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시대의 패션
기후변화 시대의 패션
  • 김희량 패션칼럼니스트
  • 승인 2022.09.27 16:43
  • 호수 14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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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파타고니아
출처: 파타고니아

이 글은 패션산업이 가지고 있는 힘을 언급하고, 이젠 그 가능성을 제대로 활용하라 요구하는 청원서다. 


우리는 기후변화 시대에 장렬하게 태어났다. 소비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이 참 원망스럽지만, 우리가 그 수혜자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어쩌면 지금의 20·30대는 번화한 문명의 수혜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과연 나는 120살까지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서바이벌 훈련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202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기후변화 소식에 심각한 위기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젠 먼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하지만 걱정과 두려움은 잠시뿐, 우리는 곧 잊어버리고 만다. 곧 닥칠 시험과 취업 등 일상 속 무겁지만, 감당할 수 있는 일들에 금세 매몰되기 때문이다. 일상의 무게는 미래의 문제보다는 좀 더 성가시게 군다. 기후변화는 너무나 거대하고 한 명의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기 때문에, 우리의 조그만 두뇌는 차마 건드리지 못하고 지나쳐버린다. 특히, 이 커다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미미해 보여 더욱 그렇다.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하는 슈퍼태풍을 고작 텀블러와 에코백 쓰는 걸로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생각 들기 때문이다. 더 본격적으로 대비하려면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하는데, 이건 참 시도하기 어렵다. ‘채식하기’, ‘소비 절제하기’처럼. 지금까지 욕망에 충실했던 자본주의 생활에 자제력을 쏟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다 같이 포기할 게 아니라면 조금이라도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뭔가 시도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기후변화를 목전에 둔 지금, 패션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을까? 물론 패션산업은 앞장서서 기후변화를 가속화 하는 산업이다. 과잉생산과 과잉 소비로 인한 어마어마한 탄소배출은 물론 폐기물, 미세플라스틱 등 다양한 환경 문제를 일으키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재활용 소재나 업사이클링 제품 개발에 힘을 쏟지만, 난 패션이 좀 더 다른 걸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패션이 가지고 있는 어떤 독특한 특징에 주목하고자 한다. 


‘파타고니아’는 10년 전, 블랙프라이데이에 공개한 “Don’t buy this jacket(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이라는 광고로 세간의 주목을 이끌었다. 제품을 팔아서 돈을 벌어야 하는 패션 브랜드가 옷을 사지 말라니, 역설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파타고니아의 의도는 소비의 절제였다. 한 논문에서는 이 광고 문구를 활용해 1천300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소비 절제를 강조하는 문구를 본 학생들과 보지 않은 학생들의 구매 의도를 분석한 실험이었다. 실험 결과, 광고 문구를 보지 않은 학생보다 본 학생들의 구매 욕구가 뚜렷이 감소했다. 물론 적절한 카피 라이팅을 활용한 마케팅의 힘이 맞다. 하지만 패션 브랜드라서 더 이슈가 됐다고 본다. 패션은 일상 속 필요와 욕구 그 사이 어딘가에 있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구매 욕구가 높은 분야이다. 소비지향적 사회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산업에서 사지 말라고 외치는 거야말로 가장 강렬한 역설이었을 것이다. 일주일 전, 파타고니아 창업주가 지분 전체를 비영리 단체에 넘겼다는 소식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했다. 파타고니아 홈페이지에는 “Earth is now our only shareholder(파타고니아의 유일한 주주는 지구다)”라는 문구가 게시됐다. 이 일로 시민들은 기업이 기후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더 높은 기준을 상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혹시 누가 알까? 이 사건이 영리 중심의 산업 구조를 뒤집을 계기가 될지.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도 기후변화와 환경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로 유명하다. 혹자는 옷을 팔아 돈을 버는 웨스트우드가 환경보호를 외치는 건 모순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웨스트우드는 패션의 영향력을 꿰뚫어 보고 있다. 패션은 역설을 활용해서 이슈를 만드는 데 능하다. 그리고 자본과 네트워크라는 큰 강점을 가졌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힘과 임팩트 있는 메시지의 조합은 사람들의 인식과 사고방식을 건드릴 만한 충분한 조건이다. 지금까지 이 영향력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보다 소비를 권장하는 자본주의적인 맥락에서 더 많이 활용돼왔다. 이제는 패션의 커뮤니케이션 인프라를 세련된 방향으로 활용하기 위해 고민해봐야 할 때다. 그래서 웨스트우드가 더욱 목소리를 높이는 게 아닐까.


패션은 분명 일상에 휩쓸려 쉽게 잊고 마는 중요한 일을 묵직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의지를 촉발할 것이다. 우린 오랜 시간 적응해온 환경의 격동을 마주하고 있고, 그에 따라 삶의 방식을 바꿔가야 하는 때에 당면했다. 난 패션이 세상을 바꿀 인식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의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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