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인이 바라보는 세상
자폐인이 바라보는 세상
  • 김지원·박준정·여지우 기자
  • 승인 2022.09.06 14:46
  • 호수 14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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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살아가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
드라마 속 자폐인 변호사와 대조되는 현실의 자폐인 모습이다. 일러스트 변수영 기자
드라마 속 자폐인 변호사와 대조되는 현실의 자폐인 모습이다. 일러스트 변수영 기자

 

Prologue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자폐인 변호사가 착용한 가방과 액세사리가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같은 달 ‘대한항공’의 여객기에서는 자폐인이 강제 하차를 당했으며 35개월의 자폐 판정을 받은 아이와 그의 부모가 목숨을 끊는 일도 일어났다. 이처럼 드라마와 현실은 많이 다르다. 그 이유는 우리가 자폐에 무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와 조금은 다른, 그러나 함께 살아가고 있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들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현실을 알아내기 위해 본지는 드라마에 나오지 않는, 가려지고 지워지는 그들의 모습에 주목해봤다.

 

우영우 신드롬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신임 변호사 우영우의 대형 로펌 생존기를 다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성황리에 종영했다. 0.9%에 불과하던 시청률이 15.8%까지 올랐고, 드라마 속 인사법이 각종 SNS에서 패러디되며 유행하기도 했다. 
사실 과거에도 발달 장애인이 등장하는 작품은 여럿 존재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 속 오정세 배우가 연기한 ‘상태’, <그것만이 내 세상> 속 박정민 배우가 연기한 ‘진태’, <말아톤>에서 조승우 배우가 연기한 ‘배형진’ 등이 모두 매력적인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미디어에서 다루는 자폐 스펙트럼의 모습은 현실에선 극소수에 불과한 서번트 증후군과 고기능 장애가 대부분이다.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데 일상이 종속된 보호자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이야기나 발달장애인이 살해당하고 그를 돌보는 부모는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는 비극적 통계는 미디어 속에서 지워진다. 

 

자폐 스펙트럼이란 
흔히들 자폐증이라고 알고 있는 질환의 정식 명칭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은 해당 나이의 정상 기대치보다 발달이 25%가량 뒤처져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자폐 스펙트럼은 세계보건기구(WHO)의 질병 및 관련 건강 문제의 국제 통계 분류(ICD)에 따라 1급부터 3급까지의 단계로 분류된다. 1급은 기능 및 능력의 장애로 인해 전반적 발달 척도(GAS)가 20 이하, 2급은 GAS 점수가 21~40, 3급은 41~50인 사람을 뜻한다. 광범위성 자폐 범주에 따라 ▲자폐성 장애 ▲레트 장애 ▲소아기 붕괴성 장애 ▲달리 분류되지 않은 광범위성 발달장애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자폐의 증상은 지능의 손상 정도나 유전 여부, 환경적 상태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스펙트럼’이라는 명칭이 붙은 만큼 증상에 대한 범위가 넓지만 대체로 특정 냄새나 소리에 과민성이 있고 어떤 대상에 강한 집착을 보이며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가진다는 특징이 있다.


자폐인의 일상은 어떨까. 드라마가 큰 관심을 끌면서 현실에는 우영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극 중 우영우 변호사는 서번트 증후군, 고기능 자폐, 중증도 자폐가 모두 있는 변호사인데 현실에서 이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특히 서번트 증후군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약 1%에 해당한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애초에 우리나라엔 자폐인 변호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실제 이들의 삶은 드라마와 다른 부분이 많다. 드라마의 자문을 맡은 나사렛대 김병건(유아특수교육) 교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에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는 단체는 많지만, 통합적인 지원을 하는 곳이 없어 장애인 부모들이 직접 발로 뛰어 정보를 쟁취해야 하는 구조”라 말했다.

 

조금은 어두운 그들의 현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를 ‘스펙트럼 장애’로 다루며 다각적 방식으로 자폐인을 묘사해 자폐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천재적 능력이 있는 고기능 자폐만을 주로 다뤘기 때문에 대중에게 자폐에 대한 왜곡되고 편향적인 정보를 제공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웨인주립대 레싸(특수교육) 교수는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오늘날 미디어가 일반 대중에게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자폐의 특별한 재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다수 자폐인은 미디어에서 비치는 천재성 자폐인들과 달리 평범한 생활이 불가능하다.


