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아름다운 퇴장
백묵처방-아름다운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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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4.11 00:20
  • 호수 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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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원로가 되면 후배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는 아름다운 퇴장을 하겠다고 다짐해왔는데, 이제 그 다짐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이 말은 2001년 5월 25일 신승남(愼承男) 검찰총장체제가 들어서자 스스로 검찰을 떠난 이명재(李明載)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의 퇴임사의 일부이다.
이(李) 전 검사장은 이같은 퇴임사를 뒤로 한채 28년간 정들었던 검찰복을 벗어던지고 검찰을 떠난 지 7개월여만에‘흐트러진 기강확립·검찰인사 개혁·수사의 공정성과 독립성 확보·국민 신뢰회복’이라는 무거운 짐을 두 어깨에 지고 검찰의 총수로 되돌아왔을 때 “진정한 무사(武士)는 추운 겨울날 얼어죽을지언정 겻불을 쬐어선 안된다”는 격언을 인용하면서 검사의 자존심을 지켜 품위를 유지하도록 전검찰에 당부한 바도 있다.
이(李) 검찰총장이 취임하자 검찰주변에서는 “이명재 고검장이 그 때 물러나지 않고 검찰 수뇌부 주변에 머물러 있었다면 검찰총장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며, 생즉사(生則死) 사즉생(死則生)의 진리를 말하는 검사들이 많았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김기춘(金淇春) 전 법무부 장관은 이(李) 총장을 가리켜 ‘당대 최고의검사’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2001년 12월 17일자 경향신문에는‘그 의미있는 길, 낙향(落鄕)’이란 제목의 글이 실려 있었다. 행정자치부 차관을 지낸 김흥래(金興來)씨가 모든 것을 훌훌 털고 고향으로 내려가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정부산하단체의 이사장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서 순경에서 출발하여 차관까지 지낸 입지전적인 자신의 삶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잘 나타나 있는 기사였다.
아름다운 퇴장이 어찌 이 뿐이랴. 이승만(李承晩) 대통령 치하에서 이시영(李始榮)·김성수(金性洙) 두 부통령은 부통령직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정치적 지조가 돋보이는 결단이 아닐 수 없다.
출처진퇴(出處進退)를 분명히 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나아갈 때와 물러갈 때를 가려서 제대로 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일까?
그렇다. 이 자리가 내 자리인가를 생각하면서 앉을 자리를 가려서 앉고, 그리고 때가 되면 미련없이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 누군가가 등떠밀기 전에….
2001년 9월, 임동원(林東源) 통일부 장관 해임결의안 국회통과로 빚어진 DJP공조가 깨졌을 때 자민련(自民聯) 몫으로 총리직에 앉은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가 당연히 그 자리를 물러날 것이라는 국민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 자리에 엉거주춤 머물러있는 그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던 적이 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를 헌신짝처럼 버리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을 터이기는 하나, 이(李) 총리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정치도의적 비난을 외면하고 말았다.
그 무렵 이(李) 총리를 두고 정치적 소신과 양심을 버리고 권력의 양지(陽地)만을 추구하는 정치인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李) 총리가 총리직에서 머뭇거리는 사이에 자민련에서는 그의 총리직 잔류결정을 두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당무회의와 당기위원회를 열어 이(李) 총리에 대한 제명절차를 일사처리로 마무리지었다. 한국 정당사(政黨史)에서 당총재가 제명된 것은 초유의 일이다.
“사주(四柱)에 없는 관(冠)을 쓰면 이마가 벗어진다”는 속담을 생각하면서, 우리 모두 이러한 때에‘나는 어떤 결단을 했을까?’를 한번 되새겨보는 기회로 삼자.
권용우 교수<서울부총장/민법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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