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으로 만드는 맥주가 있다고?
빵으로 만드는 맥주가 있다고?
  • 명욱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0.06 16:57
  • 호수 149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03. 맥주의 기원을 찾아서

 

▲ 빵을 주재료로 한 크바스는 주로 동유럽에서 만든다.
▲ 빵을 주재료로 한 크바스는 주로 동유럽에서 만든다.

맥주의 기원을 살펴보면 늘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우연히 끓는 물에 빵을 넣었더니 맥주가 탄생했다는 것이다.원리는 간단하다. 빵 속의 전분을 맥아의 당화 효소가 당으로 만들고,공기 중의 효모가 들어가 알코올을 만들었다는 것이다.그래서 이집트 벽화를 보면 빵집 옆에는 늘 양조장이 있는 경우가 많다. 보리로 고체를 만들면 빵이었고, 액체를 만들면 맥주였다. 그래서 맥주를 액체 빵(Liquid bread)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현대에도 빵으로 맥주를 만들 수 있을까? 아니면단순히 고대의 기록으로만 남아있을까?


흥미롭게도 여전히 빵으로 만드는 맥주가 있다. 이 맥주의 이름은 바로 `크바스'이다. 주로 중앙아시아, 우크라이나, 폴란드, 러시아 등 동유럽 국가에서 만들어지는 이 맥주는 우리의 막걸리 문화와 정말 비슷하다. 우리가 남는 밥을 가지고 막걸리를 만들었다면, 그들은 남는 빵을 가지고 크바스를 만들었기 때문이다.현재 가장 오래된 기록은 989년 우라지미르 공작이 민중에게 먹을 것과 크바스를 베풀라고 한 것이다. 당시의 크바스는 지금의 맥주보다 알코올 도수가 높았고, 술 취한 사람을 의미하는 말로 `크바스인'이란 말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크바스는 술에서 음료로 바뀌게 된다. 금주령을 피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러시아에서도 금주령의 바람이 부는데 이때 크바스는 도수를 낮추게 된다. 덕분에 금주령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고, 오히려 더 주목을 받으며 자양강장제로써 무려 병원식으로 사용되기도 한다.그래서 현대의 크바스는 알코올 도수가 0.5~1.5% 정도밖에 안 된다. 마치 우리의 식혜와 비슷하다.


우리가 집에서 막걸리를 빚어서 마시듯, 크바스 역시 집에서 많이 만든다.각 가정에 있는 호밀빵을 원료로, 여기에 맥아와 설탕도같이 넣는다. 알코올 도수가 낮아 그대로 마시기도 하지만 토마토, 오이, 양파 등 야채와 햄, 삶은 달걀을 크바스에 넣어 수프로 먹기도 한다. 그래서 어린아이도 많이 마신다. 구소련 시대에는 대규모 공장에서 생산돼, 크바스 자동판매기가 설치되기도 했다. 한때 콜라 등의 유입으로 소비가 준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페트병에 넣어서 판매되기도 하는 등 민족주의 열풍으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맛은 각 제조업체와 빚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구수한 호밀빵의 맛이 나기도 하며 살짝 짠맛이 있는 경우도 있다. 또 설탕을 넣는 경우도 있어서 너무 달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또 우리의 생 막걸리처럼 생 크바스도 있다. 이러한 크바스가 우리나라로 와서 이어진 것이 바로 보리탄산음료다. 맥콜, 보리텐 등이 대표적이다. 원래는 갈색이지만, 맥아를 구워서 색을 검게 했다. 콜라처럼 보이기 위함이었다. 물론 맥콜, 보리텐 등은 빵으로 만들지 않는다.


제주도에도 비슷한 문화가 있다. 바로 '쉰다리'라는 음료다. 보리, 좁쌀로 2일 정도 짧게 발효해서 마시는 음료로 제주도 막걸리, 또는 제주도 식혜로 불리고 있다. 또 우리 전통주에도 발효를 빨리 해 도수를 낮춘 술들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황혼녘에 빚어서 닭이 울기 전까지 발효시켜 마신다는 계명주(鷄鳴酒)가 있다. 그리고 일일주, 삼일주 등 즉석에서 만드는 술들도 있었다. 이러한 술들은 크바스처럼 도수가 굉장히 낮았다는 점,빵으로 만든 크바스와 비슷하게 떡으로 빚었다는 특징이 있다. 


결국 인류는 남은 밥, 떡, 빵으로 열심히 술을 빚었다. 민족과 국가로 매번 다투는 모습만 보이는 국제정세이지만 알고 보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사피엔스라는 것.그런 의미로 혐오와 차별로 만무하는 이 시대에 인류라는 공통점을 찾아주는의미 있는 술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