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백묵처방
  • <이은재교수>
  • 승인 2004.05.30 00:20
  • 호수 11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래를 대하는 방법 ‘좇아가기’ ‘맞춰가기’ ‘미래 만들기’

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다음과 같이 묻는다. “우리는 현재보다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는가?”, “우리는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파괴된 환경을 다시 깨끗이 할 수 있는 가?”, “이 복잡한 도시에서 어떻게 살 것 인가?”. 말하자면 이런 식의 크고 작은 문제, 새롭고 오래된 문제들이 제기되는 것이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모두 미래에 귀속된다. 그리고 변화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짐에 따라 미래는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문제를 계속해서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미래에 대처할 것인가?
20세기 우리 나라가 지나온 역사는 ‘고난’과 ‘발전’의 뒤섞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뒤섞임의 역사속에서 미래를 대하는 두 가지 방법이 나타났으니, 그 중 하나는 미래에 대한 ‘좇아가기’방법(단기적 적응)이고, 다른 하나는 ‘맞춰가기’방법(예측적 적응)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고난이 덮칠 때 면 외부세력과 주위환경을 ‘좇아’가는 수준을 넘지 못했다.
고난이 극심할 경우에는 절망하거나, 도피하거나, 영합하는 회피적 적응방법을 취하기도 했고, 매일 매일 새로운 상황이 전개될 때마다 위기상황을 강조하면서 뒤늦게 단기적 대응책을 찾으려하거나, 그 위기를 대증적(對症的)으로 관리하는 데 만족했다. 한마디로, 우리는 미래를 좇아가면서 살아가는 방식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이다. 해방이후의 무질서, 6·25의 혼돈, 6·29 전후의 혼란, 최근의 사회적 진통 속에서 이러한 ‘좇아가기’식의 태도를 읽기는 어렵지 않다.
그런가 하면 ‘발전’의 가능성이 보일 때는 미래의 양상을 미리 예측하고, 이러한 예측에 대한 ‘맞춰 가기’(예측적 대응)를 시도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과거 , 현재의 추세를 연장하여 미래를 추정해보고, 이에 비추어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려는 시도도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1960년대 이후 우리 나라는 각종 경제?사회적 예측과 분석을 기반으로 일련의 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이를 통하여 국가발전을 성취하려는 노력을 계속하여 왔다. 특히 우리의 경제가 저소득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에는 2000년대를 내다보는 장기예측이 계속하여 발표되어 왔다. ‘맞춰가기’는 확실히 ‘좇아가기’보다는 한걸음 앞선 미래의 대처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대단히 가변적이고 가속적인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맞춰가기’만으로는 우리의 문제들을 만족스럽게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물론 ‘맞춰가기’의 분석적인 요소가 모든 계획가에게 유용한 것이기는 하나, 현명한 계획가는 상황의 특수성에 따라 ‘맞춰가기’뿐만 아니라 ‘좇아가기’도 복합적으로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미래를 대처하는 이상적인 방법도 아닐뿐더러 적합한 방법도 아니다.
이미 말했듯이 ‘맞춰가기’는 과거와 현재의 추세분석과 목표설정을 근거로 문제의 해결을 위한 계획수단과 정책도구를 사용하는 계획방법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계획방법은 과거를 통해 누적된 현재의 구속적 조건에 대한 과감한 도전을 회피한다. 따라서 ‘맞춰가기’는 기존현상을 암암리에 옹호하고 제도의 획기적 개혁이나 인간의 근본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흔히 사용되는 예측이론이나 추세연구 방법들이 몰가치적(沒價値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몰가치성은 과학주의에 근거한 기술 관료적 기법, 체계분석, 모의 실험 등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맞춰가기’에 의한 계획은 사회통제의 이념적 도구로 전락하기 쉽다. 따라서 이로써는 진정한 진보를 위한 사회의 탈바꿈을 기대할 수 없다.
진정한 진보를 위한 탈바꿈을 위해서는 세 번째 방법, 즉 ‘미래 만들기’(미래 창조적, 발명적 계획)을 추구해야 한다. ‘미래 만들기’는 단지 과거와 현재의 추세를 연장하여 예측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의 엄격한 성찰과 비판을 통하여 계획의 기본적 가치를 다시 세울 것을 요구한다. ‘미래 만들기’는 그렇게 발견된 인간적 가치를 바탕으로 현재의 구속적 조건을 대폭 수정하거나 제기하고, 과감한 제도적 개조를 통하여 인간의 발전을 꾀하고 미래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미래 만들기’의 바탕이 되는 것은 ‘계획이 무엇을 할 수 있다.’ (인간의 잠재력)는 확신이다. 그런 까닭에 ‘미래 만들기’(창조적, 발명적 계획)는 가치 지향적이다. 이것은 우리가 창조적 잠재력을 발휘하여 인간 발전에 기여하는 발명을 통해 가치 지향적인 삶을 계획하며 살 수 있는 계획 인간인 동시에 미래 인간이며, 우리가 ‘창조적 인간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