 지역들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함으로써 시·도를 넘어 정부 차원의 복구 지원을 약속했다. 

화재로 무너져 골격이 드러난 주택
화재로 무너져 골격이 드러난 주택

 

#대비되는 속초의 모습
산불 피해가 심각하다는 뉴스로 국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것이 5개월 전이지만, 최근에도 예상보다 많은 관광객이 속초를 방문하고 있었다. 실제로 강원도 환동해본부에 따르면 속초 해수욕장의 관광객은 지난해 대비 41%가 증가했다. 


속초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리자 기자의 바로 건너편에는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속초지사가 있었다. 그 주변은 산불 원인으로 지목된 한전에 대한 주민들의 시위 흔적들이 가득했다. 벽에는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현장 사진들과 피해자의 분노를 표출한 글들이 남겨져 있고 그 앞에는 산불에 타버린 트럭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재민의 산불로 인한 피해 복구를 돕는 속초·고성 산불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전화번호도 함께 있었다.

 

#갈 곳 잃은 이재민의 근황
기자는 산불 피해가 가장 큰 지역 중 하나인 속초 장천마을에 찾아갔다. 속초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장천마을에 다가갈수록 산불 피해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다. 장천마을 경로당에는 노인 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산불 피해의 이재민이었다. 그중 한 할머니는 여러 방송사에서 산불과 관련된 인터뷰를 했다며 기자를 안내했다. 할머니가 알려주신 길을 따라 가보니 임시 조립식 주택 20여 채가 붙어있었다. 현재 임시주택의 계약 기간은 1년이지만 기간 안에 집을 복구하지 못할 경우 1년 더 연장 가능하다. 입주 조건은 따로 없으며, 이재민이면 들어갈 수 있다.


실제 임시주택에 거주하는 윤명숙(77) 씨는 “물세는 감면이 안 되지만 이재민은 전기세를 6개월 감면해 주고 시에서 쌀과 옷도 주는 등 많은 도움을 줬다”며 생활에 큰 불편함이 없다고 전했다.


본격적으로 장천마을을 돌아다니자 어렵지 않게 불에 소실된 주택을 볼 수 있었다. 몇몇 주택은 재건축이 한창이었고 일부는 더는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였다. 지난 7월 기준 강원도청에 따르면 이재민 총 1천518명 중 641명은 임시주택, 436명은 친척 집, 402명은 임대주택, 39명은 고성연수원과 서울시수련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장천마을에 마련된 임시주택
장천마을에 마련된 임시주택

 

#강원도 지역주민이 말하는 속사정
일각에서는 산불에 대한 정부의 발 빠른 대응을 칭찬하는 목소리도 있다. 산불 진화를 위해 전국 규모의 소방 시설 투입을 지시해 더 큰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산불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국민 성금 총 560억원이 모이고 기업과 개인의 자원봉사자가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강원도 주민들에 대한 직접적인 보상은 갈 길이 멀다. 


속초시는 강원도 산불로 피해가 컸던 지역 중 하나로, 당시 큰 손해를 입은 속초시의 진성폐차장을 찾아가 봤다. 현재 폐차장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산불로 인해 4천평이 모두 타버려 38억원의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손해 입은 폐차장을 운영 중인 김재진(56) 씨는 “폐차 처리 비용은 시에서 도와줬지만 새로 지을 때는 지원을 해주지 않아 직접 빚을 냈다”고 말했다. 또한 김 씨는 “주택 피해자의 자녀는 1천5백만원의 장학금이 지원됐지만 나와같은 자영업자는 자녀의 장학금 지원을 받지 못했다”며 이러한 차이에 대한 불만을 호소했다. 정부에게 원하는 보상이 있냐고 묻자 “피해 금액만이라도 보상해준다면 더 바랄 것도 없다”며 적극적인 보상을 주장했다.

진성폐차장의 화재 직후 모습
진성폐차장의 화재 직후 모습

 

#산불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흉터, 여전히 남아있는 강원도의 아픔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한전과 보상 협상 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속초 비대위 본부를 찾아갔다. 그 안에는 비대위에 소속된 위원들과 신고를 하러 찾아온 시민들까지 꽤 많은 사람이 있었다. 비대위 구성원들은 산불 발생 이전에는 모두 다른 직종에 종사했지만, 법률에 대해 잘 모르는 시민들을 대변하고 보상에 대한 주장을 정부에 관철하기 위해 하나의 집단으로 뭉치게 됐다. 


비대위 마수일(65) 총괄본부장은 “펜션 같은 경우에는 운영을 위해 내부 시설 사진을 모두 찍어뒀기 때문에 증거가 남아 보상을 받기 쉽고, 숙박업은 주택으로 분류돼서 이미 다른 중소상공인들과는 다르게 보상을 받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목수와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생업에 입은 피해를 보상해줄 방법이 마땅치 않고, 그 정확한 피해 산정도 어렵기 때문에 보상이 계속 늦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산불 발생으로부터 약 5개월이 흐른 8월 말, 이제야 피해 내용 신고를 접수받는 것이 사뭇 늦은 대처로 느껴졌다. 하지만 이들은 한전 측이 자의적으로 피해액을 측정하게 두면 턱없이 낮은 액수의 보상액을 받을 것이라 예상했고, 그렇게 두기에는 산불로 잃은 게 너무 많았다. 그들은 당장의 이익을 위한 보상이 아닌 앞으로의 생존을 위해 끝임 없이 투쟁 중이다. 


한편 정부가 산불 피해를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 및소상공인의 피해 신고액은 1천431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전에 정부가 발표한 피해복구 종합정책에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대한 보상 내용은 빠져 이재민들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지난달 ‘강원도 산불피해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 지원금 지급 조례’가 공포됐다. 이로써 피해 보상받을 길은 열렸지만 구체적 기준과 날짜는 미지수이다. 한시라도 빨리 모든 이재민에게 공정한 보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pilogue
기자는 어릴 때 이후로 강원도에 가본 적이 없다. 지난 4월 산불 소식을 접했을 때, 짧은 걱정 후 작은 성의를 모금하고 끝냈던 기억뿐이다. 방문기간 초반에는 관광객이 붐비는 바다와 깔끔한 도심을 보고, 산불로 인한 피해는 거의 정리돼가고 있는 단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내를 벗어나자 진정 산불이 남기고 간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뜨거운 태양에 초록 잎이 푸르러야 할 산지에는 듬성듬성하게 새로 심어진 나무와 검은 이파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자가 인터뷰했던 한 할아버지는 산불로 인해 불에 타버린 어린시절 사진을 가장 아쉬워하셨다. 한전의 피해 보상이 진행돼도 되돌릴 수 없는 게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집은 단순히 삶의 터전일 뿐만 아니라 공간에 담기는 그만의 기억이다. 금전적 보상은 이미 재가 돼버린 그들의 추억까지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화재의 위력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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