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한때 ‘마약 청정국’이었던 우리나라는 이제 그 지위를 잃었다. 국제연합(UN)은 인구 10만 명당 마약류 사범 20명을 마약 확산력의 기준으로 삼는다. 즉 10만 명당 마약류 사범이 20명 미만일 경우에 ‘마약 청정국’이라고 불릴 수 있는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난 2016년 이미 마약류 사범이 25.6명으로 집계됐고, 지난 7월 국내 마약사범은 이미 1만 명을 돌파했다. 현재는 마약 시장의 신흥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지난 8월 국민의 힘 권은희 의원은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이제는 마약 김밥·마약 옥수수·마약 떡볶이 등 음식 앞에 ‘마약’을 붙여 중독성을 강조하는 마케팅에도 눈살을 찌푸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마약 신흥국이 된 우리나라
세계보건기구(WHO)는 마약을 ‘개인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사회에도 해를 끼치는 약물’이라 정의한다. 우리나라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마약류 관리법)’을 통해 마약을 불법으로 지정해 관리 중이다. 그러나 최근 클럽, 텔레그램, 다크웹, 딥웹, 국제우편 등 다양한 유통 경로로 국내 마약 유통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인 보디패커(몸속에 마약을 넣고 운반하는 사람)가 처음 적발돼 세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지난달 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마약사범으로 검거된 인원은 5만 명에 이른다. 이 중 10대와 20대 마약 사범이 급증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8년 10대 마약사범은 104명이었으나 작년 검거된 인원은 309명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20대 마약사범 역시 2018년 1천392명에서 작년에는 3천507명으로 늘었다. 4년 새 약 2.5배 증가한 셈이다. 이제 마약 청정국의 시대가 끝나고, 마약 신흥국이 도래했다.
박시현(식품영양·3) 씨는 현 사태에 대해 “우리나라는 마약으로부터 안전한 줄 알았는데, 최근 마약이 생각보다 쉽게 유통되고 남용되고 있음을 알았다”고 말했다. 마약 김밥, 코카인 댄스 등 마약과 관련된 밈이나 마케팅 등 용어들에 대한 무분별한 사용에 대해서는 “마약에 대한 사람들의 경계심이 낮아질 수 있기에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마약으로 망가지는 몸
현재 대표적인 마약류는 크게 ▲대마류 ▲천연마약 ▲합성마약 ▲항정신성 의약품으로 나뉜다. 대마류는 대마초, 대마수지, 대마오일로 분류되는데, 도취감과 환각작용을 일으킨다. 천연마약에는 양귀비·아편·모르핀·헤로인·코카인 등이 속한다. 합성 마약에는 페치딘계·메사돈계가 있고 진통효과, 도취감 등이 주요 증상이다. 각성제 암페타민류, 환각제 LSD, 신종마약 엑시터시와 YABA는 항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된다.
마약은 우리 몸에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한다. 아편은 의존성과 내성이 강하며 구토, 호흡장애를 동반한다. 헤로인은 호흡 감소, 내분비계통 퇴화 등의 증상을 일으켜 자아 통제 불능 상태를 초래한다. 코카인을 흡입하면 심장 장애·호흡곤란 및 경련·과대망상을 유발하고 공격적인 성향이 나타날 수 있다.
작년 10월 래퍼 윤병호는 <KBS 시사직격> 유튜브에 출연해 마약류 금단 증상을 설명했다. 윤 씨는 온몸이 끓는 기름을 붓는 듯 뜨겁다가 극심한 오한이 찾아오길 반복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특히 펜타닐에 대해 “철저하게 만들어놓은 지옥 같은 느낌이었다. 최악의 마약이었다”고 설명하며 고통을 호소했다. 마약 이후의 삶을 ‘지옥 밑바닥’이라고 표현하며 펜타닐의 심각성을 알린 그는 지난 7월 대마초와 필로폰 투약 혐의로 또다시 경찰에 구속됐다.
