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대신문 모니터 / 지난호(1160호)를 읽고
단대신문 모니터 / 지난호(1160호)를 읽고
  • 전유준
  • 승인 2005.11.15 00:20
  • 호수 11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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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터치’ 기자의 관점이 없다

내가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교를 들어온 이후였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만화와 인터넷에 빠져 있고 대학교를 가기 위해 열심히 수능을 준비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막연히 배우긴 했지만, 그게 나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고 모든 것을 안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입시 위주의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 속에서 내가 나 이외의 것에 눈 돌리기란 정말 요원한 일이었다. 대학교에서 문학 동아리에 가입하고 선배의 권유에 의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조세희씨의 연작소설집을 읽으면서, 난장이 일가의 가슴 아픈 이야기와 사회의 부조리한 구조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분노하면서 나 아닌 타인들에 대해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구경 가자던 선배를 따라, 메이데이 때 서울역 광장에 가서 그곳에 모인 많은 노동자들과 함께 시위에 동참해 보면서 사회에 대한 생각의 계기를 키워나갔었다. 나의 경우에 그렇다는 이야기다.
어떤 생각이나 관점이 강요에 의해 형성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번 호 ‘시사터치’를 보면서 나는 필자의 관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사터치’란 코너는 단대신문에서 유일하게 지금의 사회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유치 문제를 다룬 이번 논조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시사 문제가 사실의 전달에 그치고 있는 것 같다. 시사에 대해 접근 할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이 있음에도 말 그대로 터치만 하고 있으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사회를 보는 필자의 시선이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간에, 그 관점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단대신문이 독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면 밋밋한 소리 대신, 살아있는 소리를 들려주어야 한다. 그것은 필자들의 다양한 관점에 의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기사를 넘어서 다양한 목소리가 살아있고, 사회에 대한 필자의 시선과 애정이 있는 그런 ‘시사터치’로 거듭났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전유준<국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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