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빚다, 흥에 취하다
술을 빚다, 흥에 취하다
  • 박아영 기자
  • 승인 2022.05.24 14:26
  • 호수 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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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제조장

Prologue
최근 ‘혼술(혼자 마시는 술)’과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문화 확산과 더불어 전통주, 과일주 같은 특색있는 술이 MZ세대에게 인기를 끌며 주류업계가 주목받고 있다. 실제 홈술족이 늘면서 소매점의 주류 판매량은 부쩍 늘었다. 작년 1월부터 7월 15일까지 6개월 가량 백화점, 마트, 편의점 등 유통채널의 전체 주류 판매량은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동기 대비 13.9%가량 증가했다. 이제는 정말 우리와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술.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고 하던가. 기자는 술을 파헤치기 위해 취재 길에 나섰다.

 

맥주, 전국을 홀리다
대형마트나 편의점에 가면 맥주 진열장이 주류코너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수제 맥주가 다양해졌다. 개성을 살린 브랜드들이 속속 등장했고, 작년 초부터 새로 출시된 수제 맥주만 100개가 넘는다. 동시에 지역 특색을 살린 ‘로컬 맥주'가 새로운 추세로 떠올라 저변을 넓혀가고 있고, 그 선두에는 ‘제주맥주’가 있다. 기자는 맥주 시장의 경향을 살피기 위해 제주맥주가 위치한 제주도 한림읍 양조장으로 향했다.


제주맥주는 한림읍에서도 외각 자리인 금농산업단지에 있었다. 기자는 숙소에서 30분 가량 택시를 타고 거대한 공장들 사이를 지나 양조장 앞에 내렸다. 도착해서 바라본 건물은 생각보다 거대해 수제 맥주의 성장세를 짐작할 수 있었다. 건물 3층에 들어서자 맥주 시음공간과 맥주잔을 꾸밀 수 있는 공간, 굿즈샵이 보였다. 기자는 미리 양조장 투어를 예약했기에 곧바로 투어 시작 지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제주맥주 홍보팀 양다영(29)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제주맥주는 수제 맥주 회사이기에 장인들이 만드는 회사라고 생각하면 쉽다”며 “지역성, 다양성, 혁신성이라는 3가지의 주된 포인트로 기업을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 씨는 “맥주 중에서도 수제 맥주를 찾는 젊은 세대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양조장은 그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맥주 라인업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산 수제 맥주가 다양해지는 데는 주세법 규제 완화가 한몫했다. 법 개정으로 제조원가에 세금을 매겼던 방식이 중량 기준 과세로 바뀌면서 제조원가가 낮아졌고, 맥주에 넣을 수 있는 과실 비율 한도가 20%에서 올해부터 50%로 높아지면서 맥주의 다양화를 촉진한 것이다. 그 결과 수제 맥주 시장 규모는 2013년 93억 원에서 작년 1천520억 원으로 폭발적 성장세를 보였다. 시장이 커지자 맥주 업체들은 상품 종류를 더 늘리고 무알코올 맥주 시장에 진출해 보폭을 넓히고 있다. 양 씨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주류 중 하나가 바로 맥주”라며 이를 통해 수많은 문화, 예술, 오락 분야가 풍요로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 귤향이 잘 어울리는 제주맥주다.
▲ 귤향이 잘 어울리는 제주맥주다.

맥주 제조의 A to Z
양조장 투어 시간이 되자 점점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정각이 되자 강민혜(27) 해설사가 사람들을 이끌고 2층으로 내려가 해설을 시작했다. 강 해설사는 맥주의 재료부터 양조공정을 거쳐 출하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맥주는 ‘분쇄-당화-여과-가열-침전-냉각-발효-숙성’의 과정으로 만들어지는데,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완성까지 몇 달이 더 걸릴 수 있다. 그는 건너편의 커다란 탱크 2대를 가리키며 ‘브루하우스(Brewhouse)’라고 불렀다. 이어 그는 “첫 탱크에선 맥아를 물과 섞어 전분을 추출하고, 둘째 탱크에선 옮겨진 맥아 찌꺼기와 맥즙을 분리한다”고 설명했다. 사람 키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큰 탱크에 기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 강 해설사가 관광객들에게 홉을 보여주고 있다.
▲ 강 해설사가 관광객들에게 홉을 보여주고 있다.

