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가는 탄광, 태백의 잿빛 미래
꺼져가는 탄광, 태백의 잿빛 미래
  • 이소영·김성은·박민규 기자
  • 승인 2022.01.04 16:31
  • 호수 14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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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탄광
▲ 백산 갱구로 들어가는 입구가 끝이 없어 보인다.
▲ 백산 갱구로 들어가는 입구가 끝이 없어 보인다.

Prologue

‘개도 만 원을 물고 다녔다’던 국내 최대 석탄 생산지 태백은 1990년 이후 탄광 대부분이 폐광되면서 심각한 지역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 폐광지역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국내 유일의 카지노가 폐광 지역 개발을 지원하고 있지만, 산업기반 붕괴의 후유증은 여전하다. 황금시대의 막은 내리고 석탄 수요 감소로 현재 남은 탄광은 네 곳. 이마저도 향후 몇 년 안에 폐쇄하겠다는 정부 계획이 발표됐다. 이에 본지는 폐광 위기에 처한 탄광을 방문해 이곳의 현실에 대해 알아보고자 태백을 찾았다.

 

석탄 사용률만큼 줄어든 마을의 열기

국정 모니터링 지표에 따르면 2010년 국내 석탄 생산량은 2천84t, 소비는 2천698t으로, 당시는 생산량을 뛰어넘을 정도로 석탄 소비가 활발한 시기였다. 하지만 G20 정상회의에서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를 합의해 동시에 석탄 산업이 주춤하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결국 2020년에 와서는 석탄 생산량 1천159t, 소비 1천68t으로 생산된 석탄이 다 소비되지 못하고 남을 정도에 이르렀다. 기자는 탄광 시설 존폐의 갈림길에 선 철암동 마을을 방문하기 위해 태백역에 내려 철암역으로 향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도착하자 서늘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고 귀가 먹먹해졌다. 외딴 산속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탄광 시설에 다다르자 한때 광부들이 지냈던 석탄 공사 아파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는 문을 닫은 연탄 공장 건물이 남아 있는 이곳은 석탄산업이 번성했던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철암역에 도착한 기자를 먼저 반겨 오는 것은 석탄공사에서 일했던 누군가가 남긴 ‘석공 시절이 제일 좋았다’는 글귀와 그 시절을 향한 벽화였다. 

벽화를 따라 걸으니 철암탄광역사촌(이하 역사촌)이 보였다. 역사촌은 철암천 계곡을 따라 까치발 형식으로 만들어진 건물을 보전해 과거 흔적을 머금고 있는 곳이다. 까치발 건물은 광산 개발 당시 좁은 지역에 몰려든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철암천에 기둥을 세워 만들어져 이름 붙여진 까치발 건물들은 많은 인원을 수용하고자 증축에 증축을 거듭한 모양새를 고스란히 갖고 있었다.

 

▲ 철암천을 따라 세워진 까치발(기둥) 건물이 긴 세월의 흔적을 자아낸다.
▲ 철암천을 따라 세워진 까치발(기둥) 건물이 긴 세월의 흔적을 자아낸다.

건물들은 역사촌의 일부 시설로 남아 방문객을 위한 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낡은 외관과 달리 전시장 내부는 생활사의 흔적이 소중히 기억되도록 광부들의 손때와 석탄 가루가 묻은 생활품들을 비롯한 마을의 전경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 전시장에는 그 시절 삶의 애환을 담은 태백 아리랑과 광부 아리랑이 서글피 울려 퍼지고 있었다. “불원천리 장성 땅에 돈 벌러 왔다가 꽃 같은 요 내 청춘 탄광에서 늙네.”

 

▲ 광부들의 손때 묻은 생활품들이 그들의 노고를 말해 준다.
▲ 광부들의 손때 묻은 생활품들이 그들의 노고를 말해 준다.

