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게 식어버린 평창올림픽 열기
차갑게 식어버린 평창올림픽 열기
  • 신동길·정서현 기자
  • 승인 2022.03.15 18:10
  • 호수 1486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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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시설 사후관리
▲ 올림픽 경기가 치러졌던 스키점프 경기장의 모습이다.
▲ 올림픽 경기가 치러졌던 스키점프 경기장의 모습이다.

Prologue
많은 국민의 관심과 성원 속에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지난달 20일 폐막했다. 폐막 후 경기에 사용된 시설들은 어떻게 될까. 보통 올림픽이 끝나면 시설들을 철거하거나 방치하기 일쑤다. 직전에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하 평창올림픽)을 위해 만들었던 시설 또한 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평창올림픽이 끝나고 4년이 지난 지금, 많은 돈을 들여 건설한 경기장은 대부분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이에 본지는 직접 경기장을 방문해 평창올림픽 시설에 대한 사후 활용 문제를 알아봤다.

 

방치되고 있는 시설, 발길 끊긴 경기장
기자는 평창올림픽의 시작이자 중심이었던 평창올림픽스타디움(이하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약 2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도착한 평창은 논밭뿐인 흔한 시골의 모습이었다. 올림픽 개최지였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대중교통 수단도 잘 마련돼 있지 않아 기자는 버스터미널에서 스타디움까지 걸어가야만 했다. 15분 정도 걸어 스타디움에 가까워지자 올림픽 기념 전시물이 보였다. 그제야 동계올림픽이 개최됐던 곳에 왔음을 실감했고, 4년 전 관광객들로 붐볐던 평창이 떠올랐다. 그러나 기자가 기억하던 스타디움을 찾을 수는 없었다. 기자 앞에 있는 스타디움은 텔레비전에서 봤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상반된 모습이었다. 기존 오각형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본부석으로 쓰였던 건물 하나만 남아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기념하는 박물관으로 변해있었다. 경기장 대부분이 철거된 허허벌판 위에는 성화대만이 홀로 자리하고 있었다.

 

▲ 철거된 경기장 부지에 성화대만 보인다.


기자는 씁쓸한 마음을 다잡고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 기념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외부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평창올림픽의 여운을 이곳에서는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평창올림픽에 쓰였던 물품과 당시의 영상을 볼 수 있어 이렇게라도 그때의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시설이 남아있음에 안도했지만, 정작 이곳을 찾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평일임을 고려하더라도 기자를 포함해 두세 팀의 관람객만이 이곳을 둘러볼 뿐이었다. 4년 전, 온 국민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평창올림픽 주 경기장의 모습이 맞는지 기자는 왠지 모르게 안타까웠다.


스타디움 곳곳을 봤을 때, 이곳이 개·폐회식이 성대하게 열렸던 곳임은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쩌다 바뀌어버린 걸까. 스타디움은 유지비 감소를 위해 건설 당시부터 철거를 계획해온 터라 폐막 3개월 차인 2018년 6월에 해체됐다. 이는 단순히 스타디움만의 문제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국회의원의 국정감사 보도에 따르면 평창올림픽이 열렸던 7개 시설에서 지난 3년간 약 135억 원의 적자가 발생했으며 수익률은 평균 78%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후 활용 방안이 뚜렷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이뤄졌던 여러 대회와 행사마저 코로나19로 인해 차질이 빚어지며 시설 운영에 더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자연림 원상복구 vs 경기장 시설 존치
정부는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며 국립공원인 가리왕산에 ‘정선 알파인 경기장’을 건설했다. 특별법까지 제정해 가리왕산의 3%에 해당하는 면적을 경기장으로 만들었다. 개발 당시에는 올림픽이 모두 끝난 이후 가리왕산을 전면 복원하는 것으로 약속했다. 그러나 막상 대회가 끝나자 기존 공사 계획의 3배에 가까운 산림이 훼손돼 1천억 원에 가까운 복원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에 주민들은 수백억 원을 들인 스키장을 그대로 철거하기보다 곤돌라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편이 낫다고 의견을 내세웠다. 대회 이후부터 3년간 시민단체와 정부, 그리고 투쟁위원회의 회의 끝에 결국 정선군이 2024년 12월 31일까지 3년 동안 곤돌라를 한시적으로 운영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직접 정선 알파인 경기장에 방문한 기자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는 몇 개의 입구 빼고는 철조망으로 출입을 통제 중이었고, 운영이 중단된 곤돌라와 기둥들이 없었다면 이곳이 스키장이 맞나 의심될 정도로 황폐했다. 경기장을 관리하거나 경비를 담당하는 인원도 없었으며, 취재하는 동안 관광객도 찾을 수 없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곳에서 올림픽이 열렸는지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올림픽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둘러보던 기자의 눈에 컨테이너 한 채가 들어왔다. ‘목숨 걸고 쟁취한다’, ‘유산보전 약속했던 청와대는 응답하라’라는 문구가 적힌 컨테이너는 ‘알파인경기장 철거반대 범국민 투쟁위원회’(이하 투쟁위원회)가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었다. 컨테이너를 보던 기자에게 투쟁위원회 관계자 김지혜(37·가명) 씨가 다가와 답답한 현실을 토로했다. 정선 알파인 경기장 보존을 주장하던 그는 “철거하는 과정에서 큰 비용이 들어가고, 경기장을 철거한다고 해서 자연이 원상 복귀되지도 않는다”며 투쟁 이유를 말했다.