솜방망이 처벌로 근절 어려운 마약 범죄
마약을 손쉽게 구매할 유통망이 갖춰져 마약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건 우리나라의 처벌 수준이 낮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세계 최대 마약 소비국인 미국은 마약사범에게 무관용의 원칙을 고수한다. 소량의 마약을 보유한 초범에게도 1년 이하의 징역과 1천 달러 이상의 벌금을 부과하며, 헤로인을 1kg 이상 소지한 자에게는 종신형을 포함해 최소 10년 이상의 형을 선고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현행 마약류 관리법에 따르면 마약류 단순 투약은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형, 마약류 제조 및 유통은 무기징역이나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그러나 법원의 양형은 법의 기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마약 사범 상당수가 초범이거나 치료 의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집행유예나 벌금 등의 가벼운 형을 선고받는다.
검찰의 소극적인 기소 또한 문제점으로 작용한다. 지난해 검찰이 처리한 마약류 범죄 1만8천695건 중 6천205건만 재판에 넘겨졌으며 3천668건은 기소유예 처분에 그쳤다. 국내에서 발생한 마약류 범죄가 그동안 단순 투약에 그쳤더라도 안심해서는 안 된다. 범죄의 유형이 단순 투약에서 밀수로 바뀌는 중범죄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재판에 넘겨진 마약 사범 4천747명 중 2천89명은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심에서 단순 벌금형이 선고되는 사례도 늘어나는 추세다. 단순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난 마약 사범들은 10명 중 3명꼴로 마약 범죄를 반복한다. 이에 마약 사범 재범률은 2020년 32.9%에서 지난해 35.4%로 증가했다.
범죄수사연구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359건에 불과했던 외국인 마약류 범죄는 작년 2천335건으로, 약 6.5배 증가했다. 또한 2012년 외국인 마약 범죄의 61.8%였던 투약 사범 비율이 최근 44.7%로 낮아지고, 5.8%에 불과했던 밀수 사범 비율이 20.5%로 크게 올랐다. 외국인이 밀수한 마약을 자국민에게 되파는 악순환이 증가하고 있다. 동국대 곽대경(경찰행정) 교수는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외국과 연계된 마약 범죄가 급증함에 따라 외국의 수사기관과의 공조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쫓기 힘든 마약
과거엔 기존 마약류 관리가 잘 돼왔기에 마약 규제가 엄격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엔 8천177명이었던 마약류 사범은 작년 1만6천153명으로 증가했다. 마약 사범의 급격한 증가는 제도와 법률의 빈틈을 만들었다. 2001년 대비 작년 지방 마약 사범이 14.4%에서 23.7%로 증가했지만, 수사 인원의 증가는 없었다. 인력난이 심각하지만, 검찰의 직접 마약 수사 범위가 변경돼 검찰은 500만 원 이상의 마약류 밀수 출입 사건만 수사할 수 있다. 국내 마약류 밀매 등 유통 사범 단속은 할 수 없는 경찰 인력으로만 감당해야하는 것이다. 이는 지방이나 해안지역으로 유통된 마약 추적이 미미해져 해양 마약류 단속 전담반을 신설하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우리나라 마약 및 밀수 사범은 지난 2016년도 12건, 지난 2020년 57건으로 약 5배 증가했으며, 마약 단속 건수는 60건에서 412건으로 약 7배 증가했다. 이에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한덕 팀장은 “SNS,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사람들이 마약 판매 광고에 쉽게 노출되고, 코로나19로 사회 전체적 우울감·불안감 등이 커지면서 마약 관련 취약층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마약 근절을 위해 국가적인 공급차단, 수요억제의 균형 정책을 마련하고 사회적 차원에선 사회공동체가 불법 마약류를 용납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해야 함을 강조했다. 만약 마약을 충동적으로 사용했거나 정기적인 사용으로 인해 중독 가능성이 보이는 경우 “이를 숨기거나 개인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즉시 전문기관에 연락해 도움을 청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Epilogue
마약은 중독성이 강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다. 필로폰 투약 후 몸에 즉각적으로 분비되는 도파민의 양은 평소의 수천 배까지 증가해 3일간 지속된다. 감각이 수십 배 이상 예민해지고 환각 증세가 강해 강력 범죄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현재는 인터넷의 발달로 마약을 접하기 쉬워졌다. 그러나 작은 호기심으로 시작한 마약은 본인을 비롯해 주변인들을 고통에 빠뜨리고, 마음과 인생 전체를 병들게 만든다. 단순한 궁금증이 인생을 지옥으로 떨어뜨리지 않도록 강력한 법률과 처벌이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