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사람
그림과 사람
  • 원미소(문예창작·3)
  • 승인 2022.05.10 13:17
  • 호수 1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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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난겨울은 ‘그림과 사람*’이다. 대학생이 된 후 방학마다 ‘한 가지는 하고 싶은 일, 한 가지는 미래를 위한 일을 하자’는 법칙을 정해두었다. 피아노 학원과 자격증 공부를 병행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직전 학기에 열정을 끌어다 쓴 듯 방학과 동시에 번아웃이 왔다. 현대인이 흔히 겪는 문제라지만, 의지가 있던 자리에 불안만 남은 듯했다. 미술 학원에 등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동경하던 일을 하면 여유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인원이 많지 않은 시간대라 그림을 그리며 선생님과 자주 대화를 나눴다. 선생님은 내가 지향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재능을 살린 안정적인 직업, 불특정 다수와의 교류, 유연한 태도, 자주 제주로 떠나는 것까지 전부 이상적이었다. 그림만큼 대화를 기대하며 학원으로 향하는 날이 잦았다. 선생님과 그의 입을 통해 전달받은 학원 사람들의 삶을 통해 삶은 무수히 많은 모양을 하고 있음을 여실히 느꼈다. 사람의 삶을 입에 담고 애정하는 장면들을 그렸던 두 달은 나의 열정을 되살려냈다. 학원에서 마주한 삶의 파편들을 글로 담고 싶어졌다. 내게 닿은 감정이 타인에게도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고여있다고 생각했던 시간을 다른 각도에서 보니 차오르고 있었다. 물 때문에 종이가 쪼그라들었다고 생각했지만, 물을 머금은 덕에 수채화의 느낌을 살릴 수 있었던 것처럼. 그림과 사람 덕에 여름의 문턱에 서 있는 지금, 나는 쏟아질 여름의 파도가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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