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의 온기와 함께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하다
차 한잔의 온기와 함께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하다
  • 서희 기자
  • 승인 2023.11.07 15:00
  • 호수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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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다도체험

등굣길 느껴지는 서늘한 아침 공기는 새삼스레 가을의 중심에 있음을 체감하게 한다.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사색에 빠져 있을 때쯤, 숨 가쁘게 지나가는 기자의 일상 속 작은 멈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몸과 마음에 따듯한 온기를 채울 수 있는 차 한 잔을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녹차와 우롱차 그리고 홍차와 보이차는 같은 잎에서 만들어지는 것을 아는가? 수확한 이후의 제조 과정에 따라 찻잎 각각의 특성이 발현된다. 마치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쌍둥이조차 가치관에 따라 저마다의 개성을 꽃피우는 것처럼 차는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

 

기자가 처음 마신 차는 4월 20일경인 곡우 전의 어린잎으로 우린 차였는데, 별다른 다식(차와 곁들여 먹는 다과) 없이 차 자체만을 즐겼다. 한 모금을 마시는 순간 부드러운 향이 혀를 감싸고 따뜻한 차가 온몸을 데워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입 안에 스며든 산뜻한 여운은 기자의 입맛을 돋우었다. 만약 우전(곡우 전의 어린잎으로 우린 차)을 다식과 함께 마셨다면 다식의 단맛이 차의 풋풋함을 앗아 이러한 재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차를 따르는 맑은소리, 차의 향, 목으로 넘어가는 온기에 집중하니 청소년 시절의 추억이 물씬 떠올랐다. 사실 차는 기자에겐 찻잎을 우린 물, 그 이상의 존재이다. 모두가 잠든 밤 혼자 공부하던 기자의 외로움을 보듬고, 기자를 위해 보온병에 항상 차를 우려 주셨던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찻잎을 우리는 방식이 보편적이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가루 낸 찻잎을 직접 섞어 먹는 말차가 더 대중적이다. 말차는 솔을 이용해 거품이 날 때까지 저어야 하기에 다른 찻잔보다 깊은 형태의 다기를 사용한다. 이 과정을 유화라 하는데 감칠맛은 더하고 떫은맛을 덜어낼 수 있다. 유화된 말차는 세 모금으로 나눠 마신다. 차의 초록빛 색만큼이나 진한 맛을 느낄 수 있었지만, 떫고 쓴 맛도 강하게 다가왔다. 은은하고 여운이 남는 엽차와는 달리 말차는 한 번에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막바지에 이르러 중국식으로 우려낸 홍차를 대접받았다. 중국의 차 문화는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서양에서까지 전파됐는데 영국의 애프터눈티 문화도 이에 영향을 받아 자리 잡았다고 한다. 기자는 홍차가 우려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차를 마시는 행위 자체가 아닌 차와 다식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장으로서 차 문화가 널리 퍼진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빠졌다. 고수 홍차를 한 입 머금는 순간 훈연향이 느껴져 말차와는 다른 의미의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기자가 가을을 느낄 수 있는 다도 체험을 하고 있다.
기자가 가을을 느낄 수 있는 다도 체험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다례에는 달리 정형화된 규칙이 있지는 않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풍류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 정도로만 다도를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서로에 대한 예의, 손을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차를 마실 때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는 점과 공손한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예절이다.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고 있는 서로에 대한 깊은 존중과 겸양의 미덕이 드러난다. 여유가 부족한 시대, 차 한 잔 마시며 상대에 대한 존중과 온기를 베풀어 보자.

 

 

서희 기자 heeyaa@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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