맥주 제조 과정을 설명한 강 해설사는 해설 중 ‘브루어리 랩(Brewery Lab)’에 들어가 맥주 양조에 가장 중요한 4대 원료인 맥아, 홉, 효모, 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곳엔 실제 홉과 향신료가 전시돼 있어 맥주별 맥아 로스팅 방법을 확인하고, 홉의 향을 맡아볼 수 있었다. 맥주에서 나는 구수한 향이 바로 홉에서 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기자는 삼면이 통유리로 된 공간에 서서 가장 중요한 발효와 숙성 단계 설명을 들었다. 강 해설사에 따르면 발효 단계에서 맥즙에 있는 당을 효모가 먹어 이산화탄소, 알코올을 뿜어낸다. 그리고 저장탱크에서 하루 정도 숙성을 함으로써 안정화 및 최적화 단계를 거쳐 맥주를 완성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물류 시설에서 제조된 맥주가 한 줄로 길게 이어지며 패키징 되는 과정을 확인하고 투어를 마쳤다.

▲ 완성된 맥주가 병에 옮겨지고 있다.
▲ 완성된 맥주가 병에 옮겨지고 있다.

 

이제는 어르신들만의 술이 아닌
제주맥주의 양조 과정을 살펴본 기자는 3대 소주에 속한 고소리술의 양조 과정이 궁금해 ‘제주샘주’ 양조장을 찾았다. 흔히 우리나라 3대 소주로 ‘안동소주’, ‘개성소주’, ‘고소리술(제주소주)’을 꼽는다. 특히나 고소리술은 향기롭고 은근하게 올라오는 취기로 술을 마시는 흥취가 있다고 해 그 명성을 떨쳐왔다. 

▲ 현무암으로 제주샘주 술병 모양을 쌓았다.
▲ 현무암으로 제주샘주 술병 모양을 쌓았다.

제주도 애월읍에 있는 제주샘주에 가까워지자 진한 알코올 냄새가 기자의 코를 자극했다. 건물에 들어가니 직원들이 분주히 술을 박스에 옮기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김숙희(58) 대표는 기자에게 “술을 거르지 않으면 막걸리가 되는 것이고, 위에 맑은 부분만 쓰면 약주가 되고, 이를 끓이면 소주가 되는 것”이라고 술의 기본을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주류 제작에서는 차조(좁쌀)를 거의 쓰지 않지만, 김 대표는 차조를 섞어 술을 제작한다. 그는 “소줏고리(소주 내리는 기구)의 제주도 방언이 고소리”라며 “해당 증류기를 통해 내렸다고 해 고소리술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약주 주조과정에서 탱크별로 술맛이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막걸리와 약주는 온도와 날씨에 예민하고, 한 탱크에서도 미생물의 움직임에 따라 윗부분과 아랫부분의 맛이 다를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김 대표는 술이 완성돼도 숙성 탱크에 넣어 전체적인 맛을 일정하게 맞춘다. 10여 년 전만 해도 그는 직접 저음질을 하며 탱크 안에 미생물이 골고루 퍼지게 했지만, 현재는 기계를 이용해 온도를 제어하고 자동으로 저어 관리하고 있다. 그는 소주의 경우 “단지 숙성 여부의 차이에 달려있어 주조 과정에서 탱크별로 맛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 제주샘주 건물 안쪽에는 소줏고리가 전시돼 있었다.
▲ 제주샘주 건물 안쪽에는 소줏고리가 전시돼 있었다.