▲ 투쟁위원회의 요구가 컨테이너에 적혀 있다.

올림픽 열기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
유지비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많은 경기장을 폐쇄하거나 철거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정선 알파인 경기장처럼 철거하는 데 큰 비용이 소모될 수 있을뿐더러, 우리나라 동계 스포츠의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시설들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창올림픽에 사용됐던 경기장들이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자체와 정부는 큰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 일환으로 현재 강원도는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이하 청소년올림픽)의 경기장으로 평창올림픽 경기장을 활용할 계획이다. 


‘강원도개발공사’ 올림픽시설팀의 이용배(54) 팀장은 “평창올림픽 경기장에서는 동계 스포츠 대회 개최 국가대표 훈련, 유소년 육성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올림픽 경기장 존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청소년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동계 스포츠에 관한 관심을 다시 끌어올려 평창올림픽 경기장 운영을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강릉하키센터의 융·복합 문화공간 개발과 평창슬라이딩센터 체험시설 운영을 통해 흑자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향후 운영 방안을 전했다. 현재 평창 슬라이딩 센터에 일반인을 위한 체험시설 운영을 준비하고 있으며, 강릉하키센터는 융복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실제로 기자가 취재하며 방문한 평창올림픽 시설마다 청소년올림픽에 대한 홍보 현수막이 달려 있었다. 우연히 방문하게 된 청소년올림픽 조직위원회 사무실에서 청소년올림픽 개최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왔다.


기자는 평창올림픽 시설을 잘 활용한 사례도 있을지 찾아보던 중, 시민들에게 컬링 강습과 스케이트장을 제공하고 있다는 강릉컬링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맞지 않아 컬링 강습은 보지 못했지만, 수많은 시민이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평일 오후 4시라는 애매한 시간에도 많은 사람이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모습에서 4년 전 평창올림픽의 뜨거웠던 열기를 조금이나마 다시 느껴볼 수 있었다.

▲ 스케이트장이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서울올림픽의 선례는?
기자는 사후관리가 잘 이뤄진 경기장의 사례를 알아보기 위해 1988 서울 하계올림픽(이하 서울올림픽)이 개최됐던 올림픽공원을 방문했다. 도심 속 시민들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올림픽공원 내 곳곳에서 올림픽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중앙광장에는 올림픽에 참가한 나라들의 국기가 게양돼 있었으며, 한쪽에서는 서울올림픽의 성화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올림픽이 개최된 지 30여 년이 넘었지만, 이곳에서는 서울올림픽의 열기가 생생하게 전해졌다.

▲ 올림픽 개최의 흔적이 남은 서울올림픽공원의 모습이다.


단순히 올림픽의 열기만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올림픽 공원에서는 수많은 문화 행사와 콘서트 등이 진행될 뿐 아니라 수영, 테니스와 생활 체육에 대한 강습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공원 내 올림픽수영장에서 수영을 자주 한다는 최경현(54) 씨는 “잘 갖춰진 체육시설이 근처에 있어 자주 방문한다”며 “서울올림픽 경기장을 활용해 시민들에게 문화·체육 시설로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평창올림픽 경기장도 무작정 철거하기 보다는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평창올림픽 사후 활용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전했다.


서울올림픽의 주요 경기장이었던 잠실주경기장과 잠실야구장, 올림픽 펜싱경기장, 장충체육관에서는 각각 축구와 야구, 핸드볼, 배구 경기가 진행된다. 하계 종목은 프로리그가 활성화돼 있고 국민들의 관심도가 높아 사후 활용 문제에 대한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경기장이 서울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평창은 방문객 자체가 많지 않을뿐더러, 동계 스포츠에 대한 프로리그가 존재하지도 않아 사후 활용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서울올림픽과는 다른 방식으로 평창올림픽 경기장들의 사후 활용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Epilogue
4년 전, 많은 국민에게 희로애락을 선물했던 평창에서는 그때의 열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운영비의 지속적인 적자와 방문객 감소에도 불구하고 경기장들을 마냥 외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자체와 정부는 평창올림픽 경기장을 미래 스포츠 육성을 위한 발판으로 삼고, 국민들에게 문화·체육시설을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다. 단순히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지 않도록 투자하고 관심을 가질 때, 평창올림픽 경기장들은 ‘애물단지’가 아닌 ‘보물단지’로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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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2022-03-18 14:53:24
동길동길 기사기사 사랑사랑

동길러버 2022-03-18 02:04:11
신동길 화이팅 !!!

단대탈출넘버원 2022-03-15 22:44:51
길동기자님 기사를 너무 잘쓰셔서 읽다가 눈물 두방울 흘렸어요..진짜 심금을 울리는 기사 항상 감사합니다... 다음 기사도 기대할게요..! 아직도 눈물나네요...당신의 필력에 박..수..

오구 2022-03-15 22:27:04
와 캬 퍄

고뽕크림슨 2022-03-15 22:13:06
잘자요 제발 한 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