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이데아의 라면을 끓이다
플라톤, 이데아의 라면을 끓이다
  • 이준형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17 11:59
  • 호수 14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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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첫술에 맛있는 철학
▲ `이데아’라는 단 하나의 근거를 공유하는 라면
▲ `이데아’라는 단 하나의 근거를 공유하는 라면

 

내가 플라톤의 철학을 이해한 것은 군복무 시절에 맛본 어느 인스턴트 면요리 덕분이었다. ‘나가사키 짬뽕은 백색국물 라면으로 불리며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 쫄깃한 면발에 시원한 국물, 큼직한 해물 건더기까지! ‘싸제음식은 다 맛있는 군대임을 감안해도 그 맛은 가히 감동이었다. 정신없이 면과 국물을 넘기고 조금씩 배가 불러올 즈음, 뜬금없는 고민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근데 이거, 라면이야 짬뽕이야?’

논란의 여지는 많았다. 우선 이 녀석이 짬뽕이라고 주장한 좌뇌는 이름 끝의 짬뽕이란 단어에 주목했다. 반면 우뇌는 그럼 오징어 짬뽕도 짬뽕이냐며 좌뇌의 주장을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 결국 결정권은 심신 전반의 의견을 종합한 나의 몫. “, 이유는 모르겠고, 이거 라면인데?!”

 

나가사키 짬뽕이 결코 짬뽕이 아닌 이유

플라톤은 자신의 책 국가를 통해 우리가 나가사키 짬뽕을 라면으로 느끼는 이유를 밝힌다. 그의 세계관인 이데아론을 통해서 말이다. 이데아란 모든 라면을 라면이라 부를 수 있는 단 하나의 근거이다. 여기에 따르면 각각의 라면은 생김새와 맛이 모두 다르지만 라면이라 불릴 만한 무언가를 공유한다. 이들이 공유하는 것이 이상적인 라면, 즉 라면의 이데아. 만약 라면의 이데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많은 라면이 모두 라면임을 알 수 없다.

아울러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라면은 이데아 라면의 불완전한 복사물이다. 예를 살펴보자. 여기 동굴이 있다. 이곳의 사람들은 사슬에 묶이고 머리가 고정돼 평생 동굴 벽만 보고 살아간다. 그들 뒤에는 불이 있는데, 그 사이에 길이 있어 그곳의 그림자가 벽에 비친다. 출출함을 느낀 사람들 때문에 라면 그림자도 비쳤을 터, 결국 이들은 자신이 본 라면 그림자를 진짜 라면이라고 믿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사람이 풀려나게 된다. 동굴 밖으로 향한 그는 그동안 본 라면이 그림자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동굴로 돌아온 그는 이 사실을 알리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저 그림자에 만족한 채 살아갈 뿐이다.

 

그는 대체 왜 이데아를 말했을까?

플라톤은 자신의 이론을 통해 세상이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개인이 더욱 도덕적이며 이성적으로 바뀌어가길 바랐다. 그의 이데아는 영원하며 불변성을 지닌 세계이다. 이데아론은 구체적인 사물뿐만 아니라 정의, 선 같은 추상적인 개념에도 적용되며, 특히 선의 이데아는 궁극적인 이데아이자 모든 철학적 탐구의 목표이다. 플라톤은 선의 이데아가 마치 태양처럼 우리가 마음의 눈을 통해 실재의 본성을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한다. , 선을 통해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 지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이데아에 대한 선천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우리의 영혼은 이데아의 세계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어떤 종류의 새로운 라면을 보더라도 이것은 라면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왜냐면 그것은 라면의 이데아를 바탕으로 한 그림자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그는 불완전한 현실 세계를 더욱 나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 인간이 지닌 이성을 바탕으로 그동안 잊고 살아온 이데아를 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완벽한 라면은 가능할까?

그럼 완벽한 라면, 즉 이데아 세계의 라면을 맛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쉽지만 대답은 없다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죽기 전엔 이데아의 세계에 발끝조차 닿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 플라톤에 따르면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자는 이데아의 세계에 닿을 수도 있다니 그 맛이 궁금하다면 우선 라면만 먹는철학자가 될 각오부터 해야 할 게다. 그게 싫다면? 과감히 이데아 속 라면은 포기하자. 이미 우리 앞의 라면도 충분히 맛있기는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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