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발전한 세상에서 선한 연대를 이야기하다-천선란 소설가
기술이 발전한 세상에서 선한 연대를 이야기하다-천선란 소설가
  • 이정온 기자
  • 승인 2022.03.22 16:34
  • 호수 14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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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30) 소설가

 

Prologue
세상은 우리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 삶에 편리함을 가져오지만, 누군가의 삶을 파괴하기도 한다. 소설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세상 속 사람들의 연대와 인간 삶의 존재 의미를 이야기하는 소설가가 있다. 장편 소설『천 개의 파랑』으로 2020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우리나라의 SF 소설 열풍에 열기를 더한 천선란(30) 소설가를 만나봤다.


▶ 자기소개 부탁한다.
SF 소설을 주로 쓰는 소설가 천선란이다.

 

▶ 천선란이라는 이름은 필명이라고 들었다.
항상 학교에 동명이인이 있었기 때문인지 기억에 남을 만한 필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이름들을 만들어보다가 가족들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오면 좋을 것 같았다. ‘천선란’이라는 이름은 엄마, 아빠, 언니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가져왔다.

 

▶ 처음 소설가를 꿈꾸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렸을 때부터 만화 보는 걸 굉장히 좋아했다. 만화책을 읽고 나면 알려지지 않은 얘기나 뒷얘기를 상상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고 진로를 결정해야 했을 때였다. 선생님의 좋아하는 게 뭐냐는 물음에 우주도, 외계인도 좋아하지만 그중에서 이야기를 상상하는 일을 제일 좋아한다고 답했다. 선생님께서 소설가를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신 덕에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강렬하게 원하게 됐다. 때마침 안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의 편입 공고가 올라와 편입시험을 치르고 진학해 본격적으로 소설가를 꿈꾸기 시작했다.


▶ 소설가가 되는 데 주변의 반대는 없었나.
주변의 반대는 없었지만, 스스로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많았다. 언젠가 반드시 소설가가 돼야겠다는 마음은 있었어도 그게 언제일지는 알 수 없었다. 막연함을 이기는 게 제일 어려웠다. 응원도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더라. 나와 다르지만, 모두가 목표를 위해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며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소설을 열심히 쓰는 것밖엔 없다고 느꼈다. 주변인이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사는 자체로 무언의 응원이 됐다.

 

▶ 글에 가족의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가족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에게 가족은 완벽한 타인이다. TV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단란한 모습의 가족은 아니었다. 너는 너, 나는 나 같은 모습이었다. 아버지가 워낙 오랫동안 해외 출장을 다녀 나는 물론이거니와 언니하고도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애틋함이 크거나 서로를 완전히 아는 가족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 점이 오히려 함께 사는 게 무엇인지 잘 알게 해줬다. 서로를 이해해야 하고 서로가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함께 사는 것이고, 가족인 것 같다.

▲ 카페 창가에서 천선란 소설가가 자신의 책,『천 개의 파랑』을 읽고 있다.
▲ 카페 창가에서 천선란 소설가가 자신의 책,『천 개의 파랑』을 읽고 있다.

 

▶ 대학생 때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소설을 썼다. 일과 소설 쓰기를 병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그때는 시간이 부족한 게 제일 어려운 문제였다. 입버릇처럼 하루가 48시간이나 72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다. 그만큼 밀도 있게 시간을 사용하는 게 힘들었다. 그러나 바쁜 와중에 틈틈이 소설을 쓸 수 있어서 오히려 즐거운 시기이기도 했다.


▶ ‘세상을 알아갈수록, 지구는 엉망진창’이라는 자신의 명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 생각은 점점 더 확고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어떤 문제나 어려움에는 반드시 해답이 있고 풀어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믿고 완벽한 행복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세상에 복잡한 문제가 많이 존재하고 이를 다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낀다. 어떤 것을 택하면 다른 것은 포기해야만 하는 일이 점점 더 쌓이는 걸 보니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엉망진창인 것 같다. 또 예전에는 사람의 힘을 믿었다. 한순간에 뿜어져 나오는 옳은 힘을 믿었는데, 가끔은 그것마저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기억에 남는 응원이나 격려의 말이 있는지.
대학교에 다닐 때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담당 교수님이 “사람이 살면서 인생의 바닥을 쳐봐야 너도 글을 쓸 때 타인의 마음을 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에 위로를 받았고 지금까지도 가장 힘이 되는 말이다. 힘들 때마다 “내가 힘든 걸 겪어봐야 타인의 힘듦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사람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으로 기분을 전환할 수 있게 됐다.

 

▶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해 듣고 싶다.
쓸 수밖에 없어서 쓴다. 나에게는 소설을 쓰지 않는 게 더 힘들다. 나는 누가 “너 소설을 써야만 해, 돈 줄 테니까 소설을 써”라고 하기 전에도 소설을 썼던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습관이 됐다. 상상하는 것도 습관이고, 갑자기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것도 습관이 돼서 오히려 앞으로 소설을 쓸 수 없다거나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쪽이 더 괴롭게 느껴질 것 같다. 그건 혼자서만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소설이 완성된다는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 [공/통/질/문] 마지막까지 자신과 함께하고 싶은 두 글자는 무엇인가.
재미. 소설을 쓰는 것도 무언가에 도전하는 것도 재밌고 즐거워야 일을 하는 사람이다.

 

▶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을 대학생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대학생 때 기억은 실패한 경험밖에 없다. 연애도 실패하고 인간관계도 실패했다. 멋있는 대학 생활을 꿈꿨는데 대체로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대학생 때 충분히 실패하고 나니, 사회에 나왔을 때 어떻게 하면 힘들어지는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어 실패가 두렵지 않았다. 대학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사회에서 실패했을 때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시기를 겪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대학에 강연하러 갈 때도 무조건 대학생 시절에는 실패를 많이 하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우리 대학 학생들도 실패를 좀 많이 해봤으면 좋겠다. 

 

Epilogue
창작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런데도 창작을 해내는 사람들에게는 그 고통을 뛰어넘는 창작 욕구가 있다. 소설에 대해 말하는 그에게선 엉망진창인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 내는 즐거움이 느껴졌다. 기자 또한 실패를 거듭하는 삶에 의미가 있는지 회의가 든 적 있다. 기자를 포함한 청년 모두가 실패를 밑거름으로 삼아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길 바란다.

이정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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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ni0928@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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