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 vs 행위
상태 vs 행위
  • 유헌식(철학) 교수
  • 승인 2019.11.14 13:33
  • 호수 1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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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헌식(철학) 교수
유헌식(철학) 교수

 

 

우리는 자신이 처한 상태(상황)에 대해 고민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건강, 돈, 진로, 사랑, 외모 등에 부족과 불만을 표시하며 어두운 일상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열악한 상태’는 일시적 걱정과 고민의 대상일 수는 있어도 지속해서 걱정하거나 고민할 대상은 아니다. 현재 상태를 단번에 변화시킬 수 없다면 걱정한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상태를 더 악화시킬 공산이 크다. 반복적인 걱정은 상태에 대한 부정적 심리를 증폭시켜 상태를 개선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걱정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내가 처한 상태나 상황은 고민이나 절망의 대상일 수 없다. 고민과 절망 자체가 상태를 개선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내가 처한 불만스런 상태에서 야기한 감정적 결과로서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는 될지언정 해결의 출구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상태를 두고 계속해서 고민하는 건 어리석다. 문제는 항상 ‘상태’가 아니라 ‘행위’에 있다. ‘불만스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지금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가?’가 관건이다. 예를 들어 내가 몸이 약하다면, 고민해야 할 것은 ‘약한 몸’이라는 상태가 아니라 ‘건강한 몸이 되기 위한’ 행위이다. 몸의 상태는 내가 싫더라도 인정해야 하며, 고민한다고 해서 당장 해결할 수 없다. 문제는 약한 몸을 건강 몸으로 만들기 위해 현재 내가 기울이고 있는 노력의 여부다. 건강을 개선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면 절망해야 하지만, 무언가 조금이라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 절망할 필요가 없다. 절망의 대상은 행위이지 상태가 아니다.


‘활기 있는 삶 살기’에서 요체는 삶에 대한 나의 태도를 ‘내가 처한 상태를 인내하며 어둡게 살아가기’에서 ‘어려운 상태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구체적으로 행위하기’로 전환하는 데 있다. 절망해도 좋은 것은 ‘어려운 상태에 있는 나’가 아니라 ‘어려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체적으로 행위하지 않고 있는 나’이다. 내 삶의 긍정적 의미는 ‘행위’를 통해서 확보된다. ‘행위’만이 내 삶을 새롭고 풍요롭게 만든다. 아렌트(H. Arendt, 1906~1975)는 말한다. “인간이 행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예상할 수 없는 것을 그에게 기대할 수 있다는 것과 또 매우 불가능한 것을 그가 수행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 삶에 새로운 활력을 넣고 내 안의 잠재력을 일깨우기 위해 나는 ‘나의 처지’가 아니라 지금까지 ‘나의 행위’를 반성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나의 처지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조금씩이라도 행위한다면 나는 밝게 살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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