고소리술은 차조와 누룩으로 빚은 오메기술을 고소리를 사용해 증류시킨 제주의 토속 소주이다. 약 700년 전 고려 시대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제주도의 전통주다. 김 대표는 “제주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고소리술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기자가 김 대표의 설명을 듣는 와중에도 그의 휴대전화는 문의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젊은 사람이 마시기엔 독할까요?”와 같은 질문이 휴대전화 밖의 기자에게도 들렸다. 한쪽에서는 다양한 연령층의 손님이 계속 들어와 술을 사 가고 있었다. 이를 통해 기자는 술이 어르신들만의 것이 아님을 느꼈다. 


K-주류의 자부심, 막걸리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 술이다. 술은 즐거운 자리, 위로가 필요한 자리에 늘 함께해왔다. 이 중에서도 막걸리는 오랜 시간 서민의 곁을 지켜준 좋은 벗이다. ‘한국쌀가공식품협회’의 매거진 『RICE UP LIFE UP 쌀』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3명은 일주일에 한 번은 쌀로 만든 술과 음료를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대는 쌀 주류·음료를 구입하는 이유로 ‘맛’을 꼽았다. 이렇듯 막걸리의 수요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는 그 해답을 찾고자 도심 속의 양조장, ‘느린마을양조장’ 홍대점을 방문했다.

▲ 홍 대표가 효모즙을 짜고 있다.
▲ 홍 대표가 효모즙을 짜고 있다.

기자가 건물에 방문한 오전부터 홍재경(55) 한국소믈리에협회장 겸 느린마을양조장 홍대점 대표는 열심히 막걸리를 제조하고 있었다. 보통 술에서 나지 않는, 익숙하지 않은 향에 궁금해진 기자는 홍 대표에게 다가가 막걸리 제조 방법을 물었다. 그는 “막걸리는 국(누룩), 쌀, 물로 제조한다”고 답했다. 이어서 그는 막걸리를 제조할 때 ‘담근다’라는 표현을 쓴다며 “한 번에 담그면 1담금, 2번 담그면 2담금 식”이라고 설명했다. 홍 대표는 제조 방법 중에서도 2담금을 이용한 이양주 방법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또한 “계절별로 숙성 기간을 달리해 고객들에게 다양한 맛을 선보이고 있는데, 젊은 세대는 가벼운 맛이 특징인 봄 막걸리를 좋아한다”고 전했다.


막걸리뿐 아니라 30년 동안 와인을 연구했던 홍 대표는 소믈리에를 하면서 외국을 많이 나간다며 “외국인들과 얘기를 해보면 우리나라 주류업계가 밝다는 것을 느꼈다”며 “우리나라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한국 전통주인 막걸리도 함께 유명해질 것”이라고 주류업계의 미래를 기대했다. 

▲ 홍 대표가 막걸리를 만들고 있다.
▲ 홍 대표가 막걸리를 만들고 있다.

Epilogue
‘불취무귀(不醉無歸)’. 정조가 경기 수원 화성행궁을 건립할 때 일꾼들에게 막걸리를 하사하며 건넨 말이다.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마라’라는 의미를 보면, 대한민국에서  술은 선조부터 함께 해왔음을 알 수 있다.


취재를 위해 만나본 이들의 공통적인 말은 “술에는 문화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세계의 여러 민족은 오랜 세월을 두고 그들이 살고 있는 기후 풍토에 맞춰 고유한 음식 문화를 형성했다. 그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자연과 사회에 깊이 연관돼 왔다. 특히 음주문화에는 그 나라의 문화적  배경이  담겨 있다. 세계 여러 지역은 각기 주변의 자연환경에 맞춰 독특한 술들을 다양하게 빚어 왔다. 이렇게 형성된 전통주들이 나라마다 특색 있는 술 문화로 정착, 발전돼 그 민족 나름대로 멋과 맛을 이룬 것이다.

박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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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young@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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