장성선탄소, 잦아드는 광업 소리

역사촌 길을 따라 철암역두선탄시설에 도착해서는 서순분(74) 문화관광 해설사와 함께할 수 있었다. 선탄시설에 들어서자 보이는 웅덩이들은 비에 씻겨 내린 탄들로 인해 온통 검었다. 갱에서 나온 광부들이 장화에 묻은 석탄을 씻어낼 수 있도록 장화 세척장과 탈의실이 마련돼 있었다. 주변에는 물줄기를 따라 고된 노동이 씻겨 내려간 검은 흔적들만 남아 있었다. 탈의실에 보관된 모자와 장화에는 군데군데 미처 떨치지 못한 석탄 가루가 가득했다.

 

▲ 수많은 석탄 가루들이 씻겨 내려가지 못한 채 바닥에 남았다.
▲ 수많은 석탄 가루들이 씻겨 내려가지 못한 채 바닥에 남았다.

사물함을 뒤로하고 서 해설사를 따라 취업회장으로 들어갔다. 취업회장은 현재까지도 출근하고 있는 광부들을 위한 안전 교육장으로, 갱에 출·퇴근 전 30분씩 안전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곳곳에는 포스터들이 안전 수칙을 강조하며 제자리를 뽐내고 있었다. 뒤이어 서 해설사가 장성선탄소 예전 모습과 역사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가자 기자는 장성했던 탄광의 삶을 저절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탄광에는 안전을 위한 300가지가 넘는 규칙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청색이나 홍색 보자기로 도시락을 싸는 것, 청색과 홍색이 안전의 상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까마귀가 울면 일을 나가지 않는다거나 도시락을 쌀 때 밥을 4번에 나눠 담지 않는 등 미신과도 같은 규칙들이 아직도 지켜지고 있다. 탄광의 규칙에 따라 파란 옷을 입은 서 해설사와 직원의 모습에 규칙은 터무니없는 미신이 아닌 위험한 갱내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안전을 바라는 징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 교육이 끝나고 광부들의 작업 통로이자 물자 수송이 이뤄지는 백산 갱구 입구로 향하기 위해 방한갱도를 따라 오르자 탄의 매캐한 냄새가 스며왔다. 안전등을 따라 백산 갱구 입구에 다다르니 보이는 것은 입구 너머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갱구에서 이어지는 역두선탄시설은 일제 강점기의 구조물을 그대로 유지해 석탄산업의 역사를 보여주는 주요 시설물로 인정받아 2002년 등록문화재 21호로 지정됐다. 비록 언제 폐광될지 모르는 시설들이지만, 역두선탄시설에는 아직 광부들이 여전히 일하고 있었다. 역사와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는 그 가치는 계속돼야 할 것이다.

 

남아 있는 광부

서 해설사는 “과거에는 3교대로 갱에 일을 나갔으나, 현재는 8시간 간격으로 2교대를 진행한다”며 점점 저물어가고 있는 탄광소에 대해 설명했다. 철암역두선탄시설투어를 통해 인부들의 작업 환경을 가까이서 느낀 기자는 흥했던 선탄소의 모습을 떠올렸다. 광산 사원증만 있으면 한 가족이 먹고사는 것은 일도 아니었던 그때를 상상하며 서 해설사의 설명을 마저 경청했다. 이어진 설명은 “광부는 연봉이 적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을 수 있는데 석탄공사 소속의 광부들은 연봉이 1억 원 상당이며 작은 실수가 목숨과 직결될 정도로 위험한 작업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기자는 2018년 4월 발생한 정선 한덕철광 붕괴 사고가 뇌리에 스쳤다. 최근까지도 발생했던 사고에 탄광 작업이 얼마나 위험한 작업인지 다시금 직감할 수 있었다.

