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방영된 시리즈 드라마 중 클로이 모레츠의 <더 페리퍼럴, The Peripheral>이라는 SF 장르의 작품이 있다. 드라마는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인 2032년 미국의 어느 평범한 마을, 3D 프린터 인쇄소에서 일하는 플린 피셔가 거대한 가상 세계로 빠져드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가 근무하는 곳은 3D 프린터 인쇄소로 고객들이 원하는 걸 만들어주는 작은 가게다. 플린은 어느 날 첨단 VR 기기를 통해 ‘심’이라는 게임에 접속하게 된다. 반수면상태라도 된 듯 가상 세계에 푹 빠지게 되는 그는 게임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며 크게 활약한다. 이후 플린은 게임을 즐기면서도 주어지는 특정 미션을 완수하면 놀라울 정도의 보수를 받을 수 있음을 깨닫고 다시금 가상 세계에 빠진다. 하지만 현실과 미래의 세계가 일종의 수평 상태를 이루게 되면서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눈길이 간 것은 3D 프린팅 기술이다. 기계를 만지며 신기해하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던 플린에게 3D 프린터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속에서 3D 프린팅 기술은 종종 언급됐다. 그 기술 역시 점진적으로 발전을 이뤄 고도화되기도 했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프린터는 다양한 형태의 종이를 넣고 출력하는 방식이다. 가장 많이 쓰는 A4 용지부터 B3 등 크기만 달랐을 뿐 2차원 평면에 불과하다. 그러나 3D 프린터는 3차원이라는 입체적 개념을 빈 곳에 인쇄하는 장치다.
극 중에서는 고객이 원하는 대로 커스텀 컬러(Custom Colors)나 타입(Type)과 관계없이 모두 출력 가능하다는 글을 가게 유리에 써 붙이기도 했다. 3D 프린터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종이 인쇄물만큼 자주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3차원 프린터는 과연 어떠한 원리로 물건을 인쇄할까. 방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3차원 데이터를 입체적으로 만든다’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일반적인 프린터처럼 잉크와 토너가 아닌 플라스틱, 금속 혹은 가루 형태의 파우더를 쓰기도 한다. 재료를 넣고 3D 프린팅에 필요한 도면을 분석한다. 크기를 설정하고 정해진 온도에 맞춰 빈 공간에 층을 쌓아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형태다. 클로이 모레츠의 이 작품은 2032년이 배경이니 아마도 적층하는 시간이 빠를 수도 있겠다.
3D 프린터 기술은 우주로 뻗어나가는 중이다. 우주정거장에서 우주비행사들이 급히 필요로 하는 소형 부품들을 스스로 생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어떠한 부품이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급하게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용도로 쓰이게 된다. 지구로부터 공급을 받을 수도 있지만 시간도 걸릴 뿐 아니라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미국의 랠러티비티 스페이스(Relativity Space)는 3D 프린팅 기술로 로켓의 연료통과 엔진도 만들어내 실제 연소시험까지 마쳤다고도 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 <클로버필드 패러독스>에서는 3D 프린터를 통해 작은 소형 권총을 만들기도 했다. 허구였지만 그 권총은 동료 우주 비행사들을 위협하는 데 쓰였다. 3D 프린터로 위험한 물건을 만드는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 규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존재가 악용되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보다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인류와 환경, 비즈니스, 과학 등에 매우 이로울 수 있는 기술의 긍정적 측면 뒤로 이를 저해하는 극단적 이슈들이 종종 기술 발전을 가로막기도 한다.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기술 발전에 의한 놀라운 기적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3D 프린터 가게는 플린에겐 먹고살기 위한 공간이었을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기적이 실현되는 곳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