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가 쏘아 올린 해방의 메시지
캠프가 쏘아 올린 해방의 메시지
  • 김희량 패션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3.07 16:02
  • 호수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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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프패션을 표현한 샘스미스의 의상이다.(출처:CNN)
▲ 캠프패션을 표현한 샘스미스의 의상이다.(출처:CNN)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이 지났다. 추위가 풀림과 함께 옷장 앞에서의 고민은 짙어지기 마련이다.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는 중차대한 문제다. 그것으로 오늘의 내가 타인에게 노출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자신의 태도 또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비슷하게 입는다’는 평을 종종 듣는다. 해외에서는 옷차림을 보고 한국인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라 한다. 유독 한국에서 개개인의 선택이 유사한 양상을 띠는 이유는 무엇일까?

패션은 세상에 나를 드러내는 방식이자, 내면과 바깥이 만나는 지점이다. 자신을 독보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과, 일정한 행동 양식에 따르라는 집단의 요구가 부단히 충돌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면의 욕구와 외부의 요구 사이를 타협하며 스타일을 구축해나간다. 이 과정에서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한 한국인은 외부의 요구가 조금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우리는 타인과 같은 방식으로 생활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통해 같은 범주에 속함을 알린다. 아마도 이러한 결과로 우리는 한국인으로서 비슷한 양식의 스타일을 수용하게 됐을 것이다.

얼마 전 브릿 어워드(BRIT Awards)에서 샘 스미스(Sam Smith)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샘 스미스는 사진과 같은 옷을 입었다. 굉장하지 않은가. 이 모습을 보고 머리에 떠오른 단어는 바로 ‘캠프 패션’이었다. 캠프 패션의 ‘캠프(Camp)’는 ‘우스꽝스러운, 과장된’이라는 뜻의 단어로, 보통 ‘추하다, 괴상하다’라고 여겨지는 스타일, 장식, 행동 등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방식을 뜻한다. 캠프는 일관된 취향에 의문을 제기하고, 정형화된 미적 기준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줏대 있는 취향을 고백한다. 누군가의 진지하고 순수한 취향과 모습을 존중해주며, 추하고 소외된 대상에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캠프가 동성애자 스타일과 연결된 것도 이런 포용적 태도 때문일 것이다. 캠프는 숨겨왔던 나의 일부를 꺼내놓을 수 있는 통로일지도 모른다.

취향과 아름다움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패션은 ‘캠프’와 깊이 엮여있다. 패션은 언제나 취향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이고, 미와 추를 넘나들며 유행을 재정의하기 때문이다. 패션은 고정된 미적 기준을 깊이 수용하는 동시에, 강하게 저항해왔다. 이를테면 수용의 결과로 런웨이에 빼빼 마른 모델이 등장하는 반면, 저항의 결과로 위아래가 뒤집어진 착장이 나오기도 한다. 패션은 사회의 통제와 개인의 반항이 뒤섞인 용매다. 앤드류 볼튼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큐레이터는 지난 2019년 <캠프: 패션에 대한 단상> 전시에서 “패션은 근본적으로 캠프”라고 설명했다. 캠프의 기준에 대해서는 해석의 여지가 열려 있지만, 정해진 틀을 부수고 독특한 시도를 꺼내놓는 패션은 여지 없이 캠프다.

필자는 이 캠프를 위로의 맥락에서 바라보려 한다. 사람은 누구나 개인적이고, 어느 정도 괴상하다.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려고 애쓰는 우리에게 캠프는 구속적인 규범에 대한 해방이자 탈출구이다. 다소 억압적인 한국 사회에서 캠프라는 개념은 존재 자체만으로 위안이 되지 않는가. 누군가는 샘 스미스의 괴상한 행보에 환호하고, 그 저항과 용기의 메시지에 감탄할 것이다. 우리에게 모든 장르의 캠프가 허락된다면, 당신은 무엇을 표출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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