장성선탄소는 아직 광업이 진행 중이다. 많은 광부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태백을 떠났지만, 남아 있는 인부들이 갱도를 넘나든다. 안전상의 문제로 갱내에 들어가지 못한 기자는 그들의 작업 환경을 조금 더 들어 보기 위해 전직 광부 김기복(75) 씨에게 말을 걸었다. 광부 일은 그만뒀지만, 선탄소에서 물품 관리를 하며 광부들을 매일같이 본다는 그에게서는 탄광 작업의 노고를 들어볼 수 있었다. 그는 “요새는 업무 환경이 기계화됐으나, 근로 인원이 아주 적어져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며 200명이 작업했던 일을 20명이 맡고 있는 실정을 말했다. 장성선탄소의 호황기 때부터 일했던 김 씨는 일이 고되더라도 버틸 수 있던 이유로 가족을 꼽으며 “탄광에서 작업하면 봉급을 많이 받기 때문에 텁텁한 공기 속에서도 16년을 일했다”고 담담하게 과거를 회상했다.

 

▲ 아직 광업이 이뤄지고 있는 장성선탄소에 선별 전인 석탄이 깔려 있다.
▲ 아직 광업이 이뤄지고 있는 장성선탄소에 선별 전인 석탄이 깔려 있다.

저물어가는 태백

투어를 마치고 선탄소를 나와 뒤를 돌아보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얼룩진 초록색 포대 아래 가득 쌓인 석탄 더미였다. 석탄 더미를 바라보던 기자에게 다가온 장성선탄소 경비원 A 씨는 “현대인들이 석탄을 쓰지 않으니 수출도 되지 않아 저렇게 쌓여 있다”고 말하며 폐광에 대해 말을 꺼냈다. 지역 소멸을 우려하던 그는 “정부 차원에서 관광 장소를 만들어 주지 않는 이상 젊은 사람들이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며 “정부 입장에서도 광업소 근무자들의 직장을 보장한 후에 빨리 문을 닫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정부 차원의 노력을 바랐다.

 

▲ 수요가 없어 수출되지 못한 석탄 더미들이 쌓여 거뭇하게 보인다.
▲ 수요가 없어 수출되지 못한 석탄 더미들이 쌓여 거뭇하게 보인다.

석탄공사의 영업 손실은 2015년 330억 원에서 지난해 844억 원으로 늘어났으며 부채 또한 작년 2조1000억 원에서 올해 2조2115억 원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석탄공사는 부채 증가의 원인으로 무연탄 판매 가격의 동결에 반해 매년 증가하는 생산 원가를 꼽았다. 선탄소 앞에서 철물점을 오래 운영했다는 주민 강개동(73) 씨는 “폐광하지 않길 바라지만, 현재 석탄이 팔리지 않고 있어 얼마 가지 못하고 폐광할 것 같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강 씨는 “태백 탄광의 호황기와 불황기 모두를 지켜봐 온 주민들에게 의미가 깊은 탄광소의 존재가 없어진다면 이 마을도 없어질 것 같다”며 걱정을 표했다.

탄광의 존립은 단순히 근로자뿐 아니라 태백 시민 전체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탄광 노동자들의 희생에 정부가 답할 때이다. 석탄공사 기능 조정 일정 및 방향을 명확히 하라!” 선탄소 취업회장 벽에 붙여져 있던 성명서의 서두다. 투어 중에는 무슨 뜻인지 몰라 스치듯 지나갔지만, 직원과 주민의 말을 들은 후에야 퍼즐 조각을 맞출 수 있었다.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들은 멀지 않은 폐광과 불확실한 태백의 잿빛 미래에 대해 공상하게 했다.

 

Epilogue

한때 우리나라의 경제 중추를 담당했던 태백은 이제 일자리 감소로 인한 인구 유출의 가속화로 지역 소멸까지 우려되고 있다. 주민들과 정부 양측이 원만한 합의와 효율적인 전환을 위해 고민하고 있지만, 서로의 간극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는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기자는 취재 내내 이 시구가 머리에 맴돌았다. 연탄재는 함부로 차 버리면 쓸모없게 되지만, 잘 활용하면 공사장에 땅을 돋을 수 있는 건축 자재가 된다고 한다. 한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웠던 태백은 이제 길가에 늘어져 잘 활용되기만을 기다리는 연탄재와 같은 신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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