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지행상 - ''서민''의 문화 “물건 믿을만 혀, 값은 후 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알간?”
함지행상 - ''서민''의 문화 “물건 믿을만 혀, 값은 후 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알간?”
  • 조영리 기자
  • 승인 1999.11.30 00:00
  • 호수 11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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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믿을만 혀, 값은 후 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알간?”
함지 하나가 밑천, 하지만 함지 행상에 얄팍한 상술은 없다


대형 횟집마다
요란스럽게 떠들어대는
호객꾼들이 제일 먼저
손님을 맞는다.
그 소리에 밀려
행상들은 자꾸만
구석으로 밀려났다.

평생 함지 하나만
이고 다니며
살아 온 날 들.
얼마나 먼 길을 걸었는지
가늠 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이것으로
자식 모두를 키웠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오니 온통 뿌옇다. 중국에서 불어온 반갑지 않은 봄 손님인 황사가 온 세상을 짙게 휘감고 있었다.
경인고속도로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달려 소래포구에 도착하니 대형 횟집 앞마다 요란스럽게 떠들어대는 호객꾼들이 제일 먼저 맞아 주었다. 포구 진입로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이번에는 여기 저기 사설 주차장에서 빨간 봉을 들고 손짓이다.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이들의 아우성을 뒤로 하고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이번에는 즐비하게 들어선 어물전 주인들이 팔목을 끌어 잡는다. 낚고 낚이는 것이 어촌에서의 연명 법이라고 하지만 “수도권의 낭만과 추억”이 있다는 낡은 안내판의 글귀와는 왠지 괴리가 느껴졌다.
하지만, 포구는 소문대로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시장과 신선함을 생명처럼 여기는 어촌의 빠른 손놀림으로 특유의 활기가 넘친다.
포구 앞에는 잔주름 깊은 어부들이 그물을 펼쳐 놓고 손질에 한창이다. 두 세 박스에 물고기를 실은 작은 어선들이 간간히 부두에 입을 내밀었다. 물고기가 상해 값이 낮아 질 새라 부두 바로 앞 경매장으로 내달려진다. 주말을 맞아 길지 않은 부두 길을 따라 엉덩이를 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돗자리를 깔고 앉아 초록병에든 소주와 회를 먹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소래포구를 찾는 사람들은 늘 낯설은 얼굴들일지 모르지만 사람과 섞이는 광경이 익숙한 갈매기는 똑같은 일상이라고 말하듯 무심한 표정으로 선착된 배 꼭대기와 부두를 오가며 정신없이 까락대고 있다.

 

 


제철을 맞은 쭈꾸미가 가게 마다 거무죽죽하게 늘어져 있으면 이내 장사꾼들은 두 손 가득 집어 든다. 자그마한 배에 주황빛 알이 든 꽃게들, 갖가지 조개가 수북하게 쌓아 올려져 저마다 흘러내리는 조개알을 긁어 올리는데 정신이 없다. 더러는 어항 속에 배를 보이며 뒤집어 질랑 말랑 골골하는 물고기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소래포구는 서해안이지만 이 바다, 저 바다에서 흘러 들어온 여러 종류의 어패류들이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다.
그렇게 30분을 둘러 봐도 정작 찾을 것은 찾지 못하고 있었다. 유난히 횡한 부두 앞에 선착되는 배를 정리하는 경찰을 붙들었다.
“광주리나 함지에 물건 파는 사람들이 안 보이네요?”
“음, 오늘은 물이 없는 날이거든요. 지금 들어 오는 배도 며칠 씩 나가 있던 배뿐이에요. 4일 후에야 배가 많이 들어오니까. 그때는 요 앞에 주욱 늘어 놓고 앉았을 텐데.”
일러도 내일까지는 배가 덜 들어오는 날이라 함지로 물건을 파는 할머니들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 봄 이라 자잘한 바람이 바닷가 답지 않게 밍숭맹숭한 맛으로 불어 댔다. 그래도 일단 시장 변두리까지 다 둘러 보기로 맘 먹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시장 안은 사람들로 꽉 들어 찼다. 낙찰된 해산물을 배달하는 남자는 “짐 나갑니다! 비키쇼”거칠게 소리를 지르며 어깨를 부딪친다.
복잡한 곳을 벗어나 숨을 돌리는데 저기 길 끝에 함지 몇 개에 조개를 까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째 여기는 이렇게 한산해요?”
“그네들이 온 거지 모. 지금 다들 접고 갔어. 쫓겨 난겨. 나는 목은 안 좋아도 오늘 것은 바닥을 봐야 하니까. 여기라도 와 앉아 있는 거야”
종종 노점 단속반이 뜨면 여지 없이 행상 할머니들은 무거운 함지를 억지로 머리에 이어야만 한다. 물이 없어 행상이 없는 거라는 경찰 말이, 그게 아니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안돼야∼ 못 팔어. 못 팔어. 우리가 무슨 힘이 있간, 비키라면 일어나는 수 밖에.”
간간히 얼굴을 쳐다 볼 뿐 물건이 어떻단 말이나 얼마에 판다는 말도 없이 여전히 조개를 까는 부지런한 손만 움직일 뿐이었다. 무섭게 호객을 해대는 상점 사람들과는 대조적이었다.
할머니는 단속이 없을 때는 여기 저기 행상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예전만큼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 다고 말한다.

