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종이 작품의 대가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종이 작품의 대가
  • 금유진
  • 승인 2019.11.22 11:03
  • 호수 146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종이 문화재단 평생교육원 김영만(69) 원장

 

Prologue

“코딱지 친구들, 안녕하세요~!” 정겨운 말투와 밝은 에너지로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종이접기 아저씨. ‘EBS 딩동댕 유치원’, ‘TV 유치원 하나둘셋’, ‘혼자서도 잘해요’와 같은 방송에 출연해 전성기를 누리던 때로부터 한참이 지난 2015년, 그는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리틀텔레비전'(이하 마리텔)에 등장해 백종원의 기록을 깨고 1위를 달성했다. 그는 당시 방송이 끝난 3일 후에도 계속해서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며 사람들의 열렬한 관심을 끌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에게 쏟아진 사람들의 진심 어린 관심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 답을 알아보고자 색종이와 가위, 풀로 세상 만물을 창조하는 김영만(69) 원장을 천안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만나봤다.

▶ 본인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다른 일을 할 틈이 없이 종이접기를 30년 동안 해 온 사람이다. 지금은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으로 있고, 초빙 교수로 대학교 강의를 나가거나 청장년 콘서트 및 행사에 참여하며 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서른둘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종이접기를 시작했다. 종이접기를 직업으로 삼게 된 계기가 있다면.

미대를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과장 직급에 오른 순간,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사라진 내 삶에 회의감이 들었다. 그렇게 회사를 나와 광고 기획사를 차렸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이후 시장조사를 위해 방문한 일본에서 우연히 유치원 수업 시간에 종이접기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를 통해 종이접기가 아이들의 인지 발달에 큰 도움을 주는 활동임에도 우리나라에서 시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를 잘 가르쳐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진리를 다들 모르고 있다는 생각에 화도 났다. 그래서 직접 나서서 우리나라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과정을 만들기 시작했고 소수의 유치원 교사를 모아 강의를 시작하게 됐다.

▶ 종이접기를 직업으로 갖게 된 후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초기에는 주위에서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아침에 골프 가방을 메고 나가는데 나는 색종이, 풀, 가위를 들고 나가니, 가족들도 걱정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가부장적인 시대 분위기가 강하기도 했고, 가족들이 내 선택을 믿어주기도 했다. 시도하지 않은 채 느끼는 후회가 더 클 것이라는 판단하에 ‘일단 해보고 안 되면 말자’는 마음을 가졌다.

▶ 종이공예를 직업으로 삼은 뒤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

모든 순간이 나에게는 보람찬 순간으로 남았다. 지금까지 인터뷰나 강의로 청장년층을 만나게 되는 것도 그 옛날의 ‘코딱지’들이 잊지를 않고 나를 불러주기 때문일 것이다. 강연 중 만난 한 친구가 시골에 살며 색종이가 없어서 신문지를 잘라 텔레비전 앞에서 종이접기 방송을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건네준 것도 생각난다. 이보다 큰 보람이 어디 있을까.

▶ ‘코딱지’라는 애칭의 시작이 궁금하다.

종이접기 수업에서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사용했던 호칭이 방송되는 바람에 화제가 됐다. 어디 가면 코딱지라고 불러 달라, 사인해달라는 요청이 많다. 점점 커가면서 어려운 삶을 지내는 청장년들이 옛날이 그리워지다 보니 코딱지라는 말이 참 정겹나 보다. ‘공부만 해라'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며 재능이고 취미고 모두 무시한 채 사는 삶이 얼마나 힘들겠나. 참 가슴 아프다.

▶ 흔히 ‘직업병’이라는 말이 있다. 특별한 분야를 직업으로 가진 만큼 기억에 남는 순간이 많을 것 같은데.

어딜 가든 종이를 보면 가만 놔두지 못하는 습관이 있다. 식당에 가면 식탁에 깔린 종이나 종이컵을 무의식적으로 접고 자르고 찢는다. 예전에는 친구에게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만난 다방에서 이야기하다가 손에 있던 십만원짜리 수표를 찢어서 모양을 냈다. 그래서 돈은 받았는데 돈이 없었던 황당한 경험이 있다.

▶ 종이접기를 비롯한 전통 놀이 교육이 점점 사라지는 요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IT 문화는 이미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변화를 배제하며 무작정 아날로그가 최고라고 외치는 것은 고집이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직접 손으로 쓸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날 갑자기, 억지로라도 아날로그를 접했을 때 느껴지는 그만의 감성이 있을 것이다.

