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짜장과 짬뽕을 고민하다
철학, 짜장과 짬뽕을 고민하다
  • 이준형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4.14 17:35
  • 호수 14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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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철학
▲ 다양성과 통일성 사이 갈등과 고민이 끊이지 않는 짜장
▲ 다양성과 통일성 사이 갈등과 고민이 끊이지 않는 짜장

한동안 즐겨 본 어느 드라마의 주인공은 사랑에 빠진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려 이런 질문을 던졌다. “짜장면이 좋아요? 짬뽕이 좋아요?” 흔들리지만 단언할 수 없는, 이건지 저건지 알 수 없는 갈등과 고민을 온몸 저릿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준 그 말. 곰곰이 생각해 보자, 이만한 고민이 또 있는지. 치킨이야 ‘양념 반 프라이드 반’으로 해결됐다지만, 짜장과 짬뽕을 향한 고민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풀려야 풀 수 없는 문제다.

다양성 vs 통일성
철학 안에서도 이런 갈등과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철학사 속 최초의 대립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오니아 학파와 엘레아 학파의 논쟁이 대표적인 예다. 이오니아 학파의 헤라클레이토스는 다양성을 통해 세상을 바라봤다. 그는 낮과 밤, 정의와 불의, 선과 악 등 대립물의 지속적인 모순과 충돌을 바탕으로 한 끊임없는 변화가 세상의 본질이라 생각했다. 그의 철학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로 대표된다. 우리 눈에 강 자체는 변화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즉, 세상은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구성, 유지되며 이를 토대로 균형을 찾아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반면 엘레아 학파의 파르메니데스는 이 의견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에 따르면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으며, 없는 것은 말할 수 없음은 물론 파악할 수도 없다.” 생각해보자. 과연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지. 돌이켜보면 우린 무엇이 없다는 생각 정도만 할 수 있을 뿐 ‘없음’ 그 자체를 결코 머리에 그릴 수는 없다. ‘없음’이 없으니 그가 생각하기에 세상엔 ‘있음’만 존재한다. 또한 ‘있음’이 여럿 존재하려면 그 사이사이에 ‘없음’이 있어야 하므로 ‘있음’은 하나뿐이다. 즉, 존재는 통일성을 갖춘 하나다.

두 철학자와 함께하는 중국집
이제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가 함께 하는 중국집의 풍경을 상상해 보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아마 제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더라도 각자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짜장과 짬뽕을 넘어 볶음밥, 울면, 잡채밥이라도 말이다. 그는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방금 자네가 먹은 볶음밥과 지금의 볶음밥은 다른 것이니 어서 더 먹어보라”며 다양한 음식을 맛보길 서로에게 권했을 것이다. 볶음밥과 짬뽕 국물을 함께 내준 중국집 사장님에겐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반면 파르메니데스는 중국집에 도착하자마자 “짜장으로 통일!”을 외쳤을 게다. 그에게 모든 메뉴는 짜장면과 하등 다르지 않다. 짬뽕은 물론 탕수육, 라조기, 깐풍기, 양장피 같은 요리들도 ‘존재’에 포함되는 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아마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이거나 저거나 다 똑같은 마당에 500원이나 더 내고 자네에게 짬뽕을 시켜줄 이유가 어디 있는가?”

짜장면이냐 짬뽕이냐를 넘어, 융합의 세계로
짜장면이냐 짬뽕이냐의 고민은 지구가 멸망하거나 전국의 중국집이 모두 문을 닫지 않는 한 평생 끝나지 않을 게다. 아무리 짬짜면이 생겨나도, 탕볶밥과 2인용 쟁반 짜장이 출시돼도 온전한 짜장면 혹은 짬뽕 한 그릇 먹고 싶은 마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다양성과 통일성에 대한 논쟁 또한 오랜 세월 계속돼 왔다. 하지만 다양성과 통일성에 대한 주장 둘 다 ‘결코 아니다’라며 포기하기엔 나름의 타당함과 매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들의 대립과 고민 또한 계속될 것이다. 인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철학이 씨도 남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한 말이다.

 

더불어 이들의 주장은 상대의 입장을 인정하고 반박하는 과정을 통해 많은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이것이 소위 ‘융합’이 필요한 이유이며,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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