우선 매달 치료 명목으로 사용되는 엄청난 비용은 자폐인과 그 가족들의 어깨를 무겁게 만든다. 정부는 현재 자폐성 장애에 대해 소득 분위에 따라 월 14만~22만 원의 발달 재활서비스 비용을 차등적으로 지원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 치료비를 감당하기엔 어림도 없는 수준이다. 자폐성 장애의 경우 조기 진단과 빠른 치료가 중요한 만큼 어릴 때부터 여러 사설 기관을 찾아 언어, 청력, 미술치료 등 다양한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다 보니 수업료 부담이 매우 크다. 만약 한 부모 가정이라면 어려움은 배로 더해진다. 


돌봄이 필요한 자폐인을 맡길 시설도 매우 부족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성인기 발달장애인 17만 명 중 복지기관을 이용하지 못하는 발달장애인이 4만5천 명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경기도의 경우 2020년 기준 7만1천여 명이 자폐를 포함한 발달장애인으로 등록돼있다. 그러나 그들이 생활하거나 교육받는 장애인복지시설은 825곳만이 운영되고 있다. 시설 1곳당 90여 명을 담당하는 셈이다. 제대로 된 돌봄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자폐인들은 홀로 내버려질 수밖에 없다.


사회에 나가려고 마음을 굳게 먹어도 취업의 문을 열긴 더욱 힘들다. 작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의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취업 경험이 있는 발달장애인 중 46.1%가 ‘채용하려는 일자리 자체가 없다’고 응답했다. 지난 5월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삭발과 단식농성까지 하며 중증장애인의 일자리 보장을 강력히 요구하기도 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성윤채(경영·13졸) 동문은 드라마 속 우영우가 자폐인 전부를 대변할 수는 없다며 “최근 10년 사이 발달장애인 고용 기업이 생기고 사회적 기업이 많아지기도 했지만, 취업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또한 “지역마다 교육 편차가 심하고 경쟁률도 치열해 고등 교육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도 있으며 학급 내 괴롭힘이나 폭력에 노출되기도 한다”면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언급했다. 

 

함께 나아가는 세상  

4월 2일은 세계 자폐인의 날이다. 지난 2007년 유엔(UN) 총회에서 사회적으로 외면받는 자폐인들의 인식을 개선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회원국 만장일치로 제정했다. 이날엔 자폐성 장애에 관한 관심과 이해를 요구하며 파란 불을 켜는 ‘블루라이트(Light it Up Blue) 캠페인’을 펼친다.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파리 에펠탑,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등 세계적인 건축물들이 자폐인을 위한 블루라이트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노력 때문일까. 미국과 유럽 등 서구사회에서는 자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계속해서 발전하는 추세다.


우리나라도 재정적 지원, 정책 개선과 함께 자폐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수반될 필요가 있다. 최영은(전자전기공·4) 씨는 “우리 사회가 자폐증상을 자연스럽고 편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보통의 사람과 인식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라 답했다. 익명을 요구한 재학생 A 씨는 자폐에 대한 인식 개선 방법의 하나로 대학 교육을 꼽았다. 그는 “자폐에 대한 필수 교양 과목을 개설하거나 특강을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성 동문은 “장애인 학우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당사자의 의견을 먼저 들은 뒤 도와줬으면 좋겠다”라고 전하며 장애인 학우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함을 밝혔다.


자폐에 대한 흔한 오해는 자폐인이 공감이나 동정의 대상에 지나지 않으며, 별다른 감정을 지니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도 감정을 가지고 있다. 단지 사물을 다르게 처리하고 표현할 뿐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책 『루돌프 코는 정말 놀라운 코』의 고윤주 저자는 “우리 사회가 자폐인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그들의 별난 생각을 중요한 자원으로 받아들인다면 한 단계 성숙한 사회로 업그레이드될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기존의 획일적 평가 기준에 맞춰 자폐인들을 치료와 동정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다양성을 토대로 한 새로운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쪽으로 인식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 

 

Epilogue  

세상의 모든 자폐인은 우영우가 아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콘텐츠 속 자폐인의 모습이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드라마로 촉발된 그들을 향한 관심을 바탕으로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 나아가 발달장애와 관련된 구조화된 문제를 바라보고 연대할 힘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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