▶ 2015년도 MBC의 마리텔 출연 당시가 화제였다. 그때를 회상하자면.

처음 섭외가 들어 왔을 때 백종원, 김구라 등 당대 최고의 연예인들 틈에서 하는 종이접기 방송을 과연 청년들이 볼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어 꼴등을 각오한 채 방송국에 갔다. 그런데 생방송 10분 만에 서버가 터졌다. 그래서 이게 뭔 일인가 하고 모니터를 봤더니 ‘ㅠ’ 글자가 계속 올라오더라. 나는 모니터가 망가진 줄 알았다. 그래서 작가에게 말을 했더니 “아니에요. 선생님, 아이들 다 우는 거예요”라고 알려줬다. 그러고 보니 다들 “선생님 어디 가 계셨어요, 보고 싶었어요, 사랑해요, 많이 나이 드셨네요” 이런 말들을 하더라. 나는 쭉 여기에 있었는데 저희가 커서 어린이 방송 안 본 건 생각을 안 한다. 종이접기를 하고 대화하면서 정신없이 방송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 이후로 청장년이 된 그 옛날 코딱지에게 희망을 주겠다고 결심했고 그들을 만날 수 있는 모든 활동에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다.

▶ 주로 본인보다 어린 대상을 만나는데, 소통을 위한 방법이 있다면.

어린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멀리서 쳐다보거나 직접 함께 놀아본다. 나는 어린이 방송에서 대부분 가슴 위로 팔을 높게 뻗거나 높은 목소리로 말을 한다. 그것이 전부 배움을 통해 깨달은 아이들의 공감대이다. 아이들이 끝까지 종이접기에 몰두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청장년층의 강의가 있을 때는 “우리는 친구지만 내가 너보다 조금 더 많이 알 뿐이야” 라는 느낌으로 강의를 한다. 내가 어른이니까 내 말을 들으라는 식의 수직적 태도는 좋지 않다.

▶ 한국에서 종이접기라는 분야를 처음으로 개척했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일까.

사회적인 구조가 발목을 잡는 것 같다. 국어와 영어, 수학을 제외한 나머지 공부는 중요치 않다는 식의 인식이 안타깝다. IT 기술이 너무 빠르게 발달해 아날로그적 성격을 가진 그림 그리기나 종이접기 등의 활동이 많이 줄고 있는 현실도 아쉽다. 하지만 꼭 종이접기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관심 분야를 활성화하면 그게 도전의 시작이 되는 게 아닐까. 아무것도 갖지 않은 상황부터 시작하는 도전은 참 어렵지만, 각자가 가진 재능과 취미를 살려 본인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한 도전을 해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앞으로 그려가고 싶은 남은 인생은 어떤 모습인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나, 내가 하고 싶은 일 1순위는 재능기부이다. 그동안 수많은 청장년에게 참 많은 것을 받았다. 남들은 이미 방송을 통해 많은 것을 나눠줬지 않았냐고 말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그들이 나에게 베풀어준 사랑을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다시 베풀고 싶다. 그 일을 다 이룬 후 그동안 했던 모든 작품과 가위나 대본 같은 물건들을 전시할 수 있는 개인 박물관까지 만든 후 웃으면서 천당에 가고 싶다.

▶ [공/통/질/문] 마지막까지 자신과 함께하고 싶은 ○○은?

우리 가족이다. 우리 집사람하고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주까지. 내가 이렇게 30년 동안 한 우물을 파는 과정에서 가족들이 없었다면 이 일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흔한 통장 하나 없이 생활이 정말 어려웠던 시점부터 지금까지 묵묵히 건넸던 응원들이 계속 내 마음속 깊이 남아있다. 그래서 끝까지 가족들하고 함께 하고 싶다.

Epilogue

30년간 그래왔듯 지금도 아이들과 호흡하며 즐거운 배움을 전달하는 그는 여전히 어른이 어른답고 아이가 아이다운 세상을 꿈꾼다. 오늘날 그의 손끝을 보며 행복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터득한 어여쁜 아이들이 자라 세상에 선보일 저마다의 작품은 어떤 모양일까. 그 답을 알 수 없음에도 분명한 한 가지는, 자르고 붙이는 모든 단계의 과정을 겪고 탄생한 그 작품이 본인에게는 인생의 전부라는 것이다. 그 뿌듯함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흔히 가볍다고 여기는 주변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전부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시대가 오기를,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대접받는 사회가 당연해지기를 꿈꿔본다.

 

금유진
금유진 다른기사 보기

 ujj@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