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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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명헌
  • 승인 2005.05.31 00:20
  • 호수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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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에 천착할수록 심화되는 불평등
강 명 헌 교수
<상경학부·경제학전공>
우리 국민들은 유난히도 평등사상의 신봉자로 보인다. 우스운 말로 모두 가난해 배가 고픈 것은 참아도 사촌이 논을 사서 배가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이 있다. 그동안 30여년 동안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한 우리는 외환위기를 경험하면서 역사상 유래 없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경제개혁·정치개혁·교육개혁 등 개혁이란 말이 도처에서 쓰였고 도덕적 해이가 일상의 생활용어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가운데서도 변하지 않은 것은 우리 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평등의식''이다.
우리 사회의 방향과 관련한 주요 정책 결정과정에는 어김없이 ‘평등’이 중심 가치로 등장하였다. 예를 들어, 교육문제에 있어서 평준화 원칙은 다른 어떠한 가치의 개입도 허용치 않는 절대적 기준이 된 지 오래다. 평등은 건강한 사회라면 당연히 추구되어야 할 소중한 가치다. 그러나 이 평등사상에는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야누스의 이면들이 존재함을 직시해야 한다.
먼저 ‘평등’과 ‘형평’의 야누스이다. 평등은 말 그대로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이다. 똑똑한 사람이나 우둔한 사람이나, 힘이 센 사람이나 약한 사람이나 모두 똑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나누어 먹자는 것이 공산주의 사상이다. 반면 형평은 인간의 능력과 소질이 다름을, 또 열심히 일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능력이 있는 사람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생산을 많이 하면 그가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 형평이고 민주주의 근본이념이다.
다음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야누스적인 성격이다. 과정의 평등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와 결과의 불평등이 초래되는 시장경제는 본질적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거 역대 정부는 이를 해소하는 제도와 방식을 정착시키는데 노력하기보다는 오히려 반시장적, 비민주적 정책과 조치로 일관하였다. 따라서 결과적 평등에 초점을 맞추는 개혁정책은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갈등 조정과 소외계층 배려라는 명분하에 시장경제는 사라지고 포퓰리즘 형태의 기형적 민주주의만 남았다.
대표적인 예가 평등을 금과옥조처럼 삼고 있는 우리의 교육이다. 고교평준화와 대학 본고사 폐지 등 사교육 축소와 공교육 정상화를 목표로 한 모든 시도는 오히려 정반대의 현상을 낳아 예외 없이 실패했다. 그 결과는 부에 기초한 ‘좋은 교육’의 대물림 현상이다. 그래도 과거에는 시골에서 명문고에 입학해서 열심히 공부하여 명문대에 진학하는 가난한 학생들이 꽤 있었다. 그리하여 교육은 어느 정도 계층 이동의 주요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계층 고착화의 통로가 돼 버렸다.

또한 이와 같은 정책은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의 공장 굴뚝산업에 필요한 평균적 인재 양산에는 효험이 있었다. 그러나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의 정보화 지식기반산업에 필요한 창의적 인재 양성에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다양한 교육수요를 충족시켜 주는 맞춤형 교육이 필요한 시기에 ‘표준형 공교육’을 해결책으로 내놓으니 사교육은 날로 번창해 가고 빈곤의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경쟁과 도전이 죽은 교육은 국가사회 발전에 아무런 기여를 못하고 국민 누구의 미래도 보장 못할 것이다.
자유는 평등보다 상위 개념이고 중요하지만, 평등을 강조하다 보면 자유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자유를 상실하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평등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이제 우리 교육현장에 적용해야 할 때가 왔다. 교육을 평등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교육논리로 보아야 한다. 평등논리로 교육을 보는 한 교육 질의 하향평준화는 필연적이고, 더 나은 교육을 위해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회문제에서건 공짜 점심은 결코 없다는 것이 진리이다. 평등을 추구하면 할수록 시장의 경쟁시스템은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 소중한 자원은 낭비되고 경쟁구조에서만 발현되는 국가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평등이 강조된다고 해서 반드시 평등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평등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정책은 결과적으로 불평등을 오히려 심화시키는 원치 않은 결과를 수반하는 것이 다반사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국민들의 관심이 가장 높은 교육·의료·주택 등의 분야에서 노정되는 갈등과 난맥상들이다.
우리 사회의 주요 정책결정 과정에서 평등논리가 판치는 한 ‘경쟁력’에 대한 논의는 점점 실종되어 가고 있다. 평등과 경쟁은 ‘야누스의 두 얼굴’이다. 비용은 비용대로 치르고 원하는 평등도 경쟁력도 얻지 못하면서 국력을 낭비할 지, 아니면 경쟁을 추구하면서 경쟁력을 얻을지는 앞으로 우리 국민이 선택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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