 

 


“지금은 시장 가득 삐까번쩍한 가게가 들어 차 있어서 다들 거기로 가지. 아는 사람 아니면 길에서 사것어? 그래도 여기 물건 좋고 값 후한거 아는 사람은 골목 골목 알아서 찾아 오거든.”
오전에 나와 떼어 온 물건은 마지막까지 탈탈 덤으로 주고 나면 그때서야 영업이 끝이 난다. 문을 닫을 필요도 없고 단도리 할 재고도 없다. 그저 오늘 매상을 고이 주머니에 집어 넣고 가벼운 함지를 이고 가면 정리가 끝이 난다. 그렇게 하루 안에 모든 장사는 이루어진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게 우리네 생활이야. 그래도 이 장사 해서 자식들 가르치고 먹고 살고 있지.”
평생 함지 하나만 이고 돌아다니며 살아 온 날들. 얼마나 먼 길을 걸었는지 가늠 할 수도 없이 무거운 함지를 이고 이 곳 저 곳을 떠돌아 다닌다. 나이가 들면 성하던 무릎도 고장이 나기 마련인데 매일 걷고 또 걸어 다니고 종일 쪼그리고 앉아 있다보니 다리, 허리 어디 한군데 성한 데가 없다. 그러다 바람이라도 세게 부는 날이면 온 몸이 쑤시지만 자리를 뜰 수가 없다. 또 햇빛이 뜨거우면 뜨거운 대로 참아야만 하기때문에 겨울에도 여름에 그을렸던 피부가 여전히 검다. 그래도 수십 년을 행상으로 살아온 터라 늘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이들이기도 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행상 물건 잘 안 사잖어. 으리 으리한 어항에 담겨 있는 때깔 좋은 것만 사니까. 길에서 파는게 좋다는 걸 모르거든.”
할머니는 매일 아침 그날 팔 수 있는 양만 가지고 길로 나온다. 정오 쯤 여전히 그 자리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운이 좋아 물건이 잘 팔리면 초 저녁에 들어가고 오늘 같이 단속이 있어 외진 곳에 자리를 잡는 날엔 늦은 밤까지라도 손님을 기다린다. 이런 날엔 으례 마지막 손님은 횡재를 하기 마련이다.

 

 


“시장이 날마다 서지 않던 때는 우리가 들어가야 물건을 살 수 있었지. 근데 지금은 어째 그래. 시장도 없어지는 마당인데. 앞으로는 이짓도 못 할겨.”
지금처럼 집 가까이 슈퍼 마켓이 여러 개 있고, 없는 것이 없는 대형 할인 마트가 성행을 하는 시대에 조촐한 행상은 오히려 어색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상에는 때를 따라 찾아드는 주인이 보증하는 믿을 만한 물건이 있다. 백화점식의 바겐세일은 없지만 정겨운 에누리가 있는 곳이 행상이다.
할머니 옆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동안의 얘기를 마치고 바지락 한 바가지를 사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괜찮다며 그냥 가도 된다고 손사래를 친다. 간신히 오천원을 쥐어 드리고 바지락 반 바가지는 덤으로 받아 돌아섰다.
아침부터 황사경보가 내려 바깥출입을 자제하라고 떠들어 댔다. 그래도 행상 할머니들은 어김없이 함지를 들고 길거리로 나온다.

▲길가에 바지락을 펼쳐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함지 행상’.
▲ ‘함지 행상’은 철에 따라 갑오징어, 꼬막, 홍합 등을 판다.

 

조영리 기자
조영리 기자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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